Songkran in Route 66 (2)
저는 방콕에 오면 예외 없이 카오산 로드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저는 제가 카오사니즘(Khaosanism)이라고 부르는 존재적 평등을 만끽합니다. 저는 세상에 틀린 존재는 없으며 다른 존재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존재자들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소중하며, 결코 '틀린'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와 '다른' 존재를 '틀린' 존재로 간주하는 착각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 다양한 변용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오류들의 근본 뿌리는 동일합니다.
카오산 로드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오산 로드를 감싸도는 그 평화롭고도 자유로운 분위기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고리타분한 시각에서 볼 때는 한심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배낭여행자들이 득실거리는 그 거리에 어찌도 그리 많은 행복과 웃음이 넘쳐날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 곳의 개성 넘치는 사람들은 서로간의 개성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줍니다. 만일 진실로 개성이란 것이 틀려먹은 것이라면, 틀린 것은 바로잡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마땅히 존중해주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카오산 로드에서는 - 그리고 제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람부뜨리 로드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저는 방콕을 방문할 때마다 즐거이 그 곳을 찾고, 수많은 배낭여행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좋은 것들을 많이 배웁니다.
카오산 로드의 북적임은 즐기기에는 좋지만, 잠을 청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밤새도록 음악을 울리며 괴성을 지르고 춤을 추기 때문에, 잠자리에 다소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곳에 숙소를잡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저도 깊이 자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에, 예전에 이 곳에 올 때에는 카오산 로드와 맞물려 있는 람부뜨리 로드에 숙소를 정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쪽으로 걸어갑니다.
배낭여행자들은 새벽부터 이동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노천 카페 또한 이른 아침에 문을 엽니다. 저는 그 중 한 곳을 찾아들어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서, 타이 티(Thai tea)나 파파야 쥬스, 또는 땡모반을 주문합니다. 물론 아침 식사도 곁들이는데, 주로 태국에서만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열대 과일들이 가득한 요거트를 청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입안에 침이 괴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 곳에서 저는 또 다시 책을 읽고 글을 끄적입니다. 간밤의 추억들은 하룻밤 사이에 정리된 형태로 다시 제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그리고 책을 읽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저녁은 나의 책. 저녁의 보랏빛
비단 같은 표지가 찬란히 빛난다.
나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침착한
손길로 황금빛 걸쇠를 풀어낸다.
그런 다음 첫 페이지를 읽는다,
친근한 목소리에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욱 낮은 목소리로 둘째 페이지를 읽으며
어느새 나는 셋째 페이지를 꿈꾼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소유하지 않는 사랑>(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19쪽 -
가만, 가만, 지금은 저녁이 아닌 아침이잖아? 하지만 아침 또한 나의 책이며, 저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침착한 손길로 황금빛 걸쇠 대신 스타벅스 영수증을 빼내지요. 책갈피로 쓰기에는 영수증이 딱이거든요. 이렇게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람부뜨리 로드의 아침 분위기 속에서 저는 과일 쥬스를 마시고 책을 보며 즐기다, 내친 김에 점심까지 해결하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래도 물놀이를 하러 왔으니, 이제 장소를 옮겨야 할 때인가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