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끄란 인 루트 66 (4)

Songkran in Route 66 (4)

송끄란 기간에는 택시 기사도 젖은 승객이 시트를 더럽히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맘이 편치 않아서 지하철과 도보를 이용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싸얌 센터 방면에서 실컷 놀다 보니, 어느덧 5시가 되었고 숙소에 돌아오니 6시가 넘었습니다. 클럽 루트 66은 송끄란 축제 기간에 오후 5시부터 개장합니다. 하지만 어휴, 클럽을 5시부터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숙소에서 샤워하고 잠시 잠을 청한 뒤에 7시쯤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땡! 틀렸습니다. 저는 비록 7시에 입장하기는 했습니다만, 만약 6시가 되기도 전에 클럽이 이미 꽉 차서 터져 나갈 지경이었음을 미리 알았다면, 저도 숙소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17년에 RCA 구역 야외 클럽에서 송끄란을 즐기고자 하시는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6시 이전에 입장하셔서 신나게 노시길 바랍니다.


저는 6시가 되자 도저히 좀이 쑤셔 숙소에 있을 수가 없어, 길을 나섰습니다. 루트 66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도 양 옆으로 술집들이 가득했는데, 그 가게들 또한 야외 클럽으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물총과 물안경을 파는 알록달록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이미 거리는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술집을 홍보하는 수많은 모델들이 행인들에게 물을 뿌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 외쳤고, 꼬마들은 바가지에 얼음물을 담아 뿌리면서 과객들을 몸서리치게 만들었습니다. 물총을 든 사람들을 실은 택시와 오토바이들이 수도 없이 들어오며 진입로를 가득 메웠는데, 태국의 택시 빛깔은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저는 7시에 입장하리라 마음먹고 노천 주점 한 곳에 들어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볶음밥을 주문하고 등을 기대어 편히 앉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데, 특히 클럽에 입장하기 전에 잔뜩 신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물론 그들이 제게 쏘는 물로 인해서 제 볶음밥이 볶음탕이 되는 것은 그다지 흥이 돋는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긍정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흔지 않기에, 저는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이들은 모두들 동자승 같아 보였으며, 저는 모든 인간이 부처라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이 빈 말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존재이지, 결코 틀린 존재가 아닙니다.


6시 50분이 되자, 제 온몸의 세포들이 빨리 클럽에 입장하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입장료 500밧을 방수팩에서 꺼낸 뒤 저는 흠뻑 젖은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 루트 66 입구에 섰습니다. 그리고 여권 사본을 꺼내어-그것 또한 이미 흠뻑 젖어 너덜너덜했습니다- 신분을 확인한 뒤, 햄버거 1개와 수건 하나, 그리고 알코올이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 2캔을 받았습니다. 이럴 수가, 좀 의외였습니다. 보통 클럽에 입장할 때에는 손목에다 밴드를 채워줍니다. 그래서 그 밴드만 소지하고 있으면 클럽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데, 송끄란 때 루트 66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한 번 입장하면 나갔다 다시 들어올 수는 없으니, 대신 햄버거와 음료수 2캔으로 버티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수건으로 부지런히 물에 젖은 얼굴을 닦으란 뜻이겠지요. 이들의 노하우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참고로 햄버거는 받는 즉시 먹어버리는 편이 좋습니다. 일단 물놀이에 들어가면 방수팩에 넣어놓은 햄버거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서 먹기에 미안할 정도가 되니까요.

입장을 일찍 할 경우에는 아마도 테이블을 잡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밤새도록 물총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이 담긴 커다란 드럼통은 따로 주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늦게 입장하기도 했고 혼자라서, 테이블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송끄란 기간에는 루트 66에서 테이블을 잡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온통 물난리라서 테이블 위에 술을 올려놓아보았자 금세 싱거워져 버리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섞여서 테이블을 잡아 보았자 제 위치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물총도 거의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맨몸으로 들어가서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며 놀고 테이블을 잡은 사람들이 뿌리는 물을 맞으면 그만입니다.


13040836_1558885564408719_8004751565890595476_o.jpg photograph by 차은숙

루트 66의 야외무대 규모가 너무도 엄청나서, 저는 끝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그 안에 도대체 몇 천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야외 클럽 내에서도 서로 다른 스테이지가 4개 이상 벌려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스테이지가 서로 다른 음악을 틀어도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규모가 큰지 짐작키 어렵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나이를 잊고 태국의 젊은이들 틈에 섞여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겼습니다.


13041475_1558885304408745_2131645814584466946_o.jpg photograph by 차은숙



젊은이들만이 가득할 것 같은 그곳에는 실상 태국의 남녀노소가 죄다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클럽에 나이 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배낭여행 중에 50대 필리핀 여성을 만났습니다. 대형 레스토랑을 여럿 소유한 오너였던 그녀는 클럽에서 춤추는 것이 너무 좋아서, 매니저들에게 가게 운영을 맡기고 전 세계 클럽을 돌며 클러빙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한국 클럽에서 연령 제한에 걸려 입장을 거부당했으며, 이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의 클러빙에 익숙한 이들은 클럽에서 '수질 제한'을 한다는 것이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는지 짐작키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클럽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에 따라 춤추고 노는 곳이지, 외모나 나이에 따라 사람을 선별해서 들이는 '작업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귀에 익숙한 여러 음악들이 들려오는 것도 좋았지만, 저는 태국 라이브 밴드들이 나와 연주하고 젊은이들이 그 공연에 환호하는 모습이 훨씬 보기 즐거웠습니다. 저 또한 그들 사이에 섞여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13063090_1558885784408697_8911349217511867461_o.jpg photograph by 차은숙


물을 하도 많이 맞아 체온이 떨어져 이제는 귀가해야겠다며 시계를 보았을 때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으니까요. 7시에 입장해서 5시간을 넘게 스탠딩으로 놀았으니, 얼마나 정신없이 즐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EXIT라 적힌 출구를 줄을 지어 빠져나오자,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조그마한 좌판들이 건물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놀다 지쳐 그대로 복도에 쓰러져 있는 물에 젖은 중생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살아 있는 사회이기에, 이렇게 편안히 누워서 쉴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태국인이기에, 이와 같은 장면이 가능할 것입니다. 카오사니즘은 카오산 로드에만 내려앉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흠뻑 젖은 진입로를 되돌아 숙소로 향하는 길 위에는 여전히 물놀이가 신명 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힌두교에는 온 존재계가 신의 놀이로 가득하다는 뜻에서 '릴라'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신의 놀이'를 일컫는 릴라는 어쩌면 힌두교만의 전유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태국에서는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불국토를 즐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세간과 출세간이 하나임을 알면, 차 안과 피안이 둘이 아님을 알면, 여기 이곳이 바로 불국토임을 알면, 이에 따라 일상과 축제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되겠지요. 이는 일상과 여행이 하나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와 같이 거대한 축제가 일상을 상징하는 도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열린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태국인들은 며칠 동안 물에 흠뻑 젖어 살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온하게 평소의 생활패턴으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일상과 축제는 그다지 멀지 않으며, 그들은 축제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또 다른 새로운 일상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때문에 송끄란 축제가 혼란의 극치인 듯 보이면서도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축제를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기는 사람들은 괜스레 과격해지고 무리하는 경우가 잦지요. 우리는 '술 먹고 깽판 친다'는 표현에 익숙합니다. 일상을 기분 좋게 사는 사람은 술자리에서 깽판을 칠 일이 없지요. 일상을 부정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만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에서도 술상을 뒤집습니다. 일상을 전쟁으로 사는 사람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에서도 그 전쟁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일상을 기분 좋은 평화로 사는 중생은 또 다른 일상에서도 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잃지 않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은총이 가득한 송끄란 페스티벌 기간에 클럽만이 아닌 여러 장소들을 방문했는데, 일관된 평화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도 거의 없는 팍팍한 여행기를 이만 끝낼 때가 된 것 같아요. 태국은 먼 나라가 아니기에, 태국 여행의 고수들이 한국에는 꽤 많습니다. 현지에서 사시는 분들 또한 적지 않고요. 제가 그분들보다 태국에 대해 더 자세히 알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여행에서의 제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 전해드리려 애썼습니다. 그러면 여행 넋두리를 이쯤에서 줄이고, 또 다른 일상에서 찾아뵙겠습니다.


- 맹꽁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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