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권도와 상도에 관한 현대적 예시
오늘은 2022년 5월 17일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하루 앞둔 날입니다.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된 오늘 저녁에는 많은 시민들이 518 전야제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5월 18일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에는 "합창"이었던 이 곡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시 제창의 형태를 회복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제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임 후에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에서는 제창과 합창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합창과 제창은 비슷해 보이지만, 정치적인 성격을 띤 행사에서는 차이가 있다. 합창은 합창단이 부르는 것이고, 제창은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합창단이 부를 때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불러도 무방하지만 부르지 않는다 해도 어색할 것은 없다. 그러나 제창을 하게 되면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불러야 한다. 기념식 행사 방송에도 차이가 생긴다. 합창을 할 땐 영상 카메라가 합창단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제창을 하면 주요 인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을 비춘다.
일부 강경 보수 지지층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이런 행보를 달가워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늘이 보수에게 5.18 민주화 정신을 진정성 있게 수용할 마지막 기회를 내려주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수 지지층은 518 민주화 정신을 올곧이 받아들여야만 향후 선거에서도 유리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518 민주화 정신은 특정 진영이 아닌 국민 모두의 자산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에서 이 정신을 소홀히 대함으로 인해, 오히려 특정 진영이 "518"이라는 대한민국의 공동 유산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부마 민주 항쟁"의 정신이 부산과 마산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특정 정치세력에게 독점되었고, 그들이 518 민주화 정신으로 인해 얻은 정치적 이득은 크지만 호남 지역 자체는 수십 년 간 타지역에 비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고, 정치와 상관없는 호남 일반 시민들은 피해를 입은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교내 모의재판에서 검사를 맡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인물입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의 직전 당대표이자 서울시장 후보인 송영길 전 의원, 그리고 차기 국회의장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은 모두 518 전야제가 있었던 2000년 오늘, 광주 새천년 NHK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와 술을 마시며 놀다 임수경 전 의원에게 망신을 당했던 인물들입니다. 오죽하면 온라인에서 5월 17일을 "새천년NHK 데이"로 조롱하는 글들이 게시되겠습니까. 보수 진영은 이 대통령과 저 야당이 있는 현 시점이야말로 그동안 518 민주화정신을 소홀히하거나 심지어 폄훼했던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털어낼 절호의 기회임을 분명히 깨닫고, 진정한 국민 통합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노력은 보수 진영에게만 해당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홍콩과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에서도 현지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각국의 언어로 합창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민주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수용되어야 합니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497
https://www.youtube.com/watch?v=ys3PwMYGPMU
오늘은 앞선 다른 글에서 설명했던 <맹자>에서 "상도"와 "권도"에 대해 현대적인 설명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상도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해석을 달리하지 않지만, "권도"는 "상도"와 관계없는 임기응변이라는 오해가 많이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적인 설명은 지난 글에서 마쳤으니, 오늘은 <맹자-이루상 17>에 나오는 해당 원문을 읽고 현대적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415
순우곤이 말하였다. “남녀간에는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禮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禮이다.” 순우곤이 말하였다.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을 내밀어 구해줘야 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구해주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나 이리 같은 짐승이다. 남녀간에 물건을 직접 주고 받지 않는 것은 예禮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어 구해주는 것은 권權이다.”
오늘날에는 "남녀 간에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라는 말부터도 거부감이 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예는 예의 정신이라기보다는 "예의범절"이라는 구체적인 형식입니다. 유학의 이치는 변함이 없어야 하지만, 유학의 구체적인 관습이나 풍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국가는 오랜 세월 동안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사회 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몇 백 년의 세월 동안 정말로 유교 국가에서 남녀 간에 물건을 직접 주고 받지 않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특정한 형식에 매달려 논의를 그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유교의 정신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과거의 관습은 남녀간에 물건을 직접 주고받는 것을 금지할 정도로 엄격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형수와 시숙(형수 남편의 형)이 평소에 손깍지를 끼고 걸어다니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남녀 간의 분별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시숙이 손을 뻗어 구해주지 않는다면 사람이라 불리기 어렵지요. 문제는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남자인 시숙이 손을 뻗어 구해주는 것이 유학의 도리에 어긋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유학은 천지생물지심(생명)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며, 세계 어느 종교 못지 않은 생명존중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것이 유교의 정신이고 구체적인 관습이나 풍습은 그 유교의 핵심 가치에 종속되며, 그 가치를 어기지 않는 한에서만 유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예(상도)"와 "권"을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상도"와 "권도"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으면, 권도 또한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시숙과 형수가 평소에 손깍지를 끼고 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장해도 말로 반박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네 인간 본성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남성 독자분은 21세기에 사시지만, 자신의 아내가 남동생과 손깍지 끼고 돌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하면 감정이 편하십니까? 하지만 내 아내가 물에 빠지는데 남동생이 "내외해야 한다며" 구해주지 않는다면 기가 차겠지요. 사실 유교는 인간 본성에 입각한 매우 합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학문입니다.
오늘은 일정이 많아 길게 글을 쓰지 못하고 여기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을많이 발굴해서 유학의 정신을 공유하는데 힘쓰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