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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8 홍콩 몽콕 <오빠> 레스토랑

<트라팔가> 방문 이후 공원에서 잭 다니엘 콜라를...

홍콩시티대학에서 저와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는 대학원생 A가 내일 한국으로 떠납니다. 3주 가량 머물고 홍콩으로 돌아와 다시 일주일을 자가격리해야 하니, 한 달은 그를 보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환송연 겸 술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8시가 넘어 지하철을 타고 몽콕으로 이동합니다. 비록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10시가 되면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MTR에 올라탔습니다. 몽콕역 D2 출구로 나와 잠시 헤매다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몽콕 수제맥주 거리로 향했습니다. 홍콩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A와는 몽콕 수제맥주 거리 <트라팔가> 바에서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더랬습니다. 제가 여러 군데 다녀보았는데, 몽콕에서는 여기가 가장 제 스타일이었지요. 그래서 오늘도 그곳을 염두에 두었습니다만, 아하, 갑자기 소주가 당기는 것을 어찌합니까! 그래서 <트라팔가> 앞에서 발길을 돌려 한식 레스토랑인 <오빠 oppa>로 향했습니다. 

한국 홍대나 건대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테리어지요? 저도 한국 직장이 대학로에 있어서 이런 풍경에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이런 가게 입구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단 하나 남은 테이블에 착석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를 제외하고 죄다 홍콩 현지인이었습니다. 보통 홍콩 한인 식당을 가면 한국인 50%, 일본인 20%, 기타 30%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오늘의 이곳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를 방문하신 분들은 아마 한국 문화에 꽤나 익숙하실 것 같습니다. 

대단히 한국적인 분위기를 내는데 신경을 썼다는 점 만큼은 분명합니다. 다양한 메뉴의 가격이 홍콩 한인 식당임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입니다. 기본 반찬으로 김치와 콩나물, 미역무침이 나오네요. 물통을 이렇게 내오는 것도 홍콩에서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가게를 쭉 둘러본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거든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우면서도 소주는 물론이요 맥주조차 마시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뭐,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홍콩의 분위기라는 것이지요. 술집이 아닌 식당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요. 일단 둘 다 저녁을 먹고 온 상태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김치찌개를 하나 시켜 안주 삼아 소주 2병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삼겹살 냄새가 너무도 제게 다양한 한국의 추억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참고로 한국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침사추이의 여러 고기집들은 고급 한우 식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급"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 <오빠> 식당처럼 한국 대학가 분위기를 내는 곳은 없습니다. 2022년 현재는 이 체인점(<오빠>는 프랜차이즈입니다. 홍콩에 여러 지점이 있습니다)이 거의 유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곳은 김치찌개(HKD 75)는 정말로 형편없습니다. 저는 결코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게다가 김치찌개는 실패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메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김치찌개에 김치가 거의 들어있지 않고 돼지고기나 참치도 없으며, 엉뚱하게 김을 넣었습니다. 마치 열무김치로 만든 국수를 뜨겁게 끓여서 내놓은 꼴입니다. 첫 숟갈을 뜬 우리는 대단히 실망했으며, 저는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모조리 찌개에 투하했습니다. 이것도 홍콩 사람들은 생각 못할 임기응변이지요. 확실히 김치를 많이 넣으니까 좀 낫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청정원이나 풀무원에서 나온 김치찌개를 데워서 내놓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편이 더 저렴할 것도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이 가게에는 매우 다양한 메뉴가 있으며, 김치찌개 하나로 낮게 평가받을 장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적인 "바이브"를 매우 즐겼으며, 소주도 술술 넘어갔습니다. "생일 축하"를 등쪽에 새긴 홍콩인 직원들도 매우 바쁘게 움직이며 주문을 받았지요. 여기는 기본적으로 삼겹살과 콜라를 즐기는 홍콩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우리처럼 김치찌개 하나 덜렁 시켜놓고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없지요. 여기 소주는 한국 돈으로 1만원입니다.(HKD68) 하지만 홍콩 물가를 생각하면 비싸지 않습니다. 게다가 태국에서도 소주는 1병에 1만원이 넘지요. 아마 이곳 삼겹살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삼겹살이 맛없기는 어려우니까요. 다음 번에는 여기서 고기를 한 번 구워볼까 합니다. 


원래 한국 사나이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1차로 끝나면 섭하죠. 김치찌개에 크게 실망한 대학원생 A는 <트라팔가>에서 2차를 하자고 꼬십니다. 안 갈 수 없죠. 내일부터 홍콩은 술집이 새벽 2시까지 영업 가능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10시에 다 문을 닫지요. 아쉽지만 그래도 입가심은 해야죠. 

가게 안은 홍콩에서는 그래도 꽤나 넓은 편입니다만 사진이 모든 것을 담지는 못하네요. 이미 시간은 9시 30분입니다. 겨우 30분 맥주를 마시려고 들어왔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여하튼 서둘러 주문합니다. 

바텐더가 와서 맥주가 거의 다 떨어졌다며, 이 드래프트 맥주를 권했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홍콩에서 드래프트 맥주 마실 기회가 드물기에 냉큼 주문했습니다. 그냥 평범한 라거였습니다만, 그래도 가게 분위기가 좋아서 상관없었습니다. 

어느덧 10시가 넘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손님을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홍콩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중국"이 아닙니다. 우리 옆 테이블에서는 서양인과 홍콩인 남자 손님들이 합석을 해서 떠들썩하게 술을 마십니다. 가게 셔터를 내리기까지는 시간 여유가 더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0시가 되기 직전에 맥주를 추가로 주문한 뒤 11시까지 여유롭게 마셨습니다. 우리가 가게 문을 나설 때까지도 문을 닫지는 않았습니다. 사장님께서 용가리 통뼈가 아닌가 합니다. 


대학원생 A와 저는 예전에 몽콕에 있는 공원에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었습니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잭 다니엘 코크 2병과 과자를 산 뒤 벤치에 앉았습니다. 공원은 우리처럼 술을 마시는 홍콩 젊은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세미나 이야기를 하면서 잭 다니엘 코크를 홀짝거립니다. 데리다의 탈구조주의나 해체주의는 참 재미있습니다. 데리다는 "차이" "침투" "해체" 등의 개념을 자주 사용했는데요. 예컨대 한국 문화는 일본 문화와 서로 "차이"납니다만, 양국의 문화는 상호 "침투"하지요. 그래서 심지어 자기 문화에 이질적이거나 적대적인 요소까지도 "침투"되어 "해체"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창조적 파괴"라고 읽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술이 모자라서 다시 잭 다니엘 코크 4병을 더 사옵니다. 한국에서는 왜 이 친구를 판매하지 않을까요? 저는 잭 다니엘 코크를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잘 팔릴텐데 말이지요. 대학원생 A는 아직 짐을 전혀 싸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고 해서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헤어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꽤 있는 자정 무렵의 몽콕 거리를 걸어갑니다. 역시 도시는 북적여야 제 맛이죠. 이제 당분간 보지 못할 A와 작별인사를 하고 저는 집쪽으로 걸어갑니다.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거든요. 여름이 가까워져 다소 습한 홍콩 밤거리에서 뜬금없이 장국영과 이소룡을 생각하며, 안전하게 귀가했습니다. 내일부터는 홍콩 술집이 새벽 2시까지 영업 가능하니, 훨씬 다채로운 체험이 가능할 듯합니다. 

https://hongkongfp.com/2022/05/19/hong-kong-bars-clubs-reopen-restaurants-allowed-to-operate-until-midnight-as-covid-19-rule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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