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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6월 4일과 5월 35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 문학동네)

제가 홍콩에서 가장 기념하고 싶었던 두 날이 있습니다. 장국영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4월 1일, 그리고 1989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운동 기념일입니다. 지난 5월 18일, 대한민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을 KTX에 태워 광주로 이동한 뒤 유족들과 함께 걸어서 <민주의 문>을 통과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습니다. 지난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번역해서 부르며 시진핑 정부에 맞섰던 홍콩 젊은이들은 한국을 지켜보며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리고 세계사적으로는 훨씬 널리 알려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지도 못하는 그들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들끓고 있을까요? 분노? 체념? 안타깝게도 시간이 흘러갈수록, 전자보다는 후자가 커지는 듯합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2/05/19/6TUXB3IFDZHXPKQHORHIHH54PE/


홍콩 정부는 지난 몇십년 동안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허용했습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해마다 6월 4일이 되면,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그 날의 고통을 되새기며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홍콩 정부는 코로나 시국을 이유로 최초로 6월 4일 기념식을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는 홍콩 보안법 통과 직전이었는지라, 수많은 시민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빅토리아 파크에 모여 "일당 독재 종식"을 외쳤습니다. 중앙 공산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금지된 본토와는 대비된 모습이었지요. 하지만 그들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는지도 모릅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60216598273419

6월 4일 기념행사에 대한 홍콩 정부의 본격적인 탄압은 국가보안법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2021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상기한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안문을 기리는 홍콩 '6.4 기념박물관'이 폐관되었고, 홍콩 역사상 처음으로 빅토리아 파크 기념행사가 완벽하게 금지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몰래 찾아가 꽃을 놓고 오는 행위마저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촛불 대신 불붙은 전자담배 등을 들고서 항의했습니다. 민주화 시위의 상징인 검은 티셔츠를 빼놓지 않을 수 없지요.

출처: 조선일보 <천안문 32주년, 홍콩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china/2021/06/04/KER3F7EOMJANREVANPOJHQNGJA/

그렇다면 천안문 민주화 운동 33주년인 2022년 6월 4일의 풍경은 어떠했을까요? 한마디로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6월 4일, 아니 5월 35일 당일에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검은 티셔츠를 입고서 적지 않은 시민들이 길거리를 향했지만, 홍콩 경찰은 빅토리아 파크를 비롯한 도시의 번화가 곳곳을 철저히 통제하며 시위를 차단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홍콩 경찰은 6월 3일 저녁 7시 30분부터 전통적인 기념행사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를 ‘작전 구역’으로 선언하고 현장을 봉쇄했습니다. 홍콩 경찰은 올해부터 단체가 아닌 "개인"의 추모 행위 또한 불법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직접적인 실행으로 옮겨져, 민주화 구호를 외치던 시민들 다수가 경찰의 검문을 받고 체포되었습니다. 반면에 대만과 미국, 유럽에서는 오히려 천안문 추모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져,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605/113799706/1


6월 7일 화요일 아침, 제가 무척이나 아끼는 후배가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홍콩이 버린 것을 타이완이 되살렸다...의미는?>라는 제목이었지요. 기사 내용은 제게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220607080015562

홍콩의 제1 명문인 홍콩대학교에는 <수치의 기둥>이란 기념물이 있었습니다. 덴마크 예술가 옌스 갤치옷이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기념해서 만든 조각상입니다. 하지만 작년인 2021년 12월 말에 홍콩 정부에 의해 기습적으로 철거되었지요. 저는 홍콩대학교에 놀러 갔을 때 <수치의 기둥>을 보고서도 기념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적인 기념물이 그렇게 계속 서 있을 줄 알았지요. 하지만 저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저는 이대로 저 <수치의 기둥>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377

그런데 신문 기사를 보니, 타이완에서 작가의 허락을 얻어 3D 프린터를 이용해 저 작품을 복사해서 전시했다고 합니다. 물론 원본은 이제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복사품이나마 타이완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타이완의 저와 같은 행보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중국"이 있게 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치의 기둥>을 계승한 민주주의 국가인 "중화민국(타이완)"이 뚜렷하게 구분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는 중국의 유명 작가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산문집에서 "5월 35일"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중국에서는 6월 4일이라는 단어를 거론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제한되지요. 그래서 깨어 있는 중국인들은 꾀를 내어, 5월 35일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습니다. 5월달은 31일까지 있으니, 4일을 더하면 35일이 되지요. 바로 6월 4일을 상징합니다. 위화는 "5월 31일 정신"은 중국식 금기에 대한 반항과 자유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니, 결과적으로 풍자와 암시가 발달할 수밖에 없지요. 서글픈 현실입니다만, 그 덕분에 문학이 훨씬 풍성하고 다양해진다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https://www.ajunews.com/view/20150601133127845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523


정치적 관심이 높은 홍콩의 젊은이들은 사랑하는 그들의 도시가 자유를 잃어가는 광경에 분노하거나 체념하며,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홍콩 시민들 대다수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높이며, 그 자유는 홍콩 시민 모두에게 고르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과 홍콩 정부 등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 자유의 탄압에 신음합니다.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른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의 젊은이들 특히나 이대남(20대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오히려 자유 민주주의가 훼손 중이라고 진단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전통적인 리버럴들은 국가적인 통제를 당연하게 여겼던 "군부 독재"에 맞서 시민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6월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의 "자유로운 liberal" 정신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욱 끔찍한 것은, 개딸과 양아들로 대변되는 21세기 홍위병들의 "민간에 의한 '자유' 탄압"이 이제는 겉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본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었던 "노사모"는 김어준 따위의 사이비 교주에게 맹목적으로 휘둘리는 사이비 집단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에도 "권력을 감시하겠다"라고 천명한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집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무지성 팬클럽인 "대깨문"에서부터, 정치인 팬덤은 변질되어 일종의 광신 집단이 됩니다. 벌써 팬덤 명칭만 보아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과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은 그 폭력성과 배타성에서 차원을 달리 합니다. 게다가 "권력 감시"를 주장한 노사모와 달리, 대깨문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외쳤죠. 원래 특정 집단이 극단화되기 시작하면, 그 뒤로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문재인의 "대깨문"들이 이재명의 "개딸-양아들"을 비난하는 것은 웃픈 희극에 가깝습니다. 두 집단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태극기부대"를 비웃을 수준이 전혀 아니지요. 진보를 망친 주범이라는 점과 대한민국 정치에 해악을 끼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요.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20/11/1227027/


"대깨문"들의 양념질로 정치적 수혜를 톡톡히 보았던 친문 정치인들은 뒤늦은 "개딸-양아들"의 문자 폭탄에 그들이 했던 방식과 똑같이 당하고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오랜 기간동안 공들여 키웠던 친더불어민주당 스피커였던 김어준, 이동형 등이 이재명 라인으로 갈아타고 나니, 이제 똑같이 몇 배로 당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팬덤 정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인물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이 아닌 한줌의 유튜버라는 것입니다. 당장 임기말 지지율이 40%를 넘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한줌의 유튜버들이 이재명 계열로 갈아타고 나니, 제아무리 양산에서 불만을 터뜨리며 도움을 호소해도 민주당 지지층이 들은 척조차 하지 않지요. 친문 정치인들 또한 딱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끈 떨어진 문재인 대통령 계열 정치인들에게 빨아먹을 꿀 따위가 없는데, 생계형 정치 유튜버들이 그들에게 줄을 댈 리가 있겠습니까? 대선과 지선 패배의 책임을 문재인 5년 정권에 돌림으로써 이재명을 구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민주당 지지층은 정치인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은 없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김어준의 뉴스 공장>을 듣지요. 누가 민주당 지지층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저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개혁만으로는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봅니다.  



흥미롭게도, 이재명 후보조차 자신의 "개딸" 팬덤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분석을 담은 뉴스가 오늘 나왔습니다. "개딸" 팬덤이 친문 계열 의원들에게 가하는 위협의 수위는 이재명 의원에게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반대 진영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요. 아울러 박지현 (전)비대위원장은 이재명 의원이 선거 하루 전날까지 유세를 데리고 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데, 이재명 의원과 말 한 마디 섞어보지도 못한 개딸들이 그녀를 정치적 시궁창으로 넣어버렸지요.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대약진 운동" 실패의 책임을 지고 권력을 내려놓았던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선동해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반대파를 척결하고 정권을 재탈환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천 년 된 중국 문화재들이 박살나는 것을 원치는 않았을 터입니다. 게다가 마오쩌둥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으니만큼 홍위병들이 멈춰주기를 바랬지만, 이미 홍위병은 마오의 통제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이 때 마오쩌둥은 이재명 의원이 참고할 만한 기막힌 해법을 제시합니다. 즉 홍위병들에게 "농촌으로의 하방"을 명한 것이지요. 그들을 잠재우기는 불가능하니, 분노와 열정을 다른 곳에다 풀라고 탈출구를 마련해준 셈이지요. 마오의 전략은 대성공이었으며, 이제 홍위병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채 농촌으로 몰려내려갔으며, 그 중 일부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오의 책략을 깨닫고 민주주의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당선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개딸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적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뜻밖에도 반복되는 경우가 잦은지라, 주의를 기울여 지켜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00767?sid=100

저는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일부 대한민국 국민이 홍콩보다는 차라리 중국 인민들과 닮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을 비웃으면서도, 같은 시민들의 "자유"를 본인이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지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자유"와 "반자유"의 구분에 비하면 오히려 부차적인 이슈에 불과합니다. 정부의 억압보다 시민들 사이의 억압, 외적인 통제보다 내적인 통제가 훨씬 더 본질적인 위험이라는 점을 뼛속 깊이 체감하고 사는 오늘입니다. 아래는 진보 성향의 <루빈 리포트> 진행자이며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동성연애자인 "데이브 루빈"이 어째서 오늘날의 좌파들과 함께 할 수 없는지 밝힌 심정입니다. 그에 따르면 참된 진보주의자는 progressive해야 하지만, 오늘날의 좌파는 오히려 regressive(퇴보적)입니다. 비록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적" 노선과 오늘날 문재인-이재명의 "퇴보적" 노선이 어떻게 다른지 핵심을 짚고 있어서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TshraY46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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