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20206 자유가 사라지는 홍콩의 현장

저는 2021년 9월 1일부터 홍콩시티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입니다. 홍콩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여기저기를 방문하며 나름대로 다양한 삶을 누렸습니다만, 오히려 홍콩의 정치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습니다. 첫째, 대한민국의 정치 변화가 너무도 스펙터클하여 홍콩 정세에 관심을 두기 어려웠고 둘째, 여기 있는 동안 홍콩 현지 라이프를 가능한 한 경험하고 떠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이른 구내식당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센터로 돌아오는데, 오성홍기를 내리는 절차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한 번도 못 보았던 장면이라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홍콩시티대학에서 제법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수영장 건너편에서 조용히 몇 분 동안 진행되는 주간 행사라, 제가 눈여겨보지 못했던 까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돌아가던 대학원생과 군대에서 국기를 게양하던 추억에 대해서 떠들면서 별 다른 생각 없이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을 읽다 보니, '오성홍기 게양'이 2022년에 와서야 처음 시작된 행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끌며 ‘홍콩 민주주의의 보루(堡壘)’이던 대학가도 굴복하고 있다. 홍콩이공대와 중문대, 링난대 등은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각각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 게양식을 열었다. 작년 9월 말 홍콩 입법회에서 통과된 국기법·국가휘장법 개정안에 따른 ‘홍콩 각급 학교의 매주(每週) 국기 게양식 개최’를 지키는 행사였다."(조선일보 2022년 1월 11일 기사)

https://www.chosun.com/opinion/2022/01/11/MPNS452D55GWHEFIZ2MVRA7FUM/?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제가 본디 눈썰미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호기심이 많은 터라 오성홍기를 올리거나 내리는 행사를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틈타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를 무시하고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화하는 정책의 일환이 바로 '홍콩 각급 학교의 매주 국기 게양식 개최'였던 것입니다. 이제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는 홍콩시티대학 교정에 중국화가 진행되는 역사의 현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2달도 채 되지 않은 작년 12월 22일 밤, 크리스마스로 인해 온 홍콩이 들떠 있던 그 시기에, 홍콩대학교에서는 천안문 시위 추모 조각상인 '수치의 기둥'이 철거되었습니다.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40104

저는 홍콩대학교 교정을 여러 번 드나들었습니다. 제 브런치 매거진에 홍콩대학교 방문 후기를 작성하기도 했지요. '수치의 기둥'이 철거되기도 전에 썼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수치의 기둥을 보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으며, 사진을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역사적인 기념물이 영원히 그곳에 그렇게 서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이제 '수치의 기둥'은 이제 제가 보고 싶어도 영원히 볼 수 없는 기억 속의 건축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홍콩과 마카오는 천안문 시위를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중국 땅'이었는데, 저는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기념물과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울러 1월 29일에는 홍콩대학교 기숙사 앞에 있는 공공 기념물 하나가 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캘리그라피 기념물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습니다만, 이제 저도 모르는 사이 역사적인 기념물이 또 하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29일 홍콩대학은 기숙사 앞 스와이어 브리지 도로에 적혀있던 캘리그라피(글씨 작품)를 없앴다. 여기에는 '냉혈'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차가운 피 속에서 희생된 톈안먼 시위대를 추모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매해 글씨 위에 페인트를 덧대며 희생자들을 기려왔다. 하지만, 이날 홍콩대학은 일상적인 유지 보수 작업이라며 금속으로 글씨를 덮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정치 관련해 홍콩을 더욱 엄중히 단속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조치다." (BBC뉴스, 1월 30일 기사)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0137240?xtor=AL-73-%5Bpartner%5D-%5Bnaver%5D-%5Bheadline%5D-%5Bkorean%5D-%5Bbizdev%5D-%5Bisapi%5D


한편 2022년 1월 초, 홍콩에서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전구일보>가 결국 중국 당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 폐간했습니다. 2021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이후 민주진영 신문사가 4곳째 문을 닫았는데, 이로써 홍콩에는 사실상 민주진영에 속하는 언론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10514490757483


한편 2021년 6월 4일, 천안문 시위 32주년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던 빅토리아 파크는 정부 경찰에 의해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빅토리아 파크에서는 매년 6월 4일에 전통적으로 대규모 천안문 시위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비록 2020년에는 코로나 시국을 이유로 빅토리아 파크를 폐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그곳으로 개인적으로 들어가 추모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21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 전후를 계기로, 이제 이 '국가보안법'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한 최초의 사례가 바로 '천안문 시위 추모 행사 장소 폐쇄'였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74661

저는 2022년 6월 4일, 천안문 시위 33주년째 되는 그날에 홍콩에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또 어떤 역사와 함께 하게 될까요? 인정합니다. 그동안은 홍콩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가급적 다 접해보겠다는 일념으로 홍콩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당장 3월 9일에 있을 대한민국 대선이 제게는 훨씬 더 관심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급박한 정세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홍콩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듭니다. 홍콩을 사랑하는 로컬 젊은이들은 능력이 있을 경우 고향을 탈출하려 하고, 능력이 없을 경우 무력감에 빠집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자유를 향한 홍콩의 목소리는 거센 시위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지만, 중국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가 의심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적어도 중국이 홍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확실한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민주노총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대규모 집회를 여러 차례 강행했던 사례는 그래도 "자유"가 있기에 저지를 수 있었던 방종입니다. 홍콩의 공안은 실탄을 장착한 총을 항시 휴대하며, 명령이 떨어질 경우 정말로 발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전두환과 가까운 전체주의식 사고를 지니면서도 겉으로는 전두환을 욕하는 괴상망측한 대선 후보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한심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아직까지 살아있기에, 그와 같은 대선 후보 및 그를 추종하는 정치세력을 교체할 여지 또한 남아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유"가 있는 한, 대한민국 국민은 절대로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자유가 매일 깎여나가는 광경을 목도하는 홍콩의 시민들은 갈수록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힘을 보탠다고 해도 현실이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세력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거대 양당이나 제3세력, 그리고 그 지지층이 그 카테고리 안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인과 그 지지층을 '진영'이라고 명명할 때, 어떤 정치진영의 스타일이 "자유"과 거리가 먼 21세기 중국의 통치방식과 더욱 유사한가? 어느 정치 진영의 색깔이 홍콩과 가까우며, 그 반대 진영의 색깔이 중국과 가까운가? 오직 "자유"를 기준으로 보면, 그 실체가 좀 더 명확히 드러난다고 봅니다. 그리고 PC주의가 판치기 이전 자유가 넘쳤던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지금의 사이비 진보 정권이,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얼마나 양극단에 서 있는지 또한 분명해지리라고 봅니다. 오늘날 2030, 특히 이대남들의 분노와 그에 따른 정치적 판단은 이로 볼 때 매우 시의적절하고 정당합니다. 


 홍콩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이제 제게는 약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은 홍콩이 겪고 있는 정치적 아픔이나 역사적 상흔에 대해서 좀 더 시간을 들여 살펴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문서를 통해 할 수 있겠지만, 귀국하고 난 뒤 따로 시간을 들여할 것 같지가 않아서입니다. 영상의 기온에도 뼈가 시리는 찬 바람을 불어넣는 홍콩의 겨울 속에서 따뜻하지만은 넋두리를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20123 홍콩 서구룡문화공원+삼수이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