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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홍콩 몽콕 <랑함 플레이스> 밤산책

오늘 저녁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창밖을 보니 유리창이 젖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미니 사케 2병이 있었습니다. 일하다가 컨디션이 좀 떨어져서, 사케를 마시면서 속도를 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생각보다 사케가 엄청 독했습니다. 1병을 마시자마자 술이 얼근하게 취해서, 더 이상 업무가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을 틀어놓고서 1병을 더 마셔 버렸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4ldT35NK4U

제가 몇 번씩이나 돌려보는 <회사원 시리즈>입니다. 홍콩에 와서도 일본을 동경하고 있군요. 솔직히 말하면, 홍콩과 일본 가운데 어느 곳에서 일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하지만 저는 퇴근 후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저런 일본 샐러리맨 분위기가 좋습니다. 무척이나 일본 또는 한국적이지요. 미국이나 유럽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바를 찾는다 하더라도, 절대 저런 분위기가 아니니까요. 마츠다 부장님, 꼭 만나고 싶네요.


사무실에 앉아 있더라도 어차피 업무는 불가능한 상황, 어느덧 비도 그쳤으니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서 귀가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술이 좀 되었으니, 며칠 전 잠깐 들렀던 몽콕 <랑함 플레이스>에 가서 혼술이나 한 잔 더 할까 싶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니, 이미 정문은 잠겨 있더군요. 걷다 보면 어딘가 또 다른 출입구가 있겠지요? 아니나다를까, 건물 옆구리로 젊은이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습니다. 냉큼 들어갔지요.

<랑함 플레이스> 하면 또 살벌하게 긴 2개의 에스컬레이터로 유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개미 한 마리 없는 시간에 와야지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겠지요? 두 말 않고 올라갔습니다.

 

휴, 1단계 에스컬레이터를 끝까지 타고 올라와 위에서 내려다보니, 살벌합니다. 마치 스키 활강이라도 해야 할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제 곧장 이어진 2단계 에스컬레이터로 향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높은데, 또 저 혼자만 전세 내고 타는 셈이로군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좀 심심하기는 합니다.

올라가다보니, 10층과 11층 그리고 12층까지 한 번에 꿰뚫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온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요? 이제 <랑함 플레이스> 옥상에 있는 비어 가든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천장은 마치 트루먼 쇼의 공간처럼 막혀 있기 때문에, 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멋진 조명의 비어가든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역시 비 오는 평일이다 보니, 손님이 거의 없군요.

계단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입니다.

<더 스카이 바>가 제일 규모가 큰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장사를 접었네요. 평일 밤은 어쩔 수 없습니다.

<토닉> 바는 그래도 고객이 꽤 있군요. 주로 젊은 직장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거의 없는 날에 와보아야, 진짜 잘 나가는 가게를 분간해낼 수 있지요. 제가 다음에 온다면, 일단 <토닉> 바에 앉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도 너무 늦고 해서 앉아서 즐길 생각은 없네요.

자, 이제 대충 둘러보았으니 다시 왔던 계단을 걸어서 내려갑니다. 여러 번 보면 물릴 수도 있는 풍경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보고 또 보아도 세련되어 좋네요.

계단 아래 중식 레스토랑 또한 분위기가 매우 멋집니다. 몽콕의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하기에 참 좋은 장소인 듯합니다. 다만 저 같은 독거노인은 좀 앉아 있기가 외롭겠습니다. 건물 밖을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조던 역의 숙소까지 걸어오고 나니, 잠이 쏟아졌습니다. 억지로 넷플릭스를 보기보다는, 이대로 자는 편이 낫겠지요.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사무실에 출근했습니다. 어제 마신 술이 뜻밖에 깨지를 않아서, 할 수 없이 페스티벌 워크의 <퍼시픽 커피>로 향했습니다.

저 두 남자 종업원은 이미 익숙합니다.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고, 항상 밝은 분위기로 주문을 받으니 저 또한 기분이 좋아집니다.

테이크아웃 주문을 넣고 난 뒤, 잠시 소파에 앉아서 기다립니다. 이제 이곳도 한 달 뒤면 "굿바이"이겠군요. 남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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