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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사추이 맛집 키칸보(鬼金棒)+엘리펀트 그라운즈

220615 침사추이 맛집 탐구

오늘은 2022년 6월 15일 수요일입니다. 매주 수요일은 대학원생 B와 점심 또는 저녁을 함께 하는 날입니다. 사무실을 온종일 함께 쓰지만, 식성과 식사시간이 달라서 자주 함께 하지는 못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으면 좋겠는데...아무튼 아무 문제 없이 각자의 생체리듬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1년 일찍 왔을 뿐이지만, 정말 홍콩의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꿰고 있는 듯합니다. 비록 요란하게 블로그를 쓰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녀를 따라 다니면 남자들끼리 몰려다녀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귀한 집들을 아는 행운이 눈앞에 뚝 떨어집니다! 오늘은 한국식 중화반점 <봉루>와 일본라멘집 <키칸보> 가운데 한 곳을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까지는 한국식 짬뽕이 먹고 싶어서 <봉루>를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 달 있으면 귀국할텐데, 굳이 한국식 짬뽕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보다는 일본에서도 유명하여 홍콩에 지점이 생긴 <키칸보>를 방문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을 피하기 위해 11시에 일찌감치 사무실 문을 나섰습니다.

요즘은 '귀신 귀' 글자만 보아도 "귀멸의 칼날"이 생각납니다. 이 나이 먹고 어쩌자고 오타쿠가 되어서 이렇게 동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11시부터 영업 시작인데 놀랍게도 아직 준비중이라고 문 앞에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워낙 햇볕이 강렬하여 일단 안에서 기다리자고 해서 들어갔더니, 또 영업을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종업원들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오히려 좋네요.   

엄청나게 큰 도깨비 방망이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입구에 들어섭니다.

오전 11시 30분인데, 이렇게 아늑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다니, 너무 취향저격 아닙니까? 전완근이 우람한 쉐프가 벌써부터 재료를 씻고 손질하며 오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홍콩 레스토랑답게 폭은 좁지만, 가게 안은 은근히 깊습니다. 우리 둘은 바bar에 앉았습니다. 그냥 종업원이 이끄는 대로 가서 앉았는데, 일본에 온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하여 훨씬 좋았습니다. 가벼운 사미센 소리가 울리는 가게 안은 마쯔리(일본 여름 축제) 분위기가 살짝 돌았습니다. 해운대 출신 바다 사나이인 저는 여름과 바다, 청춘 이런 단어만 들어도 아직까지 가슴이 뜁니다.

QR 코드를 찍어서 주문하는 시스템인데, 저는 첫 방문인지라 "추천" 메뉴를 골랐습니다. 저기 위에 "coriander"는 무슨 뜻일까요? 바로 "고수(팍치)"입니다. 고수를 영어로 coriander라고 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배웠습니다. 저 메뉴는 팍치를 산더미처럼 쌓아서 주는 것이 바로 매력입니다. 저처럼 팍치 매니아가 아니라면, 저 메뉴를 피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저야 땡큐죠.  

 역시 저는 사진 찍는데 서툽니다. 저기 한 켠에 굴러다니는 구겨진 휴지가 자꾸 눈에 걸리는군요. 하지만 라멘 맛만큼은 정말 "우마이!"입니다. 국물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만, 육수 맛이 매우 진합니다. 고기도 큼직하니 먹음직스럽게 잘 썰려 있고, 무엇보다 양이 꽤나 많습니다. 허구헌날 돈코츠 라멘만 찾던 제가 새로운 세계를 만났네요.

대학원생 B는 일본어가 익숙한데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도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일본 문화를 즐기는 편이라, 오늘은 마치 일본에 놀러온 것처럼 즐겁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늘길이 열리면, 꼭 일본을 방문해보고 싶네요.

이제 식사가 끝났으니, 값을 치르고 나가야겠지요? 계산대 위에 놓인 도깨비들이 정겹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니 너무도 배가 불러, 침사추이 일식 거리 등을 거닐면서 잠시 산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내친 김에, 고급 쇼핑몰 K11 Musea에 가서 커피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레스토랑 이름은 <엘레펀트 그라운즈 Elephant Grounds>입니다.

K11 옥상에 자리한 이 레스토랑 겸 커피숍은 홍콩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옥상 전체가 정원풍으로 꾸며졌는데, 저녁에 방문하면 더욱 멋질 듯합니다. 하지만 원래 이런 곳은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적어도 두 번은 와봐야죠.  

레스토랑 밖은 오늘따라 너무 더워서, 안에 들어가서 마시기로 했습니다.

입구의 저 방석 색깔을 주목해주세요. 주황색이지요?

조그마한 레스토랑 안쪽도 주황색 인테리어가 여러 곳에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뉴판을 받아들었습니다.

자, 메뉴 우측 상단에 <타이 아이스 티 Thai Iced Tea>가 보이시나요? 태국 매니아인 제가 다른 메뉴를 주문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가뜩이나 주황색이 저를 마구마구 유혹하니 말이지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저 친구를 주문했습니다. 이곳의 타이 티는 아주 고급스럽게 조화된 맛이더군요. 정말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야 방콕의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파는 타이 티에 익숙한 입맛이지만, 확실히 좋은 물과 얼음을 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오래 머물면 오후에 사무실을 비우게 되니, 또 그러면 안되겠지요. 이제 저 멋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갑니다. 그런데 B가 내친 김에, 빵을 좀 사가자고 말합니다. 저야 산책을 더 하고 싶었으니 좋았지요. B는 지금 박사논문을 한창 준비 중이라, 저녁 늦게까지 버틸 비상식량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 어딘가 했더니 바로 <베이크 하우스>이군요! 저는 지난 4월에 센트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옆 브랜치를 방문했었지요!

https://brunch.co.kr/@joogangl/381

침사추이에도 지점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제가 사는 조던 역에서 20분 거리 내에 이런 맛집들이 죄다 포진하고 있었군요.

여기는 센트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지점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때 맛있겠다고 눈여겨 보았던 빵들은 다 있더군요. 평소에는 매우 줄이 길다던데, 오늘은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금방 가게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배가 너무 불러서 사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집 근처인 것을 알았으니 저녁에 출출하면 언제든 출동 가능합니다. 즐겁게 빵 쇼핑까지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니 오후 2시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다소 길었습니다만, 저야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오니까 어떻게든 업무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유럽인들이 점심 시간을 2시간 넘게 가지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시간을 여행 온 것처럼 보내고 나면, 오후를 아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두 번 사는 느낌이니까요. 저녁 식사 시간을 길게 가지면, 하루를 세 번 사는 느낌도 있습니다. 뭐, 이것도 제가 홍콩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요. 그냥 감사히 여기고 즐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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