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20609] 홍콩 몽콕 랑함플레이스 <텐키치야>

일식 맛집과 멋진 카페DPD

오늘은 2022년 6월 9일 목요일입니다. 어제와 오늘 오전까지 폭우가 쏟아졌습니다만, 오후부터는 비가 그친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오늘은 홍콩시티대학에서 함께 사무실을 공유하는 대학원생 B와 중문대학 후배인 최국 등 3명이 몽콕 <랑함플레이스>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에 <랑함 플레이스> 한국 분식점인 <킴스스푼>에서 간단한 요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435

오늘은 일본 스타일 튀김을 먹으러 가는 길입니다. 남자들끼리 몰려 다니면, 맛집을 방문할 기회가 드뭅니다. 그런데 홍콩은 살아보니, 사실 즐길 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결국 맛집 방문을 낙으로 삼게 되더군요. 느끼한 홍콩 음식에 물려버린만큼, 오늘은 바삭한 식감의 덴푸라를 좀 즐겨볼까 합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실내 장식을 구경하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니, 오늘의 1차 주인공인 <텐키치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전통 사미센 배경음악이 레스토랑 밖으로까지 흘러나와 매우 좋았습니다. 다행히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만 보아도 대략 메뉴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저 메뉴판의 뒷면에 오늘의 제 식사가 떡하니 자리잡고있습니다만, 떠들썩한 대화에 정신이 팔려 그만 사진을 찍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레스토랑 안은 홍콩스럽게 좁지만, 상당히 정갈하고 깔끔합니다. 홍콩인들은 무척이나 예의가 바릅니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한 편이지요. 한국어로 신나게 떠들어대는 우리 3명을 쳐다보는 눈빛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 정도 번화가에 나오면, 종업원이 반드시 한국어 몇 마디 정도는 날려 줍니다.

자, 드디어 제 식사가 나왔습니다. 사진에는 눅눅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잘 튀겨진 튀김과 시원한 냉면, 미소된장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나머지 2명은 다른 메뉴를 시켰는데, 대동소이했습니다. 다만 대학원생 B는 식사량이 많지 않아, 제가 조금 거들었습니다. 희한합니다. 저 또한 매우 소식하는 편인데, 외식을 할 때면 갑자기 위장이 늘어납니다.


중문대학교 박사과정 최국 후배는 천천히 밥을 씹으면서 일부러 튀김을 한곳에 미뤄놓고 있었습니다. 제일 맛있는 것은 따로 먹겠다는 심산이었던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가게에는 시간 제한이 있었습니다. 1시간이 넘자 종업원이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이제 시간이 다 되어 일어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최국 후배의 볼이 터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당장 눈앞에서 매정하게 내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 못 먹고 가게를 나와야 했습니다. 가게의 잘못은 아니지만, 홍콩 레스토랑은 시간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먼저 알아보고 가셔야 합니다.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릅니다. 비가 그쳐 하늘도 말끔하고요. 그래서 <랑함 플레이스> 꼭대기에 있는 비어가든으로 이동합니다. 비어가든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맥주집이 몰려 있어서 그렇게 불리는 모양입니다.

올라가는 길의 인테리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이럴 수가! 제가 <랑함 플레이스>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사는데도, 비어가든을 한 번도 온 적이 없습니다. 뭐, 홍콩독거노인이 혼자 엉금엉금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만, 정말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처럼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어디에 입장할까 결정 장애가 올 정도로 멋진 바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방콕 텅러에 소재한 <펑키 빌라>라는 클럽을 아시는지요? <데모Demo>와 연결되어 있던 방콕 최고의 클럽 가운데 하나였는데, 지금은 간판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힘이 펄펄 넘쳐서 며칠을 잠자지 않아도 충분했던 시절의 클럽인데, 갑자기 그리워지는군요. 역시 놀기에는 방콕이 최고지요. 홍콩은 방콕에 비하면 즐길 거리가 매우 부족합니다.

<랑함 플레이스>에서 와인 한 잔 하고 마무리하려 했는데, 최국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다소 어둡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랑함 플레이스>를 내려와서 몽콕 거리로 나섰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커피숍을 원했는데, 이럴 때에 또 새로운 멋집을 찾아야하겠죠.

우리가 2차로 선택한 곳은 바로 <카페 DPD>입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점장이 나와서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스타벅스나 퍼시픽 커피만 다녔던 제가 미워집니다. 하지만 홍콩독거노인인 저는 "집-회사-집-회사"로 사는 중이라, 어차피 여기를 다시 올까 싶습니다.

  

실내가 탁 트인 것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홍콩 젊은이들은 모노톤 계열 옷을 즐겨 입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유관순 패션"이나 "모나미 볼펜" 패션, 다시 말해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주로 입더군요. 꼭 그렇게 입지 않아도, 색채가 매우 단조롭습니다. 깔끔하기는 한데, 뭔가 홍콩만의 색깔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곤 합니다. 자,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주문할까요? 맥주가 있기는 합니다만, 주변 분위기를 보니 차마 고르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오레오를 잔뜩 쌓아놓은 소녀틱한 음료를 주문합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연애할 때도 주문하지 않은 메뉴인데, 이게 왠 날벼락일까요? 그렇게 혈관을 막히게 할 것 같은 지독한 달달함을 선보일 것만 같은 메뉴였는데, 뜻밖에 달지 않습니다. 사실 홍콩 커피숍을 가면 자주 이런 경험을 합니다. 당이 떨어져서 미친 듯이 단 것이 먹고 싶어 주문했는데, 별로 달지 않습니다. 홍콩인들은 장수하기로 유명한데, 이런 이유에서일까요? 그런데 저로서는 저렇게 심심한 친구를 원한 것이 아니라서, 다소 심통이 나기는 합니다. 그냥 콜라라도 시킬 것을 그랬습니다. 철학과 정치학 전공자들이 만났으니, 공부 이야기 외에 달리 할 것이 없겠지요. 마감 시간 직전까지 한국어로 시끄럽게 토론했습니다. 옆자리 홍콩 커플들은 우리를 보고 무슨 느낌이었을까요? '역시 <오징어게임>의 나라답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BTS 오빠들도 사석에서는 저렇게 말할까?' 제멋대로 상상해 보았을 따름입니다. 구룡반도에서 가장 떠들썩한 몽콕에서 후배들과 헤어져서, 독거노인은 다시 조던 역의 호텔로 향합니다. 아무래도 술을 한 잔 할 걸 그랬습니다. 정신이 너무 맑으니 오히려 이상하네요. 그래서 귀가 길에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사케 하나를 사서, <넷플릭스>를 보며 마셨습니다. 홍콩은 1년 살기에는 정말 괜찮은 곳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이나 방콕을 개인적으로 더욱 선호합니다. 짧은 인생이니, 언젠가는 또 그곳에서 살 기회가 있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220613] 홍콩 몽콩 맛집 카페 <알케미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