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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샤틴 보복산 965호, 장국영의 위패를 마주하다

저는 홍콩 노스포인트에서 자가격리를 하던 작년 8월부터 장국영의 자취를 찾아 헤매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보았던 영화 장면 하나하나를 죄다 읊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영화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40대에게, 장국영이라는 인물은 주윤발, 유덕화와 함께 삶의 일부였습니다. 다시 말해 장국영이라는 인물은 제 어린 시절의 여러 추억과 매우 강하게 얽혀 있으며, 그의 자취를 살피는 작업은 결국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추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홍콩에는 시진핑 주석 방문을 앞두고 '태풍 1단계 경보'가 내렸습니다. 가급적 외출을 삼가야 할 때이지요. 하늘은 꾸무덕하니 매우 흐립니다. 하지만 저는 1년 동안의 홍콩살이를 통해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날씨 핑계를 대고 여행을 망설였다간,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귀국할 터입니다. 때문에 특별한 사무가 없는 오늘 아침, 6시 반에 출근해서 일을 보다가 기어코 8시가 조금 넘어 의자에서 스프링처럼 튀어올랐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뤄서는 안 될 터, 오전에 장국영 사마를 영접하고 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제 일본식 맥주 및 사케, 태국식 버킷 칵테일로 어차피 알딸딸한 오전, 차라리 일찌감치 장국영 사마나 뵙고 와야죠.  


제가 근무하는 홍콩시티대학과 연결된 콸룬통(Kolwoon Tong)역과 오늘의 목적지인 샤틴 역은 두 정거장 거리입니다. 한국 관광객이 샤틴 역을 방문하는 목적은 크게 4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 장국영 위패가 모셔진 보복산. 둘째, 영화 <무간도>에 나왔던 만불사. 셋째, 샤틴 역보다는 차라리 타이와이 역과 더 가까운 <홍콩 문화 박물관>. 넷째, 이케아입니다. 저는 오늘 오전에 첫째와 셋째 장소를 가보고자 합니다.  


장국영의 위패를 모신 보복산 납골당(寶福山 Po Fook Hill Cemetery)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샤틴 역 B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쭉 걸어 내려갑니다. 그러면 눈앞에 거대한 이케아 빌딩이 보이는데, 다시 그 간판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계속 갑니다. 이 모든 과정은 5분 안에 끝나는데, 말로 설명하려면 오히려 복잡합니다. 그냥 샤틴 역 B 출구로 나와, 진격의 거인처럼 무지성으로 왼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마침내 아래와 같은 건물이 나타납니다.  


9시부터 오픈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입장 불가입니다. 이곳은 장국영만을 위한 관광명소가 아니라 수많은 분들이 잠들어 계신 납골당이기 때문에, 항상 행동을 삼가야만 합니다. 저 말고도 여러 가족들이 정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9시가 되니 저 문이 열렸고, 저는 다른 방문객과 함께 목적지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산을 끼고 있는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 숨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런 건축물 모두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전 중에 일정을 마치고자 하는 '관광객'은 언제나처럼 헐레벌떡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급한 일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이 와중에 거북이들이 참으로 평안해 보입니다. 

자, 이제 오른편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들을 차례대로 타고 오르면서 장국영 님을 영접하러 가야 할 때입니다. 보시다시피 비가 와서 대기는 깨끗한데 하늘은 파랗습니다. 비록 계단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하지만, 햇볕이 없어서 야외 활동하기에는 그만인 날씨이지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데, 주변 풍경에 그만 크게 탄성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킹콩이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야자수 풍경입니다. 

비록 계단 높이가 후덜덜하지만, 장국영 님의 위패가 이리도 아름다운 곳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에는 이와 같은 불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홍콩의 사찰을 여럿 다녀보니,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였습니다. 여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찰 자체는 유명하지 않지만, 이 곳은 아무래도 장국영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강제적으로' 방문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사찰 한가운데에 저와 같이 많은 유골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패만 있는 경우 또한 적지 않습니다.  

자, 장국영 님의 위패가 있는 곳은 보선당(寶禪堂) 965호실의 695번입니다.일단 965호실만 제대로 찾으면 695번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장국영 님의 사진이 있으니까요. 

동일한 모양의 골목이 반복되어 초행이라면 약간 헷갈릴 수 있는데, 그래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장국영 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자, 드디어 장국영 님의 위패를 모신 <보선당> 앞에 섰습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마음 편하게 저곳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왼쪽으로부터 가수 로만 탐(羅文), 희극 배우 선덴샤(沈殿霞), 그리고 장국영입니다. 앞선 두 사람은 생전에 친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2022년 올해는 장국영 사망 19주기입니다. 

https://www.mbn.co.kr/news/world/4465149

가급적 면도도 안한 아재 사진은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국영 님과의 사진 한 방은 남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임스 딘과 마찬가지로 그는 영원히 젊은 채로 역사에 남았고, 저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군요. 


하늘이 꾸물꾸물한 것이 심상치 않아, 장국영 님을 오래 영접하지 못하고 하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사무실로 귀가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에 있는 <홍콩 문화 박물관>도 잠깐 돌아보고자 합니다. 내려갈 때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계단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납골당이 있는 산이 너무도 아름다워, 다음에 올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주변을 둘러보고 싶네요. 샤틴 자체는 그다지 볼 것이 없는 조그마한 지역입니다만, 그래도 장국영 님의 위패 하나로 환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납골당 영업시간은 09:00-17:00이므로, 향후 방문계획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납골당 계단이 매우 가팔라서 힘들었다는 포스팅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이동 거리를 제외하면 <보선당>까지는 아파트 3층 계단 정도 걸어올라가신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이어서 <홍콩 문화 박물관>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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