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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문화박물관>에서 김용과 이소룡을 만나다

2022년 6월 30일, 아침부터 장국영 님의 위패를 영접한 흥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근처에 있는 <홍콩문화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입니다. 그곳에는 지금 유명한 소설가 '김용' 및 불세출의 스타 '이소룡' 전시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샤틴 역으로 돌아간 뒤, 이번에는 A3 출구 쪽으로 나갑니다.  

어딘지 모르게 대단히 일본스러운 <뉴타운플라자>를 거쳐서 나가야만 합니다. 비록 밖에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지만, 내부는 시원하고 깔끔합니다. 

<뉴타운플라자>는 <스누피 월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지붕 위에 불룩한 배를 내밀고 드러누워 자고 있는 귀여운 스누피가 보입니다. 스누피 월드와 <샤틴 퍼블릭 라이브러리>를 지나가면, 이제 저에게는 제법 익숙한 <샤틴 파크>가 보입니다. 

 어째서 이 샤틴 공원이 제게 익숙하냐면, 제가 타이와이에서 타이메이툭까지 걸어가는 4시간 산책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이와이~타이메이툭 산책로는 사실 도보용이 아닌 자전거 도로입니다. 여기를 걸어서 가는 사람은 저 외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희한하기도 하지요, 도보로 4시간이면 가는데 말이지요. 아침 7시에 출발하면 점심 식사 시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하루 10시간씩 걸어다녔던 저로서는 맥빠지게 짧은 거리입니다. 걷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자전거 타지 마시고 꼭 걸어서 플로버 코브 댐까지 가보시기 바랍니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사틴 공원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수풀이 우거지고 아주 잘 가꿔져 있습니다. 태극권 연습을 하시는 할아버지들을 지나쳐 <홍콩문화박물관>으로 향합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373

자, 이제 평소에 제가 가던 산책로를 거슬러 올라가 <홍콩문화박물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10시에 개장이기 때문에, 몇 분 기다렸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홍콩이 낳은 최고의 무비스타의 동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역시 '브루스 리'를 빼놓고서 홍콩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지요. 제 주변에도 이 동상 사진을 찍는 아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왔나 봅니다. 

QR코드를 찍고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1층 오른쪽에 <김용(金庸) 관>이 있습니다. 1924년에 태어나 2018년에 사망한 현대 최고의 무협 소설가인 김용(金庸)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전시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실내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더욱 안타깝게도, 저는 전시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대신, 관광객 마인드로 훑고 지나갔습니다. 이제 책상 앞에 앉아 사진도 없는 내용을 회상해내려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정말 후회스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굉장한 마니아는 아니라서 <영웅문> 시리즈-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외에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수많은 명작 가운데 하나인 <소오강호>는 소설이 아닌 <동방불패>라는 영화로 접했습니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절정의 고수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동방불패'이죠. 이연걸, 임청하, 관지림 등 홍콩 영화를 빛냈던 최고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에는 오직 '임청하' 세 글자만 남아 있습니다. 동방불패는 최강의 비기인 '규화보전'을 익혔는데, 불행히도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거세를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동방불패는 '사마천' 신세가 된 뒤에야 무림의 최고 고수가 되었지만,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이 때문에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적인 매력을 뿌리는 캐릭터로 '임청하'가 선정되었던 모양입니다. 영화 개봉 당시 임청하의 미모와 연기는 가히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코팅 책받침에도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와 함께 임청하가 수줍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김용 작가는 본디 중국 저장성 출신이었지만, 대학생 시절 상하이 대공보(大公報)에 입사해 일하다가 홍콩지사에 발령받으면서 홍콩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부터 김용은 사실상 홍콩 사람이지요. 참고로 김용은 매우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1951년에 부르주아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당했습니다. 그 뒤에 김용의 광팬인 덩사오핑이 아버지 처형 문제를 그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2018년 김용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리커창 총리,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등이 모두 애도를 표했습니다. 작가 김용의 위상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역사적 장면이었지요. 


이제 2층으로 올라가보니, "대니 융"이라는 원로 아티스트의 작품전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이분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홍콩현대문화원 의장이라고 합니다. 지난 2013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공공디자인 국제 심포지엄>에도 참석했었네요.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10413511578382

그가 지난 50년 간 남긴 예술적 발자취는 과연 어떠할까요? 다행히도 이 전시장에서는 사진촬영이 허가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에 꾸준히 등장하는 저 까까머리 소년을 보자마자 매우 홍콩스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해하는 "홍콩스러움"은 무엇일까요? 2022년 현재 홍콩스러움은 "외로움" "무기력함" "방황" "포기" 등과 관련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홍콩을 폄하한다고 여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7월 1일 홍콩을 방문하는 시진핑 주석보다는 제가 훨씬 "자유로웠던" 홍콩을 아낄 터입니다. 20세기 홍콩은 "이국스러움" "다채로움" "활기" "멋드러짐"을 상징하며,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 체제 중국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자유는 꺾이고 예술은 시들며 활기는 사라집니다. 제가 살고 있는 2022년의 홍콩은 능력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탈출하기를 꿈꾸는 유배지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도시를 굼뜨고 둔하게 만들었을까요? 

이번에는 홍콩 영화 예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실내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곳이 가장 볼거리가 많았는데 말이지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사진을 찍다가 스태프에게 주의를 들었는데, 그 덕분에 두 장 정도 사진을 건졌습니다. 

이소룡과 성룡으로 이어지는 무술 영화의 전성기 코너에서 찍은 사진인데,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인물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전시관을 방문하시면, 홍콩 영화 및 방송 예술의 범위가 매우 넓으며, 그 저변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 곳을 조금 더 일찍 방문했더라면, 주말에 몇 번 더 왔을 것입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이 전시공간은 정말로 곱씹을 만한 자료들이 많습니다. 상당수가 제 어린 시절과 깊숙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홍콩이 낳은 최고 스타인 그 분이 오셨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그의 영화를 보면 상당히 "중뽕"이 심한 국수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이소룡 영화를 즐겨본다고 해서 중국 공산당에 심취하지는 않지요. 우리가 브루스 리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전시관에는 이소룡의 어린 시절 및 결혼 생활 등 사생활과 관련된 자료들이 꽤 많이 수집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딸 및 손녀의 영상 인터뷰도 있습니다. 다만 이곳 또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홍콩을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꼭 한 번 찾으시길 권합니다. 

"항상 네 자신이 되어라", "언제나 네 자신을 믿어라." 어찌 보면 평범한 말입니다만, 이소룡이 하면 진실이 팍팍 느껴집니다. 오늘 그에게 매우 좋은 기운을 얻고 갑니다. 박물관을 빠져 나오니 금세 배가 고파집니다. 학생식당은 질렸으니, 타이와이 역 근처에서 뭔가 먹고 가기로 합니다. 

<수프 플러스>라는 레스토랑인데, 저는 건더기가 가득한 완탕면과 치킨 2조각, 따뜻한 밀크티가 제공되는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먹어보고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이 가게, 정말로 맛있습니다! 완탕면의 건더기들이 매우 조화를 잘 이루며 국물 맛이 끝내줍니다. 매우 진합니다. 

그리고 제가 홍콩에서 먹어본 치킨 가운데 가장 껍질을 바삭하게 튀겼습니다.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보다도 훨씬 낫더군요. 서비스 차지가 없으며, 저 세트가 HKD51이었습니다. 가성비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럴 때에는 무심하게 밀크 티를 홀짝거리며 비가 긋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40분 정도 세월아 네월아 도를 닦고 있자니, 마침내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비가 그쳤습니다. 숨어 있는 맛집을 찾은 것을 기뻐하며 흔쾌히 값을 치르고 나왔습니다.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네요. 사무실로 복귀하고 양치질을 마치면 12시 반쯤 될 듯합니다. 다시 오후에 열심히 업무를 재개하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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