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 글쓰기, 철학 그리고 미래 먹거리에 관한 소고
2023년 상반기 최대 이슈는단연코 '챗GPT'입니다. 해외에서는 챗GPT가 의사 자격 시험을 통과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학술논문과 많은 소설들이 챗GPT에 의해 작성되어 출판되고 있으며, 챗GPT로 작성된 연구물이나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이나 originality 인정에 관한 제도적-법률적 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갈수록 축소될 것이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속도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철학 분야 그리고 대학교 강의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논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예 이와 같은 이슈에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 않는 학자들도 적지 않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학자라면 누구든 챗GPT 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갖추고 다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챗GPT를 사용해보니, 이 친구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고 끝을 가늠할 수 없더군요. 가령 제가 '대학 교수들이 좀비가 되어 학생들을 잡아먹는' 소설을 5천 개의 영어 단어로 작성해달라고 입력할 경우, 챗GPT가 작품을 완성하는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영어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심지어 재미도 있더군요. 아마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제가 동일한 내용을 썼더라면 하루 안에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정을 기해서 말하자면, 영어 네이티브가 영어 소설을 쓰더라도 영문법이 완벽한 경우는 드물며, 어차피 에디터가 편집을 보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챗GPT는 적어도 이와 같은 문법적 오류는 범하지 않습니다. 전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이자 현 토론토 대학 교수이며, 문화평론가로 잘 알려진 조던 피터슨 또한 이 점을 인정했지요. 아래 신문 기사에 보이는 그의 평가를 재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조던 피터슨은 챗GPT의 능력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챗GPT에게 "에세이를 써줘. (그의 저서인) <질서 너머의 13번째 규칙>에 대해서. 킹 제임스 성경과 도덕경을 결합한 스타일로 작성해 줘."라고 했다. 사실상 대학원 수준의 과제로도 어려운 요구 사항이다. 3가지 각각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 모든 것을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조던 피터슨은 "단 3초 만에 4페이지 분량 에세이를 작성해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쓴 건지 제가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어요"라고 말했다. 책의 저자인 그가 자신의 문체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제가 쓴 것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보단,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철학적으로 매우 인상적이게 해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도가의 윤리적 도덕과 신상수훈의 도덕의 교차점에 대한 에세이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챗GPT는 그 요구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해냈다. 기가 막힐 정도로"라는 것의 조던 피터슨의 평가였다.
https://www.fnnews.com/news/202301251623187345
이제 글이나 그림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300페이지 장편 소설을 하루만에 뚝딱 써내고 1년에 장편 소설을 100편 이상 발표하는 공장장이 드물지 않게 출현하리라고 봅니다. 물론 실제로는 챗GPT가 쓴 것을 작가가 다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제가 챗GPT에게 명령한 짧은 좀비 단편 소설만 해도 제 손을 거쳐야만 최종 마무리가 가능하더군요. 하지만 무작위로 좀비 소설을 써내려가는 AI 덕분에, 저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고, 분명히 글을 쓰는데 수고를 덜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AI를 잘 활용하면, 누구나 소설이나 그림 공장장이 될 수 있습니다. 독창성의 경우, 그것이 인간의 독창성인지 AI의 독창성인지는 장차 구분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자, 이쯤 되면 결국 먹고 사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글쓰기란 직업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이제 AI로 대체될 많은 분야들은 더 이상 10대 젊은이들에게 권할 만한 것이 못 될까요? 우리는 이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요?"
제가 이런 질문들을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느끼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질문의 패턴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마치 새로운 이슈가 등장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길게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다만 우리가 이 이슈를 다룰 때에 잘못된 접근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 전공분야가 철학이고 철학은 결국 글쓰기로 말해야 하는 것이기에, 이번 주제를 '글쓰기'에만 한정하겠습니다. 2천 년이 넘은 인식 오류인데, 우리는 동일하게 이 오류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항상 '결과주의'나 '성과주의'에 절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싶은가? 정말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는가?"라고 자신에게 묻는 대신, "내가 쓴 글이 AI가 쓴 글보다 수준이 낮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 낫겠다. 왜냐하면 먹고 살기 힘드니까."라고 결론합니다. 내 진정한 욕구를 들여다보고 묻기 보다는, 항상 내가 낸 결과물이 AI가 낸 결과물보다 못 미치면 아예 시작조차 말아야겠다라고 결론해버리지요. 전형적인 '결과주의' '성과주의'의 오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목적론의 변종이지요.
그런데 우리 한 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봅시다. 글쓰기 시장이란 것이, 과연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이와 같은 경쟁과 압박이 없었던가요? 2023년의 우리는 "인간이 쓴 글이 AI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현재에도 인간으로서 "내가 쓴 글이 타인이 쓴 글보다 못하면 그 글을 가지고 먹고 살 수 없다."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AI의 등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타인보다 못한 글을 쓰면 글쓰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AI의 등장은 이런 점들을 심화시켰을 따름입니다. 과연 다른 인간에게도 밀리는 글을 쓰는 작가가, AI의 등장으로 인해서 '더욱' 어려움을 겪을 일이 생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삶과 욕구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철학을 하고 싶습니다. AI의 등장과 관계없이, 철학은 항상 배고픈 직업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수록 축소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전에서 지혜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그 지혜를 현대 사회와 제 자신에게 적용시켜 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깁니다. 제가 이 공부를 통해서 어떤 사회적 성과를 얻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물론 저는 '먹고 살기 위해' 논문을 쓰고 책을 출판하며, 각종 강연에 나섭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억지로 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특히나 '결과주의'에 절어 있기 때문에, 쉽게 말해 '돈 되는 일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말은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2023년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돈이 단 한 푼도 되지 않는 직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이 되거나 적게 되는 일들이 있을 뿐, 대부분의 직업은 돈이 한 푼도 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런 분야갸 있다고 해도, 제게 따질 일은 아닙니다. 그런 분야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제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저는 그런 분야의 존재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이죠. 하여간 우리 논의의 핵심은,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잠에서 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도저히 머리 속에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이 이 혼잡한 AI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자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챗GPT를 통해서 여러 단편 영문소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정말로 재미있어서, 며칠 동안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어찌나 쉽게 "이곳 저곳에서 데이터를 가져와 잘 짜깁기하는지" 볼수록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작가로서(비록 형편없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창작의 재미가 없다는 점 때문에 그만 시들해져버렸습니다. 가령 챗GPT에 명령어만 적절히 입력하면, 일주일 안에 멋진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영화 시나리오 또한 더 이상 타인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챗GPT에게 창작의 수고를 맡김으로써,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주인공을 만들어내고, 두 가문의 관계를 설정하고, 두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끄는 희곡을 창작해내는 그 미칠 듯한 기쁨과 창작의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합니다. 단지 실적을 쌓기 위해 기계적으로 의미없는 논문을 써대는 논문 기술자들은 이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내 결과물이 타인의 결과물에 비해 어떤가와 관계없이" 내가 전지전능한 창조자가 되어 소설을 구상하고 다듬으며, 그러면서도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창조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제 목소리를 내며 스토리를 자기들끼리 주도하는 과정을 한 번만이라고 경험해본 작가라면, 창작을 절대 챗GPT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한글로 쓴 소설을 영문으로 출판하고자 하는데 번역 도움을 받기 어렵다면, 기꺼이 챗GPT의 손을 빌릴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창작자라면, 적어도 창작 과정 자체를 챗GPT에게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창작의 재미마저 없다면, 도대체 글쓰기나 그림을 왜 하는 것입니까?"
저는 AI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인간은 가장 육체적이고 인간적인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봅니다. 생각해 봅시다. 2023년 2월 26일(일) 아침에 제가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려 팔당역까지 걸어가는 산보를 시작했을 때, <고구려 마라톤 대회> 준비가 한창이더군요.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995
그런데 잘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왜 마라톤을 뛰는 것일까요? 42.195km를 승용차에 얹혀 가면 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인간은 마라톤을 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울트라마라톤까지 열심히 참여할까요? 편안한 호텔을 놓아 두고 한겨울에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심지어 돈도 더 드는데 말이지요. AI 기술이 발달하는데, 인간은 왜 갈수록 "원초적인 액티비티"에 끌릴까요? 인간은 왜 요리를 손수 만들까요? 향후 AI가 저보다 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면, 저는 더 이상 집에서 파스타 요리를 하지 않게 될까요? 이미 지금도 저보다 파스타를 잘 만드는 셰프가 줄을 섰고, 재료비와 요리를 마친 뒤 음식쓰레기 처리까지 감안하면 파스타 요리를 제가 직접 할 필요가 없는데도 어째서 저는 팔을 걷어붙이고 이 일에 뛰어들까요? 적어도 제 '몸'과 관련해서, AI가 제 인생을 제 대신 살아줄 수 있을까요? 제 인생에서 AI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제 자신이 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는데, AI가 제 영혼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AI가 제 대신 제 인생을 살아줄 수 있을까요? AI가 제 대신 "즐거워해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모든 일을 직접 해내는 즐거움을 AI에게 맡기시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AI가 정말로 제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다고 한들, "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AI에게 맡겨야만 할까요? 그냥 제 인생을 제가 살면 되지 않을까요? 엄마가 제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AI 또한 제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핵심은 "내가 진정 미칠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 일이 내게 큰 재미를 준다면, 다른 사람(모든 사람이 아니라)들에게도 충분히 호소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가령 저는 롤 게임에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만, 롤 게임에 미쳐 사는 사람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유튜브는 다른 롤 게임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을 것이고, "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인간은 같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선호합니다. "빠니보틀"이나 "곽튜브"는 한국 최고의 여행 유튜버이지만, 그들이 탁월한 미모나 근육질 몸매로 뜬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훨씬 잘생기고 근육질에 100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로봇이 세계여행을 하면 인기가 더 좋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같은 인간이 노는 것을 즐기고, 같은 인간이 축구하고 달리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AI가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뛴다고 해서, 그 AI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기계적 인간" 이나 "인간이 기계처럼 살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일"들은 앞으로 기계에게 완벽하게 대체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계적 X"는 결코 "기계"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가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것이 더욱 소중해지고 각광받게 될 것입니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든 것들에 대해 우려했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인간적'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