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로젠버그는 국제 평화단체인 <비폭력평화센터>의 설립자입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나는 사람의 말 뒤에 있는 이면의 욕구를 잘 이해한다(知言)"이라고 말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지요. 마셜 로젠버그는 인간의 진정한 욕구(true needs)는 절대 잘못될 리 없다. 다만 우리는 욕구가 아닌 것을 욕구로 착각한다, 다시 말해 가짜 욕구(false needs)를 진짜 욕구로 착각한다는 입장에 확고하게 서 있습니다. 예컨대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부모가 마침내 자녀에게 "나는 네가 그냥 길거리에 나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외쳤을 때, 그녀의 진정한 욕구는 자녀가 길거리에 나가 자살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자식이 바른 길로 가기를 원하는데(true needs)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를 않으니, 그런 폭언을 내뱉은 것이겠지요. 그 부모의 진정한 욕구는 결코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부모는 자식의 진정한 욕구를 돌보는데 소홀했습니다. 자녀가 왜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지에 대해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부모는 드뭅니다. 부모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자녀에게 털어놓고, 자녀 또한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부모에게 털어놓으면, 비록 시간은 걸릴지라도 진정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는 서로 가짜 욕구를 진짜 욕구로 착각하고 실행하며 살거나 타인에게 강요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도 결국 필요한 것은 대화, 그리고 또 대화입니다. 가령 부모가 차분히 앉아서 자녀에게 "얘야, 아까 폭언을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네가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단다. 그런데 너가 잘 되는 길을 가지 않아서 속상하단다. 그래서 아까 그렇게 심한 말을 했구나." 라고 말했었다면, 이제 자녀로부터도 솔직한 대답 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생각하는 '잘 되는 길'과 제가 생각하는 '잘 되는 길'이 서로 다를 수 있어요. 부모님께서 잘못 생각하실 수도 있고, 제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요. 우리 함께 '잘 되는 길'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놓고 토론해 볼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나 이까지 대화가 진행되는 장면을 보고서, 이미 많은 독자들은 이것은 비현실적인 동화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자녀가 이런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부모를 주변에서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부모의 전형적인 반응은 이럴 테니까요. "뭐라고? 감히 네가 어른인 부모보다 '잘 되는 길'에 대해서 잘 알 가능성이 있다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네가? 아직 미성년자인 네가?" 그리고 부모의 반응이 이럴 경우, 아이들이 반항심에서 부모 말을 더욱 안 따르는 것은 인간 본성상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인간도 남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결국 부모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식을 이끌지도 못하면서, 자녀와 완전히 심적으로 갈라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요.
모든 인간의 참된 욕구(true needs)는 절대 잘못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욕구는 모두 옳습니다. 다만 우리는 가짜 욕구를 진짜 욕구로 착각하고 삽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많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가령 어떤 강간범이 "나는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싶다! 그것이 내 진정한 욕구다!"라고 이야기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미성년자를 강간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그의 진정한 욕구일까요? 그 욕구를 충족하면 그는 진정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고 느긋한 만족감과 기쁨에 젖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며 귀가할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검거당한 그들의 얼굴이 항상 "불만과 불안에 찌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링컨이 말했듯이, 어른은 자기 얼굴 표정에 책임을 져야죠. 션 스테픈슨이 "the prison of your mind"라는 제목의 TED 강연에서 말했듯이,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연쇄 살인범이나 강간범조차도 그들의 가장 깊고 진실한 욕구는 하나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랑받고 싶어합니다(They just want to be loved)." 그리고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며,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그 충족되지 못한 욕구(unmet needs)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것이 목표라면,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를 그때부터 고민하면 됩니다. 진정 사랑받고 사랑 주는 것이 목표라면, 섹스는 다양한 방법론 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물며 미성년자를 강간하는 남성의 경우, 성인 여성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잘못된 열등감 때문에, 자신이 관계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미성년자에게 성적 폭행을 가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폭력적 우월감을 확인할 수 있을지언정,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는 결국 또 다시 공허함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어린 소녀의 육체와 감정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욕구(false 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겼겠지요.
마셜 로젠버그는 인간의 대화란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과정이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리고 대화 참여자 모두의 욕구가 충족되는 길을 찾는 것이 바로 대화의 목표라는 것이지요. 제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강의를 하다 보니, 학부생들에게 주로 적합한 주제가 많이 떠오르는군요. 가령 우리가 어린 시절 데이트를 할 때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녁 데이트 때 반드시 파스타를 먹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파스타를 엄청 싫어합니다. 반면에 남친도 그날 속상한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짜장면을 먹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평소에 짜장면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 학부생 커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날 저녁 데이트에서 반드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합니다. 이럴 경우 어떤 해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솔루션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제가 이 대학생 커플이라면 그날 저녁 데이트는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제공되는 요리는 아주 훌륭합니다. 메이저 레스토랑이 입점해있는 경우도 많고요. 게다가 많은 백화점 푸드코트는 분위기도 멋지게 해놓았습니다. 푸드코트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요리를 가져와서 함께 먹으면 1차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1차는 여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는 겁니다. 여친은 파스타를 주문하고, 남친은 샐러드나 기타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주문하면 되겠지요. 그리고 이제 2차는 분위기가 좋은 중화 레스토랑을 방문합니다. 솔직히 가게에서 내놓는 파스타 먹고 배가 부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다른 것을 먹으러 가야겠지요. 남친은 이제 짜장면을 주문하고, 여친은 자기가 가장 먹을 수 있는 것 예컨대 꿔바로우 등을 주문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날 저녁 데이트에서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릴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남친이 "내가 평소에 파스타 싫어하는거 몰라? 왜 오늘 저녁 꼭 파스타를 먹어야겠다는 거야?"라고 나온다거나, 여친이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먹겠다는데 그런거 하나도 못 들어주니? 너는 도대체 연애 자세가 글러먹었어."라고 받는다면, 그날 저녁 데이트는 완전히 망친 셈이지요. 제가 다년간 경험해보니, 오히려 학부생들은 이런 문제로 싸우는 일이 드뭅니다. 그런데 직장 다니는 30대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올라온 40대가 이런 상황에서 더욱 미숙하고 폭력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잦더군요. 혹은 마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그냥 시끄러워지는게 싫어서 꾹 참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나 저런 "인내" 또한 정신 건강에 전혀 좋지 않습니다. 양자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요. 그것보다는 서로의 욕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양자의 욕구가 모두 충족되는 방법을 대화를 통해 모색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결국 지름길이자 올바른 길(정도)이라는 오래된 지혜를 확인하면서 오늘 글을 줄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