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how to) 행복해질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려 달라 호소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맹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오직 맹자만이 알며 공자가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줄 수 없다. 왜냐하면 맹자의 타고난 기질과 그의 진정한 욕구는 맹자가 아닌 그 어떤 누구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을 알려달라는 질문은 사실 우문(愚問)에 가깝다.
하지만 박식하기로는 어느 세대에도 뒤지지 않는 현대 한국인들이 이와 같은 우문(愚問)을 던지는 것을 결코 기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1989년에 강우석 감독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통해서 문자 그대로 행복이 성적순이 아님을 여주인공의 성적 비관 자살을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었음에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은 여전히 성적과 행복을 동일시하며 학생들을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은 ‘나다울 때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고 가르치는 대신‘성적이 친구들의 그것에 비해 높아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이와 같은 오류를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10대 내내 강요받음으로써 오늘날의 한국인들-특히 학부모들-은‘약육강식의 경쟁을 통한 승리’만이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이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10대에 철저히 익힌 ‘상생(相生)이 아닌 독식(獨食)을 통한 행복 쟁취론’은 20대 이후의 삶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많은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도 여전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좀 더 높은 지위에 좀 더 빨리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며 불행한 삶의 방식을 이어 간다.
아니, 우리는 어쩌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상대방과 나를‘비교하며’ 스스로 성적을 매기고 그에 따라 계속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서울대에 입학하면 지방대에 입학한 것보다 행복할 것 같지만, 아이비리그 졸업생과‘비교해보면’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불행함을 느낀다. 연봉이 1억이면 행복할 것도 같지만, 연봉이 10억이 넘는 사람과‘비교해보면’여전히 불행함을 느낀다. 대기업 부장만 해도 막강한 지위이지만, 전무와‘비교해보면’ 하찮게 여겨진다. 하지만 전무라는 지위조차도 회장이라는 지위와‘비교해보면’처럼 초라해 보이기만 한다.
결국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즉 아인슈타인도 즐겨했다던 ‘사고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명문대학생이나 회장의 지위에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자기 자신대로 사는 대신‘남들과 비교해서’더욱 높은 수준을 누리려는 삶의 방식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했다. 물론 금전이나 지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억이나 10억이라는 돈, 전무나 회장이라는 지위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직 자신이 지닌 금전과 지위가 타인보다 반드시 더욱 많거나 높아야만 비로소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이 그런 생각을 지닌 개인을 불행으로 몰아넣을 따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