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4 나홀로 도쿄 여행 1일차 (3)
나홀로 도쿄 여행 1일차 (3)
https://brunch.co.kr/@joogangl/528
안녕하세요, 락락동자(樂樂童子) 알이즈웰입니다. 일본의 국민 규동 체인점인 <마츠야>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해결한 뒤, 저는 시부야에 소재한 여러 크래프트 맥주 매장을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사실 가고 싶은 곳이 무척이나, 하루에 3-4곳을 돌아다니는 바 호핑(bar hopping)은 이제 늙어서 힘들더군요. 다만 제가 원래 목표했던 곳들은 다음에 반드시 방문할 것이고, 독자 여러분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아서 기록을 남깁니다.
(1) 우선 제가 이번 여행에서 꼭 가리라 마음 먹었던 시부야 소재 탭 비어 바 <으얼ØL>(ØL BY OSLO BREWING CO)>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째서 "으얼"이라고 표기했느냐? 제가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노르웨이어로 ØL을 검색해보니, Ø의 발음이 "으"와 "어"의 딱 중간이었습니다. 천천히 발음하면 "으어" 비슷한데, 역시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 여하튼 ØL는 노르웨이어로 "맥주"를 의미합니다. 검색을 통해 본 이 가게는 시부야 속의 작은 유럽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북유럽의 산뜻한 분위기가 넘쳤습니다. 사실 오후 3시부터 영업하기 때문에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달려가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는.....
<메가 돈키호테>를 지나서 좁고 힙한 시부야의 골목을 끊임없이 걷다 보니, 드디어 <으얼ØL>이 나왔습니다. 멋지죠? 그런데 저는 보자마자 이번 여행에서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어째서냐? 저는 일본 특유의 바이브가 넘치는 크래프트 맥주 매장을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매장에는 서양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사실 모르는 상태에서 말 섞기에는 서양인 친구들이 오히려 편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히타치노 브루잉 랩에서 일본 맥주에게 압도적으로 반했던 터라, 일본에서 이름난 크래프트 맥주 매장을 중심으로 돌고 싶기도 했습니다. 뭐, 일단 위치를 파악해 놓았으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올 수 있겠지요. 다음 여행 때까지 안녕!
(2) 다음으로 방향을 살짝 틀어, <굿비어 포셋>으로 향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무척이나 사랑받는다는 이 곳에서 일본의 젊은 직장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까 한 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맥주 종류가 매우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 더욱 들떴습니다.
시부야의 밤거리는 걷는 것만으로도 정말 즐겁습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가게들이 끝없이 나오고, 단일 구역 내에 이토록 개성 있고 다채로운 매장들이 집중된 경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걷다 보니, 건널목 너머로 <굿비어 포셋>의 노랗고 동그란 시그니처가 보입니다. 유동 인구가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도쿄 특유의 밤거리, 걷는 것을 즐기는 저에게는 천상의 도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결과적으로 자리를 잡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니, 매장 안이 텅 비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떠들썩한 분위기로 가득한 브루잉 랩을 원했는데, 다소 썰렁합니다. 아, 제가 너무 까다로운 걸까요? 그래도 시티 라이프를 사랑하는 도시남인데, 적막한 맥주집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제가 문득 생각난 게 있습니다. 저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맥주가 없는 맥주집은 가지 않기로 했었다는 맹세를 말이죠. 가령 노원의 자랑인 <미학맥주>에는 자기 가게의 이름을 딴 "미학 바이젠" "미학 골든에일" 등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가게 이름을 그대로 땄거나, 그에 준하는 자신만의 의미를 담은 시그니처 맥주가 없는 가게는 아무래도 좀 심심합니다. 왜냐하면 가게 주인의 맥주 창작욕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앞서 방문했던 <히타치노 브루잉 랩>은 대놓고 "히타치노 네스트" 라인이 가득합니다. <굿비어 포셋>은 세계 각국의 멋진 맥주들을 구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비어 IPA" 등이 보이지 않네요.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될 때 방문해 보기로 합니다. 이번 여행은 오직 일본 에일을 즐기자! 라는 심정으로 오모테산도 역으로 이동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크래프트 맥주 회사 가운데 하나인 요호 브루잉(Yoho brewing)의 대표 상품인 "요나요나 에일"은 한때 한국 편의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저도 이미 한국에서 캔으로 여러 차례 마셔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참 무난하구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맥주는 할 수만 있다면, 현지를 방문해서 탭에서 직접 뽑은 맥주를 마셔보는 것이 그 맥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러지 않습니까? 필스너 우르켈을 체코에서 탭으로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맥주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저는 논하지 않습니다, 허허허. 그러고 보니, 홍콩에서 탭맥주로 필스너 우르켈을 즐겨보기는 했습니다. 역시나 유럽의 맥주는 기름진 소시지나 바베큐에 어울리는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정갈한 전통 요리(나물과 채소)와는 페어링이 되지 않습니다. 라거 맥주의 경우 저에게는 페어링, 다시 말해 음식과의 궁합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라거라면 역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흠......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마침 <히타치노 브루잉 랩>에서 멋진 경험을 했기에 이번에는 히타치노 네스트 못지 않게 유명한 요나요나 맥주를 생으로 마시려고 <요나요나 비어웍스 오모테산도 점>을 방문했습니다. 아, 에일 맥주의 경우 페어링은 제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에일 맥주는 위스키처럼 그 자체로 즐기는 편이 제게는 좋더라고요. 이 또한 개인 취향일 따름입니다.
오모테산도 역에서 내려 세계적인 명품들이 가득한 오모테산도 힐즈와 랄프 로렌 매장을 지나가면 언제나 가슴이 뜁니다. 거리 자체는 복잡하지 않아서, 역 주변 가게를 찾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음....영업 중이기는 합니다만, 외관 공사 중이라 사진 상으로는 이뻐 보이지가 않네요. 저는 사춘기 소녀처럼 삐쳤습니다. 하지만 "맥주"가 목적이기 때문에, 일단 입장하기로 합니다.
가게 안을 제대로 촬영하지 못했지만(사실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사진 상당수를 지웠습니다. 고질병인데 못 고쳤습니다), 굉장히 따뜻하고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바라던 바로 그 분위기. 젊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회포를 푸는 곳. 다양한 맥주들을 소문대로 탭에서 뽑아 제공하는 곳. 안주도 그렇게 맛있다지(음식을 담당하는 분은 이탈리아 출신인 듯합니다. 일본어는 능통했습니다). 게다가 사진에 나오는 훈남 청년을 비롯해서, 일하시는 분들이 엄청나게 친절했습니다. 일본인들의 친절이야 본디 잘 알려졌지만, 제게 보여준 세심한 배려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납니다.
맥주 전문가인 "살찐 돼지" 님의 블로그를 참조해서 요나요나 맥주에 대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요호 브루잉에서 내놓은 대표 맥주인 "요나요나 에일"은 1997년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일본 최초로 캔에 담긴 크래프트 맥주라고 합니다. 사실 에일 맥주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맛이 진하고 도수가 높아서, 버드와이저나 하이네켄, 아사히 슈퍼드라이나 테라처럼 꿀떡꿀떡 넘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내외의 대형 양주회사들은 주로 라거, 그 중에서도 맥주 본연의 맛을 많이 덜어낸 부가물 맥주를 주력 상품으로 삼습니다. 이 때문에, 에일 맥주를 캔에다 넣어서 유통시키는 도전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요나요나 에일"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지나치게 쓰다," "맛이 지나치게 강하다" 등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오늘날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시그니처 맥주가 매우 많죠.
저는 오늘 혼자 왔기 때문에, 바(bar)에 자리 잡았습니다. 덕분에 직원들이 탭에서 맥주를 뽑고 거품을 덜어내는 작업하는 것을 실컷 지켜볼 수 있었지요.
제 정면은 다음과 같았는데, 이곳에서는 맥주뿐만이 아니라 야마자키나 히비키 등 다양한 주류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히타치노 브루잉 랩에서와 마찬가지로, 샘플러를 주문했습니다. 다만 이 곳에서는 샘플러의 종류를 제가 직접 고를 수 있었는데, IPA를 제외한 나머지 2개는 매장 직원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최종 낙찰된 세 친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그니처 맥주인 "요나요나 에일," 인도의 푸른 도깨비라는 재미있는 뜻을 담은 "인도 노 아오오니"(IPA), 그리고' 나의 맥주, 너의 맥주'라는 대동단결 포스의 "보쿠 비루, 키미 비루." 홈페이지에서 찾은 상세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운데 "인도의 푸른 도깨비"는 홍콩의 <테이스트>에서도 보았습니다. 그때 마시지는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접하네요. 우선 세종(saison) 스타일 맥주인 "나의 맥주, 너의 맥주"부터 마셔봅니다. 거품이 풍부하고 과일 향이 가득합니다. 세종 특유의 탄산이 많이 올라오고, 몰트 특유의 단 맛은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썩 괜찮은 맥주"입니다. 개성이 대단히 강하다기보다는, 무난한 맥주입니다.
두번째로 "요나요나 에일"을 마셔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마셨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맥주, 너의 맥주"보다는 몰트의 단 맛이 좀 더 강했지만 뭔가 개성이 없고 무난하다는 느낌에 그쳤습니다.
당황해서 마지막인 "인도의 푸른 도깨비"를 집어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IPA 맥주에 지나치게 혀가 길들여져서, 자극이 강한 맥주만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히타치노에서 내놓은 맥주는 라거라도 맛있었는데, 음. "인도의 푸른 도깨비"도 결과적으로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요나요나 에일"보다 쓴 맛이 조금 더 강했지만, 역시 뭔가 조금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친 느낌? 요호 브루잉이 크게 성공하면서 몸을 사리게 되었던 것일까요? 앞서 링크를 걸었던 "살찐 돼지"님이 느낀 바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맥주에 정답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맥주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지요.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는 것이고요. 저로서는 "요나요나" 시리즈가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며 적당히 타협한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이것도 제가 타인을 설득시키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닙니다. 여하튼 저로서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저는 이 가게에서 마셨던 샘플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다른 입맛을 지닌 맥덕(맥주 덕후)들은 좋아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떠나서 친절한 종업원과 멋진 가게 분위기만 해도 친구들과 함께 올 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어중간한 맥주 애호가가 아닌 범범하게 맥주를 즐기는 친구들과 한 번 더 방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시부야 역으로 돌아와서도 여행 첫날의 흥이 가시지 않아서 뒷짐을 지고 "아재답게" 이곳저곳을 거닐었습니다. 일본의 가게들은 대부분 밤 11시에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10시 반에서부터 지하철이 터져나가지요. 12시가 넘어서도 남아서 노는 친구들은 "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직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젊은이들이 기가 죽거나 냉소적이 되지 않고 이렇게 늦게까지 활기차게 노는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노는 거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겼습니다. 살금살금 샤워실로 들어가서 목욕을 끝내고 침대에 몸을 구겨넣습니다. 꽤나 부지런하고 의미 있고 즐겁게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타성에 젖은 삶을 산다고 느낄 때, 또 이렇게 여행으로 리프레쉬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일은 또 다른 모험을 꿈꾸며,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All i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