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40515 도쿄 오모테산도+하라주쿠 후기

240515 나홀로 도쿄여행 (3) 

https://brunch.co.kr/@joogangl/532

안녕하세요, 락락동자(樂樂童子) 알이즈웰입니다. 나카메구로에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를 충분히 즐긴 뒤, 저는 오모테산도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보다 날씨가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창했습니다. 저는 여러 계절 가운데 여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꼭 부산 해운대 출신이라서가 아닙니다. 제 고향 친구들 가운데 여름을 좋아하는 이는 아예 없거든요. 아무튼 저는 어릴 때부터 유독 여름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제이팝을 좋아했습니다. 일본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여름-바다-청춘-축제(마쯔리)-낭만-사랑-순수-열정" 등의 키워드가 하나가 되어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키워드들을 저는 유독 사랑합니다. 제 안에서는 이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다닙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는 이와 유사한 주제 의식의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곡은 무한궤도의 <여름 이야기>(1989)입니다. 비록 바다를 주제로 삼지 않았지만, 쏟아지는 여름 햇살 아래 헤어진 그녀를 건널목에서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한 명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c32E_4hq6s

이 외에 DJ DOC의 <여름 이야기>(1996)나 듀스의 <여름 안에서>(1994), 쿨의 <해변의 연인>(1997) 등이 있었죠. 반면에 2010년 이후로는 여름 바다를 직접적인 주제로 삼은 노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씨스타는 대표적인 여름 가수라고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여름에 듣기 좋게 청량하고 밝다는 것이지 딱히 여름이나 바다를 주제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여름을 주제로 한 히트곡들이 어째서 한국 음악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아무쪼록 QWER 등의 밴드가 무한궤도의 스피릿을 살려, 다시 여름 노래를 부흥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또 한참 옆으로 새어 버렸는데, 저는 2024년 5월 15일 오후에 오모테산도와 하라주쿠를 걸으면서 오랜만에 초여름의 낭만과 감성을 담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름날 햇빛 속에 옛 동네를 걸어가다, 건널목 앞에 있는 그녀를 보았지."라는 가사가 생각날 정도로 한적하고 다소 뜨거우면서도 젊음이 넘치는 그런 바비브였습니다. 물론 시작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본점을 찾아가느라 다소 헤매었습니다. 민희진 씨가 기자 회견에서 입고 나와 유명해진 그린 맨투맨 셔츠가 <캘리포니아 제너럴 스토어> 제품인데, 이 브랜드의 매장이 도쿄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에는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지인의 부탁을 받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하라주쿠>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가 찾던 브랜드가 이 건물에는 입점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오모테산도를 어슬렁거리며 눈을 즐겁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를 쓰고 유명 편집샵을 샅샅이 훑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스타벅스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는지라, 특별히 사진도 많이 찍지 않은 채 그냥 걸어다녔습니다. 

우선 도쿄 패션의 대명사 캣 스트리트(cat street) 초입에 있는 빔즈(beams) 매장입니다. 시부야에도 매장이 있지만, 내친 김에 하라주쿠 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층 남성복 매장에 가서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첫째, 랄프 로렌 스타일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일본의 단정함을 더한 그 세련된 디자인에 감화되었습니다. 둘째, 랄프 로렌의 고가 라인인 더블알엘(RRL) 못지 않은 높은 가격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어차피 구입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가격은 관심 밖이었고, 디자인만큼은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저는 도쿄를 방문할 때마다 랄프 로렌 매장을 꼭 들릅니다만, 같은 돈이면 더블알엘보다는 빔즈를 선택하겠습니다. 물론 패션 전문가들은 견해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더블알엘은 과거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디자인이 주가 되기 때문에, 동양인이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주우재 같은 모델들조차 그 거친 느낌을 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더블알엘은 남성복의 경우, 미국 스타일의 팔뚝에 털이 북실북실하고 햇볕에 잔뜩 그을었으며 살찌지는 않았지만 근육질의 건장한 상남자가 입어야만 제대로 느낌이 삽니다. 반면에 빔즈는 훨씬 점잖고, 기장도 동양인의 체형에 잘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인 빔즈가 맘에 듭니다.  

다음으로 캣 스트리트의 유명한 편집샵 가운데 하나인 <세컨드 스트리트>입니다. 이름 그대로 빈티지 샵입니다. 

2층인 남성복 매장에 가니,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서 빈티지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광경이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입니다. 분위기만 보면 젊은이들만 가득해야 할 것 같지만, <꼼데가르송>,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등의 브랜드는 중장년층의 손길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30분 이상을 보냈는데, 참으로 탐나는 옷들이 많았습니다. 송곳 대신 엄지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쿡쿡 쑤시며 참았는데, 한국에 와서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갈색 자켓이 있다면, 두 번 생각하지 말고 사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전제 조건은 "정말"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귀국하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난다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뭐? 어쩌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속이 왈칵 뒤집히고" 다시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서 배회하는데, 그리운 <라코스떼>의 악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라코스떼>는 한때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옷의 품질도 뛰어났죠. 아쉽게도 이제 한국에서 과거만큼 크게 주목을 끌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일본에서 <라코스떼>의 인기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본 패션을 좀 들여다보면, 2024년 현재 많은 일본인들이 패션에 관한 한 자기 정체성이 꽤 강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취향을 꿋꿋이 지켜나간다는 것이지요. 저는 적어도 패션에 관한 한 그런 고집스러움이 무척이나 맘에 듭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하라주쿠 역까지 왔습니다. 메이지 신궁을 산책하다 보니, <타케시다도오리(竹下通り)>도 한 번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목이 몹시 말라서 시원한 캔맥주라도 해야겠다며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이케아>에서 희한한 광고를 보았습니다. 

<이케아>에서 채식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일단 plant-based icecream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사방이 찌는 듯 더운데, 아이스크림이 맥주보다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0엔밖에 하지 않으니 양이 적을 거라 판단해서 2개를 시켰는데 오산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양이 많고 나이가 지긋한 분께서 컵 바닥까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워주시는 바람에, 녹기 전에 빨리 해치우느라 애 먹었습니다. 본디 매장 안에서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밖에 나가면 곧바로 녹을 것 같아 부득이하게 가구와 뚝뚝 떨어져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저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장 안에서 먹고 있으니 부담은 없었습니다. 이 아이스크림,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도 아주 촘촘합니다. 언제까지 행사하는지 모르겠지만, 여름을 겨냥한 상품인지라 꽤 길게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적극 추천합니다. 

하라주쿠에 와 본지 20년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왠지 와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가마로 강정> 앞은 인산인해였습니다. 특히 여중생과 여고생 사이에 인기가 폭발이었습니다. 하라주쿠에 K-푸드도 들어서다니,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하라주쿠에서 아재가 보고 싶었던 것은, 이 색다른 거리를 상징하는 크레페이죠. 그 중에서도 <마리온 크레페>는 1976년에 오픈해서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네요.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텐데, 대단합니다.

하라주쿠 타케시타도오리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아까 <이케아>에서 보았던 스웨덴 맥주가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한국에도 아주 잠깐 소개되었던 스웨덴 크래프트맥주 <옴니폴로> 시리즈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IPA 매니아인 제가, 옴니폴로 "조디악"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390엔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이라니요. 한국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접하지 못할 제품이지요.  

결국 하나 샀습니다. 그러나 맥주까지 매장 내에서 먹을 수는 없기에, 다시 거리로 나와 <I'm donut> 앞에 줄 선 사람들을 구경하며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도넛을 좋아하는 QWER의 보컬 시요밍이라면 반드시 방문하게 될 곳이네요. 줄이 왜 이렇게 긴 겁니까! 옴니폴로 IPA 이야기로 돌아가면, 역시 일본 IPA와는 달리 굉장히 다채로운 과일향이 납니다. EDM이 발달한 국가의 맥주답게 뭔가 톡톡 터집니다. 집밥이라기보다는 가끔 먹어서 맛있는 외식 느낌? 새벽 5시부터 돌아다녀서 지쳐 있던 제 몸에 활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아이스크림으로도 각성이 덜 되었던 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 오모테산도 역까지 걸어갑니다. 시부야에서 후배와 저녁 약속이 있는데, 제법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랄프로렌 매장도 들렀다 갑니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지 못했고, 작년 10월 여행 때의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동선은 거의 동일합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인 랄프로렌은 다루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합니다. 스포츠웨어와 사냥복까지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만 오모테산도 점은 플래그십 스토어로서,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평상복과 수트 중심으로 디스플레이한 것 같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폴로만의 특이한 감성이 가득합니다. 저 푸른 색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저 색깔의 아우터는 평생 유행을 타지 않지요. 비싸다고 보면 안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바가지가 좀 있습니다. 

10월 말 방문 당시 사진인지라, 겨울 옷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다채로우면서도 폴로 랄프로렌이라는 일관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가서 볼 때는 정말 얼이 빠질 정도로 멋졌습니다. 저와 같은 매장을 둘러보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직접 구매하여 소유하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미감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지요. 명품 브랜드에 빠져서 휘둘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 옷들은 작품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계단을 오릅니다. 그런데 왜 2층으로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지 않는 것일까요? 

어라? 느닷없이 더블알엘(RRL) 매장에 들어섰습니다. 아, 이래서 2층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구나. 그냥 옷 구경만 하러 와도 될텐데. 참고로 더블알엘(RRL)을 구매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돈이나 브랜드에 신경쓰지 않고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더블알엘 의류 대부분에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가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폴로 가디건을 사면서 가슴 한 쪽에 빨간색의 "폴로 로고"가 찍혀 있지 않다면, 과연 사람들이 그 옷을 구매하는데 다소 망설일 것입니다. 그런데 더블알엘은 폴로 랄프로렌에서도 최고가 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모자나 티셔츠를 제외하고는) 더블알엘 로고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지요. 더블알엘은 옛 미국 서부 시대의 향수를 불어일으킴과 동시에, 정말로 옷이 세련되고 잘 빠졌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냥 멋집니다. 오늘도 눈호강 했습니다.  

<랄프로렌 오모테산도 랄프스 커피>

랄프로렌 매장에서 옷을 구입하지 못해 서러운 사람들은 그 대신 매장 1층에 자리한 <랄프스 커피>에서 대리만족을 하시면 됩니다. 한국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머그컵 등의 굿즈가 예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가 안 맞을 뿐이지 먹는다고 바로 쓰러지는 것은 아니기에, 홍콩에 살 때 랄프스 커피를 마셔보았습니다. 뭐, 가격은 비싼데 딱히 맛있는 커피는 아닙니다. 아마 블로그를 둘러보시면 대부분 평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냥 관광은 돈 쓰러 오는 것이니까, 온 김에 한 번 사먹어 보는 것일 뿐이지요. 다만 굿즈는 선물용으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가격대가 있지만, 이쁩니다. 


초여름 날씨에 얼근히 취해서 오모테산도 역으로 갑니다. 이제 시부야 역으로 이동해서, 후배를 만난 술 한 잔 해야 될 때입니다. 본디 하라주쿠 캣 스트리트의 편집샵을 여러 군데 들러서 새로운 패션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지만, 일정상 여의치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또 여행할 힘을 얻게 되겠지요. 이제 시부야로 "영역전개"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All is well~~!!

<QWER 히나의 남친인 "고죠 사토루"의 영역전개-무량공처>


매거진의 이전글 240515 나카메구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