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잘못했는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이라는 글귀는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원전의 출처를 아는 이는 적으며, 그 원전이 실질적으로 뜻하는 바를 아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블레즈 파스칼은 <팡세>(민음사)에서 "90. 인간의 헛됨을 완전히 알고 싶은 사람은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 원인은 이른바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코르네유)이고 그 결과는 끔찍하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온 땅과 왕들과 군대와 전 세계를 뒤흔든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만약 좀 더 낮았더라면 지상의 모든 표면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회의주의자 파스칼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아니라 인간의 헛됨, 사랑의 무용함이었다. 그에 따르면, 로마를 손아귀에 넣을 수도 있었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반해서 장래를 그르치고 자살까지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렇듯 파스칼에게 '사랑'이란, 뛰어난 남성의 인생을 망칠 수 있으니 참으로 헛되고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에 서 있는 <팡세> 속 대부분 주장들이 그러하듯이, 파스칼의 설명은 이번에도 그릇되었다. 안토니우스의 인생을 그르친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의 어리석음이었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면서도 정치적 야심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인 옥타비아와 결혼한 뒤, 자신의 본처를 등한시했다. 안토니우스는 로마를 대표해서 이집트에 파견되었지만, 로마 본국과 아무런 상의 없이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자녀에게 땅을 제멋대로 나누어주었다. 이 때문에 그는 로마 본국의 미움을 샀고, 로마를 대표한 옥타비아누스와 악티움 해전에서 겨뤄 대패한 뒤, 얼마 뒤에 자살한다. 그의 사랑과는 별개로 그는 자신의 지위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사랑이 아닌 그의 정치적 야욕이 그를 죽였다는 분석이 좀 더 타당하지 않은가?
진정 안토니우스가 사랑에 눈이 멀었다면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죄다 버리고 클레오파트라의 남편 지위만을 즐겼어야 했다. 클레오파트라를 두고서 옥타비아와 결혼한 것은 무슨 심사인가? 만약 그것을 클레오파트라가 부추겼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을 두고서 사랑의 원인과 결과 운운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 파스칼과 같이 뛰어난 인물이 회의주의에 빠져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학대하면서 살았다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문장에 반한 나머지, 그의 괴이한 논리마저 아무런 비판 없이 덥석 무는 것 또한 비극이기는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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