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밴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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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알이즈웰입니다.
QWER과 함께 걸밴드 전성시대를 열 밴드 가운데 하나인 레이턴시는 QWER과 여러 모로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령 레이턴시의 드러머 현진은 얼마 전 <골때녀> 예능에 투입되었죠. 다른 멤버들 또한 기존의 경제활동을 유지한 상태로 레이턴시 데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 스케줄을 많이 줄이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주 연습을 위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방송을 통해 드러나죠.
이로 인해 "다른 밴드들은 죽어라 연습하는데,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밴드가 될 수 있겠느냐? 직장인 밴드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 등의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레이턴시 관련 영상이나 포스팅에 댓글을 다는 분들의 절대다수는 그들의 팬 또는 밴드 뮤직 애호가들입니다. 진심 어린 걱정이라는 것을 저는 읽기만 해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발주자인 QWER이 데뷔 초에 어떠했는가를 아는 사람들일수록 레이턴시에 대한 걱정이 큰 것 같습니다.
QWER의 경우, 3명의 멤버는 인플루언서였고 한 명은 오사카 아이돌을 탈퇴한 상태였습니다. 이들 4명은 소속사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데, 개인 라이브 방송을 허락받았습니다. 인플루언서일 때도 집에서 방송했기 때문에, 이들은 별도의 외부 스케줄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QWER 4인은 멤버 전원이 외부 스케줄 없이 공식 데뷔 전에 '폐관수련'을 해서 실력을 키웠죠. 특히나 밴드는 합주가 중요한데, 이들은 개인 악기 연습 이외에도 숙소에 마련된 합주실에서 필요할 때마다 모여 단체 연습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쵸단, 마젠타, 히나, 시요밍은 QWER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죠. 이런 정황을 아는 레이턴시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밴드 또한 퇴로를 끊고 연습에 몰입해서 단숨에 실력을 끌어올리기를 바라겠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레이턴시의 경우를 조금 달리 이해합니다. "레이턴시는 직장인 밴드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 현업을 유지하면서 밴드로 성공하려고 하다니!"라는 우려에 대해, 저는 "레이턴시는 모든 직장인 밴드의 희망이 되는 서사를 쌓고 있다. 직장인 밴드면 어떠냐? QWER과 다른 서사를 보여줄 수 있어 오히려 좋지 않으냐? 비록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레이턴시야말로 모든 'N잡러'들의 롤모델이 되어 사랑받고 인기를 끌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하고 싶네요.
저는 QWER과 레이턴시가 '이 시대의 고뇌와 아픔을 관통하는 서로 다른 두 편의 서사시'를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다니고 있는 직장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때려치우기로 결정했을 때, 여러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접고 매진한다. 둘째, 일단 직장에 다니면서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며 진정 좋아하는 일에 투자 시간을 점차 늘린다.
QWER의 경우는 첫 번째 길을 갔습니다. 누구나 가고 싶지만, 현실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죠. 레이턴시의 경우 두 번째 길을 가는 중입니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이 길을 택할 것입니다. 스티븐 코틀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도 두 번째 길을 추천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그것에만 매진하다가 성과가 빨리 안 나오면, 오히려 마음이 흐트러지고 자신감을 잃게 되기 때문이죠.
저는 레이턴시가 음악에 진심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진정 좋아하는 음악을 '평생'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고려해 다소 느리게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QWER way와 Latency way, 모두 정답입니다. 다만 QWER way는 이미 QWER이 보여줬으니, 이제 좀 더 현실적인 레이턴시 way를 희연, 지원, 하은, 현진, 세미가 보여주면 됩니다.
성장형 밴드의 경우, '성장형 서사'가 핵심입니다. 그것도 '남들과 다른 서사'라야만 하죠. QWER과 달리, 레이턴시는 기존의 경제활동과 음악활동을 병행하며 데뷔를 준비하는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지금의 레이턴시가 어찌 '실력'으로 다른 밴드에게 앞설 수 있겠습니까? 먼 훗날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당분간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초기 몇 년 동안 그녀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대중적 인기는 '성장형 서사'와 '좋은 곡'에서 결정됩니다. 결코 '실력'이 아닙니다. QWER이 이 점을 증명했죠. <고민중독>은 데뷔 6개월 만에 나온 메가 히트곡인데, 그 당시 그녀들의 연주 실력이 대단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QWER의 찐 팬인 저이기에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데뷔 초반 레이턴시에게 필요한 것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코어 팬덤을 만들 수 있는 성장형 서사(팬들과의 소통 포함). 둘째, 좋은 곡. 셋째, 일단 자기 곡만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
QWER의 데뷔 앨범에는 총 3개의 곡이 실려 있었습니다. 레이턴시 데뷔 앨범도 비슷할 것이고, 대학 축제를 비롯한 행사에서는 보통 4-5곡을 합니다. 따라서 최대 다섯 곡만 제대로 연주하면 행사에서 관객을 만족시킬 레퍼토리가 완성됩니다. 실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해 연주하면 됩니다. 실력을 문제 삼는 악플러들이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음악하는 게 아니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만 믿고 진심으로 음악하면 됩니다. 어차피 세상 모두를 팬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성장형 밴드의 의미를 이해조차 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는 대신, 성장형 밴드를 응원하는 분들께 감사하며 음악 해야죠.
레이턴시는 멤버 도합 40년 이상 아이돌 활동을 했던 악바리입니다. 실력이 빨리 올라오지 않으면 누구보다 스트레스를 받을 당사자가 본인들이며, 이미 대중에게 10년 이상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를 악 물고 실력을 끌어올리는데 힘쓸 것입니다. 레이턴시 활동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에는 올인하겠죠. 저 또한 직장에 다니면서 저녁 시간에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나중에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레이턴시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QWER 또한 데뷔한 뒤로도 한동안 모든 멤버가 서로 다른 기획사에 속해 있었습니다. 인생은 길기 때문에,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밴드들은 초창기 시절 음악 활동에 올인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편의점 알바나 음악 강습 등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연습에 매진했죠. 레이턴시의 경우가 원래 일반적입니다. QWER처럼 소속사의 기획에 따라 처음부터 밴드에 올인한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죠. QWER의 기획자인 김계란은 도박성 승부를 꺼리지 않는 모험가이기에 QWER을 성공시켰지만, 그 기질 때문에 주식과 코인에...아, 아닙니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요.
아무튼 '밴드 활동에 진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경제활동을 유지한다,' 저는 전혀 모순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인생은 모 아니면 도다!'라는 승부사도 존재합니다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음악에 진심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기 위해 느리게 가는 방법도 있는 것이죠.
밴드명으로서의 레이턴시는 '당장은 들리지 않지만 언젠가는 들릴 우리의 소리'이라는 의미입니다. 성장형 서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음악활동과 경제활동을 병행하는 N잡러 레이턴시'의 서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며, 그녀들이 자기만의 서사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은 '당장은 들리지 않지만 언젠가는 들릴 분들'입니다. 레이턴시 또한 이들과 같은 입장이죠. 레이턴시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밴드가 된다면 이들의 성공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