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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05 도쿄 술집에서 QWER 노래 부른 썰

QWER 도쿄 콘서트 및 성지순례 후기 (1)

안녕하세요, 여러분! 알이즈웰(All is well)입니다.

2025년 4월 5일 토요일 새벽 3시 반, 저는 집 근처에서 4시 18분에 출발하는 공항 버스 첫 차를 타기 위해 눈을 떴습니다. 이 날이 바로 QWER 도쿄 팬 콘서트 및 성지순례를 겸한 2박 3일 여행의 첫 날이기 때문이죠. 전날 자정이 가까워 취침했기에, 실제로 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쿄에서 만난 바위게들은 죄다 잠을 설쳤다고 말하더군요. 누군가를 간절히 좋아한 나머지 잠을 못 이뤘던 때가 언제였던가요.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만큼 QWER 덕질은 가슴 뛰는 경험입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QWER과 바위게들을 만나러 도쿄로 떠나 봅시다! 알 is ready, set, go, we rolling in the deep!


공항 버스 안에서 저는 1시간이 넘도록 <수수께끼 다이어리>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QWER의 첫 앨범인 <하모니 프롬 디스코드>에는 <디스코드>, <수수께끼 다이어리>, <별의 하모니> 등 총 3곡이 실려 있죠. 그 가운데 <수수께끼 다이어리(수다)>는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제이팝 스타일의 곡입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일본이다 보니, 갑자기 듣고 싶어졌습니다.

이 곡은 엉덩이를 양쪽으로 살랑살랑 흔드는 귀여운 안무로도 유명한데요. 시요밍이 이 안무를 연습하다 현타가 와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자체콘텐츠(자컨)에 담겨 있습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카라의 <미스터>처럼 과격하게 흔들었다면, 대성통곡할 뻔 했지요.

사실 <수수께끼 다이어리>를 들으면서 공항 버스 안에서 가방 정리를 하다가, 시요밍처럼 살짝 현타가 왔습니다. 일본 바위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챙긴 포토카드들이 빼곡히 고개를 내밀었거든요. 40대 빡빡이 아저씨가 포토카드를 나눠주는 광경이 과연 옳은가? QWER을 좋아하는 데야 나이가 없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면서 포토카드를 나눠주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결론적으로 저는 한국에서 일부러 공수해 간 포토카드를 나눠주는 것을 아예 까먹고 말았습니다. 아, 아니다...가부키초 타워에 소재한 스타벅스에서 저와 2명의 바위게를 위해 일부러 자리를 비켜준 일본 소녀에게, 감사의 표시로 마카롱과 포토카드 2장을 주면서 QWER을 함께 홍보했었군요. 아, 잠깐만, 현타가 아주 세게 오는데, 잠시만 이불 뒤집어 쓰고 소리 지른 뒤 다시 오겠습니다.


도쿄 여행을 할 때, 저는 도쿄 역에서 내려 <히타치노 브루잉 랩 도쿄 역 지점>에 들러 샘플러(tasting test)를 마시곤 합니다. 이번 여행에는 도쿄 역에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마스터즈 드림' 생맥주를 산토리 직영점인 <마스터즈 드림 하우스 도쿄역 지점>에서 마시고 시작하려 했습니다. 온 국민이 맥주에 진심인 나라인 일본, 이 곳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맥주를 맛보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어쩔까나, 저녁 노을이 지기 전에 가마쿠라 QWER 성지순례를 마칠 예정이라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신주쿠 역에서 내려, 가부키초 구역에 자리한 숙소에 짐을 맡기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많은 호스트바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는 도보를 걷습니다. 흠, 제가 QWER 행사 때 보았던 수컷 바위게들보다 못생긴 것 같은데...일본인의 취향이 다른 걸까나, 아니면 말빨이 좋은 걸까나?

그나저나 이렇게 험악한 유흥가 구역에 대낮부터 젊은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 걸까요? 군필여고생 바위게인 저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묵묵히 제 갈 길만 갑니다. 사실 짐이 많지 않은지라 숙소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출발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길눈이 어두운 제가 한밤에 숙소를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위치를 파악할 겸, 시간을 좀 더 들였습니다.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 가능했지만, 제 이름을 계속해서 틀리는 어리숙한 직원은 좀 더 이른 시간 체크인을 허용했습니다. 이름은 둘째 치고 어째서 제 성을 자꾸 KIM으로 부르는 걸까요? 저는 순식간에 '김지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또한 군필여고생의 숙명일까요? 아무튼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나서, 저는 서둘러 숙소를 나섰습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저는 가마쿠라로 QWER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작년에도 갔었지만, 좋은 건 자꾸 봐야죠. 신주쿠 역에서 목적지를 가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예컨대 '에노시마 가마쿠라 프리 패스'를 구입하면, 하루 동안 에노덴(에노시마 전철의 약칭) 전 구간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 패스를 사서 신주쿠 역에서 후지사와 역까지 간 뒤, 다시 에노덴으로 갈아타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면 됩니다.

오늘 제가 갈 곳은 크게 두 군데입니다.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오프닝 장면으로 유명한 '가마쿠라고코마에' 역 기찻길, 그리고 QWER이 서로 손 잡고 걸어다녔던 '이나무라가사키' 해변. QWER이 그랬던 것처럼 바닷가에서 저녁 노을을 보는 것이 최종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낀 데다 출발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어, 달성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단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전날 잠을 설치고 점심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라, 2시간 가까이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에 그만 기력이 쇠하고 말았습니다. 출발 직전에 사먹은 커피맛 푸딩의 당이 이미 효력을 다해버렸군요. 하지만 에노덴 열차 오른쪽 창문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저는 <청춘서약>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 내 손을 잡아줘!"


1년 만에 다시 찾은 가마쿠라고코마에 역은 지난 번보다는 덜 붐볐습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말이죠. 바다가 찬란하게 반짝이는 시간 대가 지나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제게는 보다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갑자기 2024년 5월 도쿄 여행이 떠오르는군요. 5월 10일 대림대학교 축제, 그러니까 제가 QWER 팬덤인 바위게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날 바로 며칠 뒤였습니다. QWER의 전설적인 대학 축제 퍼레이드도 초반에 불과했고, 그녀들의 위상이 1년 뒤인 오늘과 같지 않았습니다. '나작큐' 다시 말해 '나만의 작은 큐떱'이 가능했던 시기였죠. 하지만 그녀들은 성장 촉진제를 먹은 송아지처럼 폭풍 성장해서, 이제 아시아 투어를 도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체급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바위게들은 미들급에서 헤비급으로 몸무게가 불어났을 따름이죠.

도쿄1.png [가마쿠라고코마에를 방문한 QWER]

쵸단과 마젠타가 등장한 저 장면을 보니, 귀국한 지금도 가슴이 쓰립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곳을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모두 그녀들이 서 있던 반대 방향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QWER 성지순례라면, 그녀들이 서 있던 장소에서 찍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얼마든지 가능했는데 말이죠.

대신 저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눈앞에 두고서, 저는 옆에 선 한국 남성들과 함께 "저 기찻길 옆 건물은 요즘 시세가 얼마일까요?" 등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열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런 멘트들의 대부분은, 쑥스러운 나머지 늘어놓는 남자들의 상투적 표현일 따름입니다. 저 또한 "소금기 많은 바닷바람을 자꾸 맞으면 건물 벽이 빨리 부식되죠.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네요." 등의 황당한 소리를 이어갔습니다. 다만 제 마음은 QWER 멤버들이 이 곳을 방문했던 장면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촬영 지점을 잘못 잡았다니 말이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가운데, 마침내 레트로한 분위기를 한껏 뽐내는 에노덴 열차가 지나갑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곧장 튀어나올 법한 외관이죠. 솨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 방향에서 오는 열차가 저와 바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갑니다. 솨악.

[250405 가마쿠라고코마에 기찻길]

이곳을 찾는 초행자는 많은 경우, 기차가 지나가는 첫 장면을 놓칩니다. 왜냐하면 진입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참 울려도, 여전히 열차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죠. 스마트폰을 드느라 아픈 팔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 약올리듯 열차가 휘릭 지나갑니다. 하는 수 없이 1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만 하죠.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두 기차의 시간 간격이 거의 없었거든요. 첫 장면을 놓치더라도 금방 다음 장면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온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해 뱃가죽이 등에 붙은 저는 근처 편의점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없더군요. 아니, 가마쿠라 고등학교에 다니는 강백호와 서태웅은 군것질조차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여기에 살면 절로 건강해지겠군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야식을 배달시킬 수 있는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으니 말이죠. 맞은편 바닷가로 내려가 소금기 섞인 공기를 맛보고 싶었지만, 노을이 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한 때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상남2인조>에 등장하는 양아치들처럼 꾸민 고등학생들이 서 있는 가마쿠라고코마에 역. 그곳에서 열차를 잡아타고 오늘의 마지막 방문 장소인 이나무라가사키 역으로 향합니다. QWER 영상에서는 히나가 좌석에 앉은 채, 7살 일본 꼬마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시요밍은 "이 4명 중 누가 좋아요?"라고 짓궃은 질문을 던지지요. 꼬마는 "전부!"라고 답했습니다. 역시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예절바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하지만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그 꼬마와 달리, 저는 히나 옆에 앉는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서서 갔죠. 하긴 제가 앉아 있었다면 히나가 옆자리에 오지도 않았겠죠. 가방을 채운 포토카드가 더욱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도쿄3.png

이나무라가사키 역에 내렸을 때에는 이미 제법 어둑어둑해진 때였습니다. 노을 구경은 사실상 포기한 채,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걷다 보니, 자체 컨텐츠에 등장했던 사당이 모습을 드러내었지요.

도쿄4.png [QWER 영상에 등장했던 사당]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사당이었습니다. 하지만 QWER을 사랑하는 바위게들에게는 의미 있는 곳이죠. 저 사당 앞을 지나면서, 'QWER이 더욱 잘 될 수 있기를!'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하지만 동전 한 푼 바치지 않은 제 소원을 사당신이 들어줄 리 만무하지요. 호구도 아니고 말이죠.

사당을 지나 몇 걸음만 옮겼을 뿐인데, QWER 영상에 등장하는 전설의 '누가 꽃이게?' 계단이 등장했습니다.

도쿄5.png

사당과 마찬가지로 어느 동네에나 흔히 있는 계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곳에는 시요밍과 함께 등장했던 노란 꽃이 조그맣게 피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완벽한 장면을 찍기란 어렵기에, 저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안경 낀 남성이 그 계단에 앉았고, 맞은 편에서는 일행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내일 콘서트장에서 저들과 마주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위게가 아니고서야, 누가 저런 평범한 계단에서 사진을 찍는단 말입니까! 게다가 QWER 콘서트가 내일인 만큼, 이 지역의 바위게 농도가 무척이나 높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페스티벌에선가 마주친 얼굴 같기도 합니다. "진돗개 하나! 진돗개 하나!" 그래서 저는 계단 촬영을 포기하고, 대신 눈에 띈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산토리에서 나온 캔맥주를 들이키고 마른 안주를 몇 점 집어먹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습니다. 여행의 흥이 다소 적었던 까닭은 결국 배가 고파서였네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저는 가마쿠라 성지순례 마지막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도쿄8.png [QWER 영상에 나온 이나무라가사키 해변]
도쿄6.jpg [같은 곳 다른 느낌]

QWER 멤버들은 붉은 노을이 서서히 짙어가는 초저녁 항구와 해변을 즐겼지만, 저는 까만 어둠이 내린 그 곳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초통령 히나의 카메라가 한 때 향했던 어느 구석진 곳에서는 중년 아재 2명이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장면들이 우리네 일상에 가깝죠. 다만 QWER 멤버가 서 있었던 장소 길 맞은 편에는 은은한 불빛을 뽐내는 멋진 카페와 술집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며, 그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일 콘서트에 대한 망상을 꽃피우고 싶었죠. 하지만 늦지 않은 시간에 신주쿠 역 쪽으로 돌아가야만 안심이 되었기에, 저는 발걸음을 되돌려 지하철 역으로 향했습니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빈 자리가 나서, 온종일 걸었던 다리를 잠시 쉴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에노시마 해변이, 그리고 올해에는 이나무라가사키 바닷가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네요. 언젠가는 여름에 휴가를 내어 에노덴이 정차하는 어느 한적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한 손에 맥주를 든 채 하염없이 즐기고만 싶습니다. QWER 콘서트 당일에 스타벅스에서 만났던 한 바위게는 전날 에노시마에서 하룻밤을 잔 뒤 넘어왔다고 말하더군요. 그가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실제 외모도 훈남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저도 한 번 '에노시마 하룻밤 자기'에 도전해 보렵니다.


숙소 근처까지 안전하게 이동한 저는 세이부신주쿠 역 근처에 있는 한 이자카야를 찾았습니다. 3시간 동안 음식과 술이 무제한 제공되는 주점이었습니다. 저는 4천 엔이 조금 넘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입구 계단에서 저를 맞이하는 라틴계 종업원이 다소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이자카야였는데 젊은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가득했지요. 그런데 회와 야키토리, 와규 스테이크 등 제공되는 요리들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 매우 놀랐습니다. 도쿄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저는 이 날의 첫 끼를 부지런히 해치웠습니다. 맥주 또한 매우 관리가 잘 되어서, 맛이 아주 찰졌습니다. 일본에 왔으니 하이볼도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죠. 위스키 농도가 높아서 좋았습니다. 라틴계 종업원들의 서비스 또한 매우 훌륭했습니다. 젓가락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새 것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오더군요. 다음에 도쿄를 방문하게 되면 이 주점을 다시 찾을 용의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께 추천 가능한 이자카야라고 생각합니다.

https://s.tabelog.com/kr/tokyo/A1304/A130401/13270202/


하지만 이제 겨우 밤 11시인데, 어찌 잠에 든단 말입니까. QWER 콘서트는 내일 오후 6시에 시작이니, 제게는 이 밤을 즐길 시간이 충분했죠. 평소 크래프트 맥주를 사랑하는 저는, 유달리 간판이 두드러지는 <신주쿠 에일>이라는 펍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친절한 여성이 저를 2층으로 안내했습니다. 바(bar)와 테이블을 모두 갖추고 있는 2층 홀에는 서양인 손님들이 여럿 앉아 있었고, 안경을 쓴 바텐더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성이었습니다. 바에 착석한 저는 IPA 맥주를 한 잔 주문한 뒤, 은은한 조명이 매력적인 이 갈색 공간을 휙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왼편에 놓인 노래방 기계를 발견했죠!

그동안 일본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만, 노래방 기계를 갖춘 작은 주점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가라오케를 갈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일본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소도시의 조그마한 술집에서 동네 주민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는 광경-만큼은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수제 맥주를 파는 서구식 펍에 노래방 기계가 떡하니 놓여 있다니요!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지만, 제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 결국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검색해야만 하겠습니까? 당연히 One! Two! QWER이죠.

그 가게 노래방 기계에는 QWER의 곡이 무려 4개나 들어 있더군요. 적어도 <고민중독>과 <내 이름 맑음>은 부르지 않을 수 없죠. 물론 저는 QWER 곡들의 난이도가 매우 사악하다는 점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음이 높기도 높거니와, 워낙 빠르고 가사가 많아서 숨 쉴 틈이 전혀 없죠. 거기 조용히 앉아 있는 코쟁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저도 QWER의 코쟁이를 좋아하는 걸요. QWER의 명곡들을 알이즈웰 버전으로 처음 접하는 경험이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돼지 서너 마리의 멱을 따면서,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내일 콘서트에서 완창할 곡들을 불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홀 안의 손님들은 제게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환락이 넘치는 신주쿠에서 저 정도 레벨의 객기 따위는 소소한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에 오히려 마음이 놓여, 저는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덕분에 콘서트 시작 전부터 목소리가 살짝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노래 부르는 광경을 지켜보던 바텐더가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중인 공대생이었으며, 이 곳에서 일한 지는 이제 3개월이 되었다는군요. 퇴근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본인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20대 청년이 부르기에는 너무 아재틱한 곡들이었지만, 저도 아재이니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인들끼리 가라오케 기계를 독차지한 채,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이팝과 영미 팝송 등 가리지 않고 마구 불렀습니다. 덕분에 저는 큰 꿈을 하나 이뤘죠. "노래방 기계를 갖춘 일본 주점에서 QWER 노래 부르기." 이만하면 새벽 3시 반에 시작된 오늘 하루를 제법 충실하게 보낸 셈입니다. 밤 1시가 훌쩍 넘었으니, 이제는 귀가할 때가 되었죠. 제게 소중한 경험을 가능케 해 준 한인 바텐더 분께 감사드립니다.

https://www.timeout.com/tokyo/bars-and-pubs/shinjuku-ale



이번 2박 3일 도쿄 여행은 할 이야기가 매우 많은 알찬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4월 10일에 오사카 팬 콘서트가 있고, 그 이후로는 5회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QWER 버스킹이 바위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 써야 할 이야기들이 줄 지어 대기 중이죠. 그래서 이번 도쿄 일정은 가급적 짧게 정리하고 Next Chapter로 넘어갈까 합니다. 4월 5일만 해도 못 다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오늘 글은 여기에서 줄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

https://www.youtube.com/watch?v=D-Hn7ZzxDkI

[사라진 멤버들.. l 일본에 간 QWER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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