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WER 도쿄 콘서트 및 성지순례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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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알이즈웰(All is well)입니다. 드디어 QWER 첫번째 해외 콘서트가 열리는 2025년 4월 6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 술을 좀 마시기는 했지만, 컨디션은 상당히 양호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평생 운동을 하지 않았고 육식을 끊은 데다 비쩍 마른 멸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종차별에 맞서고 인도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열정'으로 온종일 걷고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잠은 거의 자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 어느 누구도 그의 '열정'과 '체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수면 부족은 물론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육체의 컨디션이 '열정'에 크게 좌우된다는 경험적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농구 몇 게임을 뛰어도 끄덕 없는 수컷 바위게들이 여자 친구의 뒤를 따라 백화점을 30분만 걸어다녀도 지치고 졸리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죠. 비록 어제 펍에서 QWER 노래를 부르느라 목이 살짝 간 상태이지만, 몸은 가벼웠습니다. 이번 QWER 콘서트를 향한 열정만큼은 넘쳤거든요.
오늘 오전에는 제게 콘서트 티켓을 양도해 주실 바위게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지난 1월 말, 히나 생일카페 투어 때 저와 동행했던 분입니다. 편의상 '티켓 바위게'라고 하겠습니다. 그 분은 도쿄 여행이 처음인지라,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있는 유명한 스타벅스를 가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8시 반에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다만 저는 경험상, 그 곳은 오픈런을 해야만 뷰가 좋은 창가 좌석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7시 오픈런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깨끗하게 샤워를 마치고 오늘의 전투복인 'wmc 히나 고스트 티'를 껴입고 나니, 준비 완료! 도쿄 날씨가 생각보다 따뜻해서, 아우터는 걸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JR 야마노테센을 타고 시부야로 이동해서 하치콩에게 인사한 뒤, '스타벅스 시부야 츠타야 점'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저보다 열정이 넘치는 관광객이 많았던 터라, 결국 창가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살짝 우울했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 번 왔던 터라, 굳이 창가 좌석을 차지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쿄를 처음 방문하는 바위게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는데...저는 그나마 괜찮은 자리를 잡고, 말차 프라푸치노를 주문했습니다. 제 옆자리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고토부키 란>에 나올 법한 화려한 복장의 일본 소녀 2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혹시 '토요코 키즈' 아닐까?' 온갖 상상을 하며, 브런치매거진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대략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와서인지, 가장 뷰가 좋은 곳에 앉아 있던 인도계 가족 4명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저는 홍석천 님마냥 매의 눈을 하고서 그 자리를 노립니다. 그리고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마지막으로 목을 축이고 자리를 뜨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가서 휙 앉아 버립니다. 주변 서양인들의 허탈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한국인 그 중에서도 바위게의 사전에 '널널'은 없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망설이는 사이에 항상 기회를 놓치죠.
2달 여 만에 본 티켓 바위게는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시요밍이 마시고 싶다는 스타벅스 시즌 한정 음료를 주문한 그는 뷰가 좋은 좌석에 앉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죠. 알고 보니, 티켓 바위게는 'QWER 덕질을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운동과 식단 조절을 통해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이 점은 많은 바위게들이 공감할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8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던 [원더리벳 페스티벌], 한증막과도 같았던 한여름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경험한 바위게들은 체력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게다가 락 페스티벌은 대부분 '스탠딩'으로 즐기죠.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와서,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몸매'를 만드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체력'을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죠. 물론 말처럼 쉽지 않고, 저도 항상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고작 2달 만에 눈에 띄게 달라진 티켓 바위게 님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티켓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머플러를 둘러줘서 고맙...아, 이건 아니구나.
10시가 조금 안 되어 티켓 바위게를 보내 드리고, 저는 시부야 거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패션의 성지인 캣 스트리트와 하라주쿠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오픈런을 위해 타워 레코드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열정이죠, 바로 열정.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구(詩句)로 유명하죠. 이 시는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한 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는 구절로 이어지죠.
QWER 덕질을 통해, 바위게들은 잊고 살았던 열정을 회복했습니다. 일본까지 찾아온 바위게는 QWER에게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뜨거운 사람이죠. 지금으로서는 그걸로 된 겁니다. 시요밍처럼 달리고 쵸단처럼 내려치고 젠타처럼 노력하고 히나처럼 환하게 웃으면 됩니다. 반쯤 깨진 연탄 같은 우리지만, 적어도 '삶은 원래 지루하고 재미 없다'는 핑계 따위는 대지 않으려 합니다. 끝닿는 데까지 한 번 밀어붙인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남들이 보기에 미친 짓을 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전속력으로 돌진해, 지구 저 끝까지!").
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단순히 밥 먹고 똥 싼다고 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건 아니니까요. 덕질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매우 바람직한 취미 활동입니다. 특히 성장형 밴드인 QWER와 함께 하는 덕질은 더욱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패션 피플에게 인기가 있는 캣 스트리트(cat street)는 오전에 한산합니다. 문을 연 가게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QWER 멤버 4인은 각기 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하죠. 그녀들의 패션이 언젠가 일본에서 유행할 가능성을 점쳐 봅니다. 캣 스트리트 주변을 돌아본 뒤 오모테산도 역에서 하라주쿠 역까지 쭉 걷다, 메이지 신궁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그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이 아주 편해지더군요. 복잡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본디 12시 경 바위게들과 만나 타워레코드를 방문하는 QWER 성지순례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벚꽃이 절정에 이르는 시즌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이 시즌에 왔는데, 그래도 벚꽃은 제대로 보고 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습니다. "알이즈웰 짱?" "하이(はい)!" "나니가 스키(何が好き)?" "바위게 요리모(よりも) 사쿠라!" 이에 구단시타 역 근처 '치요다 벚꽃 축제'가 한창인 '치도리가후치'에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치도리가후치'로 둘러 싸인 키타노마루 공원 안에는 음악 팬들에게 잘 알려진 '무도관'이 있죠. QWER이 언젠가 공연해야만 하는 장소이니, 사전답사 차원에서 가보지 않을 수 없었죠.
구단시타 역에 내리니 엄청난 인파에 숨이 막혔습니다. '아, 지금은 벚꽃 시즌이니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2025년도 동양대학 입학식]이 무도관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동양대학 입학식에 참석한 1학년 학생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제 평생에 그렇게 많은 수의 정장을 한 자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무도관' 하면 가수들의 공연만 생각했던 제게, 이런 경험은 색달라서 좋았습니다. 무도관이 있는 키타노마루 공원은 꽤나 넓은 편인데, 입학식장만 벗어나면 조용하고 한적했습니다. 이 공원은 옛 에도 성의 유적 가운데 하나인데, 벚꽃이 만발한 '치도리가후치'는 에도 성을 빙 둘러싼 방어용 '해자'입니다.
키타노마루 공원을 둘러싼 해자를 중심으로 벚꽃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산책로가 잘 형성되어 있어, 벚꽃나무 따라 걷기에도 좋습니다. 가끔씩 이슬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공기가 깨끗하고 사방이 고요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치도리가후치'가 유명한 까닭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 사이로 보트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는 선착장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벚꽃을 구경했는데, 정말 멋졌습니다. 제 여동생에게 이 사진을 보내 주니, "롯데월드랑 똑같구먼!"이란 답장이 왔습니다. '97 T나(히나의 별명, 97% T 성향)' 이상으로 T성향이 강한 여동생을 둔 오빠이다 보니...히나를 직접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긴 저도 T이니,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저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광경보다는, 핑크(쟈 나이, 마젠타다!)빛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 그리고 맑은 호수 위에 떨어져 띠를 이루며 소용돌이치는 장관을 더욱 좋아합니다. 키타노마루 공원 입구 쪽에서는 호수 위에 뭉쳐 떠다니는 벚꽃들을 헤치며 손가락으로 연신 건져내는 연인들의 보트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 중앙에 홀로 노를 젓는 사내가 보이죠? 수컷 바위게일 확률, 50% 봅니다. 고개를 숙인 것을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구단시타 역을 가득 메운 인파를 헤치고, 저는 다시 신주쿠 역으로 향합니다. QWER 공연이 있을 ZEPP 콘서트홀에 가서 바위게들을 만날 시간이죠. 제 덕질 대상이 QWER인지 바위게인지 약간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여행을 애당초 '바위게 투어'로 정했었습니다. 더 많은 바위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바위게 인터뷰집' 출간이 저의 작은 꿈인데, 지금부터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써내려가다 보니, 글이 엄청나게 길어졌네요.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QWER 도쿄 콘서트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
["핑크쟈나이, 마젠타다!"에 대한 보충 설명]
https://m.blog.naver.com/ptj0969/221419075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