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소크라테스가 임종의 자리에서 닭 한 마리를 빚졌다고 말했던 바로 그 아스클레피오스이다. 반면에 히포크라테스는 모든 의사들이 숙지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바로 그 인물이다.
평생을 함께 할 친구인 보라매병원 오범조 교수가 의료윤리에 관한 동양철학적 입장에 대해 궁금증을 표시했다. 내가 봐도 여간 큰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서양 의료철학의 근원부터 논문을 찾아 읽어나가고 있다. 서양 의료철학의 근원을 모르면, 오늘날 서양 의료철학이 문제 삼고 있는 바를 명확히 파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 아스클레피오스는 ‘소크라테스’에, 히포크라테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해당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간의 몸이 신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몸은 신성할 것도 없고 단지 고깃덩어리라고 본다. 히포크라테스는 몸에 대한 존중이 없으며, 그런 그의 사상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의료윤리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히포크라테스 선서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 내용도 없다. 듣기 좋은 빤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의료철학을 좀 더 깊게 파다 보면,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히포크라테스가 서양 의료역사에서 영웅으로 인정받게 되는 역사가 매우 흥미롭다. 다시 말하면, 히포크라테스는 처음부터 잘 나갔던 인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철학사 초기에서 플라톤에 비해 그 지위가 별 것 아니었듯이.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영웅을 창조해내는 과정이 어찌나 다른 분야와도 흡사했던지. 아주 흥미롭다. 역시 의료철학 분야도 여타 철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절어 있다. 어련하겠는가.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