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이들과 촛불 민주주의
<멜뤼진>이라는 잡지의 1888년 5월 5일자에는 "건축의 의식"이라는 무척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나와 있다. 그것은 영국남부 해안지방인 콘월의 레스포덴이라는 지역에 교각 하나를 바로 세우는 데에 따랐던 전설 같은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 교각은 거의 다 세워지자마자 그만 급류에 휩쓸려가버리고 말았다. 근처의 대다수 주민들은 이 사건을 마법이나 주술의 결과로 인식했으며, 결국 마녀로 이름 난 여인에게 대책을 의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마녀의 처방은 이러했다고 한다. "만약 레스포덴 주민들이 다시는 다리가 전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공사를 할 때 그 토대 밑에 네 살짜리 아이를 산 채로 묻어야 할 것입니다......밀폐된 술통 안에 아이를 발가벗겨서 넣되, 한 손에는 축성받은 초를 다른 한 손에는 빵조각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약간의 보상을 대가로 자신의 아이를 제물로 제공하겠다는 어느 정신 나간 여인이 나섰고, 결국 불쌍한 아이는 산 채로 매장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자, 진짜로 그 어떤 폭풍우나 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튼튼한 다리가 생겨난 것이었다. 다만 그 이후로 떠도는 이야기 속에서는 아이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는 말 몇 마디가 그대로 전해져오고 있다.
엄마, 엄마, 내 촛불이 꺼져버렸어요.
이제는 빵 부스러기밖에 남지 않았어요.
한편 비정한 그 어머니는 의식이 끝난 후 며칠 만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고, 그 이후 레스포덴에 비바람이 불라치면 언제나 서글픈 흐느낌 소리가 그 속에 실려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 존 그레고리 버크, <신성한 똥>(까치, 2002), 137쪽 -
[내 생각] 무려 19세기 말에 영국에서 있었던 저 끔찍한 사건은 한국인들에게 에밀레종 설화를 상기시킨다. 그런데 어째서 인신공양을 하면 에밀레종이나 레스포덴의 교각이 그토록 튼튼하게 될까? 정말로 인신공양이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일까? 만약 정말로 인신공양을 해서 저런 효과를 누릴 수만 있다면, 후쿠시마 원전이나 삼풍 백화점 등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을 갈아 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내 생각은 이러하다. 사람을 산 채로 집어넣는 것은 정말로 어떤 수를 써도 안 될 경우 쓰게 되는 극단적인 수단이다. 만약 저와 같은 수단을 써도 일이 잘 되지 않을 경우, 교각이나 에밀레종 제작을 담당했던 이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작을 담당했던 이들은 사람을 갈아넣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레스포덴 지역에 교각을 놓는 건축업자를 상상해 보자. 그는 대한민국 일부 건축업자들이 그러하듯이, 이리저리 자재를 빼돌리고 뒷돈을 받으며 부실공사를 해댔을 것이다. 눈 먼 나랏돈을 씹어 삼키는데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일이 계속 잘못되자 마침내 사람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제 그 건축업자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그 아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지금껏 부실공사를 해왔다고 말하기에는 그 건축업자들은 너무도 양심이 없다. 그 때문에 그들은 죄 없는 아이의 목숨을 갈아 넣는 피치 못할 어리석은 사태가 초래됨에 따라 미친 듯이 교각을 튼튼하게 짓는 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뉴스에서 보도된 바와 같다.
물론 이 사건은 결코 인신공양을 통해서 무너지지 않을 다리를 만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어리석은 미신으로 인한 인명의 희생, 그리고 그 희생을 자초한 어머니의 실성 등이 우리에게 남겨진 교훈이다. 하지만 잠깐만, 에밀레종 설화나 레스포덴의 교각 사건이 단지 어리석은 과거의 일일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의 세월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 엄마, 내 촛불이 꺼져버렸어요.
이제는 빵 부스러기밖에 남지 않았어요."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세월호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고 그 누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는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며, 아이의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촛불은 지금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