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선설(性善說)을 인정치 않는다. 심지어 대학에서 유학(儒學)을 전공해서 대중강연이나 대학강연을 공자와 맹자를 논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인의예지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지닌 손톱만한 직업적 양심을 바라볼때면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 자리는 결코 훌륭한 동학들의 조그마한 잘못을 침소봉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 성선설을 올바로 이해하고, <겨울왕국 The Frozen>이와 같은 성선설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구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본 글의 목표이다.
성선설(性善說)의 성(性)은 '타고난 것', 선(善)은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철학용어로 풀자면, 성선설은 '존재론적으로 볼 때,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키가 180cm 미만의 남자는 루저라는 실언이 화제가 되었었다. 그 실언에 따르면 170cm나 160cm의 남자는 180cm의 남자에 비해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 하지만 성선설에 따르면 그와 같은 우열과 열등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오로지 서로간의 비교를 통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비교가 아닌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성선설에 따르면, 170cm의 남자는 170cm로서 완전하고, 160cm의 남자는 160cm로서 완전하다. 이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브래지어 사이즈가 A컵인 여성이 B컵인 여성보다 열등하다는 것이 옳은 주장이냐는 것만 잠깐 숙고해 보면 된다. 신장이든 가슴이든 그 무엇이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열등하지 않으며, 어떤 문제도 없다.
따라서 철학에서 문제삼을 것은 존재오류가 아닌 인식오류이다. 다시 말해서 존재를 두고 우열과 열등을 논하는 '착각'이 문제이지,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성선설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를 염두에 두고서 <겨울왕국>을 차근차근히 살펴보자. 왜냐하면 <겨울왕국>은 성인들을 위한 동화이며, 담고 있는 철학적 비유의 무게감이 결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엘사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얼리는 능력을 타고났다. 그리고 성선설에 따르면 타고난 것들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문제가 없다. 엘사는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이용해서 자기 주변을 얼려가며 여동생 안나와 즐겁게 논다. 그런데 위험하게 장난치는 안나를 말리려 엘사가 다급히 손을 뻗는 순간, 안나는 그만 엘사의 손에서 나간 얼음 광선에 맞고 다친다. 이윽고 엘사와 안나의 부모가 달려와서 사고 현장을 본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이들이 놀다 보면 다치는 일은 다반사이다. 하지만 엘사의 부모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엘사의 타고난 능력이 '사회적으로 악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엘사를 독방에다 가두고 외부와의 접촉을 금한다. 본인들의 소중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열리는 엘사의 능력은 엘사의 감정 상태를 여실히 반영한다. 엘사가 머무는 방은 엘사의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인해 항상 서리로 덮여 있다. 또한 엘사가 자기 자신의 타고난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녀는 자기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된다. 이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엘사와 안나의 부모님은 배를 타고 여행 중에 불행히도 사망하고 엘사가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엘사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에서 수근대는 것처럼 괴물로 여긴다. 이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고서 결국 대관식을 망쳐버리고 외딴 곳으로 도망치게 된다.
여기서 엘사는 'Let it go'를 부르며 본인만을 위한 얼음궁전을 짓고서 이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친동생인 안나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떨어져 지내려 하며, 본인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악하게 본다는 점에서 여전히 착각을 안고 살고 있다.
안나는 엘사가 괴물일 리가 없다며 그녀의 언니를 찾으러 크리스토퍼 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마침내 안나는 엘사를 찾아내서 함께 집으로 가자고 설득하지만 엘사는 거절하고,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엘사는 안나에게 얼음광선을 통해 치명상을 입힌다. 이제 안나는 '진실한 사랑'을 찾지 못하면 얼음동상이 되어 죽게 될 운명에 처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디스(diss)하는 디즈니의 블랙 코미디가 펼쳐진다. 역대 디즈니 여성 주인공들은 진실한 사랑을 멋진 남성(왕자이든 아니든)에서 찾으려 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하지만 <겨울왕국>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초로 진실한 사랑을 자매간에서 찾고자 했다. 안나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엘사를 구해낸다. 그리고 점점 얼음동상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놀랍게도 안나를 녹일 수 있는 진실한 사랑은 엘사에게 달려 있었다. 엘사가 안나에게 자기 사랑을 털어놓자, 안나는 '진실한 사랑'으로 인해 녹아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다.
엘사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마음껏 받아들인다. 엘사의 감정 상태에 따라 주변 환경이 변한다는 점은 앞서 언급했거니와, 엘사가 자기 자신의 존재 및 주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됨에 따라 왕국을 덮었던 얼음은 죄다 녹아버리고, 엘사는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왕궁을 스케이트장으로 바꾸고 백성들이 신나게 놀도록 한다.
성선설(性善說)과 관련해서 이 영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다. 성선설에 따르면 모든 존재자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존재에 오류가 없기 때문에, 그 존재자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존재를 파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주의, 벡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에서 주장한 사형반대 등과도 결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디즈니는 선악 이분법에 따라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며, 절대악으로 상정된 캐릭터는 어김없이 죽어야 했다. 왜냐하면 절대악의 존재가 사라져야먄, 세상에는 절대선만 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백설공주의 마녀 여왕, 인어공주의 마녀 우슬라, 미녀와 야수의 개스톤, 알라딘의 자파 등 모든 악역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겨울왕국>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가장 악역이라 할 만한 한스 또한 안나에게 펀치를 얻어맞고 배위에서 떨어진 뒤 고국으로 끌려가는 선에서 끝난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에서는 왕위 서열에서 한참 아래에 있는 한스가 어릴 적부터 멸시를 당해왔음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스의 존재가 악한 것이 아니라 한스가 생각을 잘못하고 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겨울왕국>을 성선설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항상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해야 할 철학적 근거를 모른다. 성선설(性善說)은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존재론적으로 완전하며, 다만 서로 다른 모습과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성선설(性善說)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성선설(性善說)을 통한 영화 평론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