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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방콕 여행기 (3)

승환과 내가 묵는 게스트하우스는 방콕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야시장인 트레인마켓에서 1k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물론 그와 같은 장점 때문에 이 숙소를 택하기도 했다. 4인용 도미토리룸이 우리 둘에게 배정되어, 우리는 2층 침대 위칸에 우리 짐을 마음껏 펼쳐 놓고서 편하게 지냈다. 트레인마켓은 오후 5시에 오픈하는데, 우리는 6시 반에 숙소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단잠에서 깨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는데, 창밖으로 처마에 모래를 흩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소나기로구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방콕의 소나기는 30분을 채 가지 않으니까... 는 쥐뿔, 7시가 넘어서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야시장을 가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부러지기 일보 직전인 낡은 우산 2개를 빌려 쓰고 야시장으로 출발했다.

비록 멀지 않은 거리를 걸었지만, 미소의 나라 태국인들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비를 잔뜩 맞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은 전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물론 속은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약간 슬픈 표정으로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따름이었다. 이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숱한 블로그들에서 볼 수 있었던 커다란 입간판을 지나니, 거대한 야시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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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잠시 들렀던 야시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했으나,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다소 한산한 느낌이었다. 옷가지나 잡화를 파는 상인 가운데 일부는 8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천막을 걷으며 하루 장사를 파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장사를 하고 계시는 승환은 주말 저녁 장사를 일찌감치 파한다는 것이 소상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비가 점점 그치고 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룰이 있었다. 야시장 초입에서 철수 준비를 하는 상인들을 지나쳐, 본격적으로 음식을 파는 천막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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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저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꼬치들을 10밧(350원)에 판매하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치킨 꼬치와 어묵 꼬치들을 총 10개 사서, 거대한 규모의 펍들이 모여 있는 메인 스트리트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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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분위기의 펍들은 기본적으로 저와 같이 2층 구조를 지니고 있다. 비록 BUS라고 쓰여 있지만, 건물들은 대체적으로 '기차'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 때문에 트레인마켓이라고 명명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젯밤 11시가 넘어 트레인마켓을 방문했던 우리는 빈 테이블을 찾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도 이르고 비가 오기도 해서, 우리가 원하는 테이블을 찾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이곳 펍은 안주를 야시장에서 구매해서 반입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맥주 3병 만을 주문하고서 꼬치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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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쪽 테이블에는 어린 태국 커플이 앉아 있었고, 등 뒤로는 젊은 한국인 여성 2분이 자리했다. 그분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듯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몇 장 찍더니, 이내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전혀 말이 없다. 그러다 그들은 블로그에 올릴 또 다른 사진을 찍으러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내 기준으로 11시 방향에는 5명의 태국 남녀들이 '참이슬'을 마시며 즐기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2명은 트랜스젠더였다.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겁이 난 나는 승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내가 그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지닌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나는 태국에서 트랜스젠더들에게 유독 인기가 좋은 편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트랜스젠더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깔깔 웃으며 도망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남성들에게만 인기가 좋은 것이 내 웃픈 현실이다. 이 때문에 나는 그들과 가급적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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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승환은 야속하게도 나를 내버려두고 맞은편 헤어샾으로 머리를 깎으러 가버렸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맞은편 2층에서 머리를 깎고 있는 고승환과 1층에서 물담배를 피우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서양인들을 즐거이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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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이 넘게 머리를 깎고 돌아온 승환은 태국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대만계 한국인처럼 보였다. 나는 솜씨 없는 이발사가 머리를 너무 오래 다듬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승환은 그가 참으로 섬세한 헤어 아티스트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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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어 적적했던 내가 야시장으로 내려가서 술안주를 몇 개 더 사 오기로 했다. 사실 나는 북적대는 틈에 끼어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야시장은 그런 내 취향에 딱 맞는 곳이다. 나는 바나나에 시럽을 잔뜩 끼얹은 로띠, 그리고 해산물 꼬치를 여럿 사서 다시 2층 술집으로 올라왔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달콤한 로띠는 쌉싸름한 싱하 맥주에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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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가 가까워지자, 우리는 다음 예정 장소인 SNO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분위기가 참으로 좋았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이번 여행에서 야시장은 이것이 마지막인 듯싶다. 갈수록 늘어나는 인파로 인해 야시장의 열기는 뜨거워져만 갔고, 아쉬움에 차마 발을 떼지 못하던 승환은 공중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무려 10분 이상을 지체했다. 물론 지체했다는 표현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승환을 밖에서 기다리는 나 또한 야시장의 풍경을 마냥 즐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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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차다 쏘이 4에는 태국 현지의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클럽들이 밀집해 있다. 우리는 그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다는 SNOP을 방문하기로 했다. 20분가량을 걸어야 했지만, 걷는 것이야말로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야시장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라차다 소이 4 입구였다. 클럽 SNOP를 찾기란 전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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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입구로 들어가 손목에 도장을 찍고선,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입장했다. 현지 양주 블렌드 한 병을 주문하고 소다수 4병과 아이스 버킷을 주문했는데도 900밧(3만 원 정도)이 채 나오지 않았다. 양주를 시켜야 테이블을 잡을 수 있기에 그렇게 주문했지만, 주말 11시에 인기 클럽에서 빈 테이블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안이했다. 보통 웨이터에게 팁을 찔러주면 태국에서는 없던 테이블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공간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스테이지 근처 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테이블을 잡는데 3만 원이 채 들지 않으니, 주머니가 가볍거나 술값을 크게 쓰고 싶지 않은 클러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참고로 여기는 태국 젊은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노는 건전한 라이브 공연 중심 클럽이다. 홍대의 롤링 홀이나 GOGOS2, FF 등을 생각하면 된다. 결코 논현동의 옥타곤이나 이태원의 메이드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EDM 음악 등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태국 현지 유행곡들을 라이브 밴드가 몇 시간 동안 계속 연주한다. 현지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목적인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분위기는 오히려 환영할 만했다. 흥에 겨워 이리저리 펄쩍 뛰며 하이톤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태국 젊은이들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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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새벽 2시 가까이 즐기다가 숙소로 복귀했다. 내일은 카오산 로드로 이동해서 일정을 이어갈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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