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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도입부 번역에 관한 소고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雪国」)


번역 1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번역 2 :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번역 1과 2는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따온 문장이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출판사의 번역이라 흔히 접할 수 있다.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설국>의 도입부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도입부라는 찬사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상기한 두 번역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선 첫 번째 번역부터 살펴보자. 나는 원문의 雪国을 ‘눈의 고장’으로 풀어쓴 것을 문제 삼고 싶다. 왜냐하면 雪国의 国은 앞서 나온 国境의 国과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장 경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고 번역하든지, 아니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번역해야 한다. 야스나리가 国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대칭적으로 썼기 때문에 마땅히 그 점을 살려야 한다. 참고로 역서에 따라서는 "국경을"을 아예 번역하지 않고,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로 한 경우도 있다. 간결해서 좋기는 하나, 역시 雪国의 国과 国境의 国이 대비된다는 점을 간과한 오역이다. 国境은 기나긴 어두움이지만, 雪国은 눈이 시리도록 환해지는 하얀색이다. 마치 일본 전국시대에 경계를 마주한 서로 다른 国과도 같다. 이 国의 의미가 반드시 살아야 한다. 사족을 더 붙이자면, 나는 "빠져나오자"를 "나오니"로 옮기는 편이 더욱 간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에서도 보통 "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나왔다"라고 하지,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번역자의 개인 취향일 수도 있다. 나는 "빠져+나오다"라는 단어가 좀 억지스럽고 길다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 보다 "~니"가 여기에서는 더 좋다. 하이쿠 같은 간결한 느낌의 "국경의 긴 터널을 나오니, 설국이었다." 가 내 마음에는 그나마 제일 와 닿는다.

두 번째 번역의 "밑바닥까지"는 문자 그대로 오역이다. 왜냐하면 が는 "까지"가 아니라 "이(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까지"는 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깨는 천박한 느낌을 준다. 야스나리라면 결코 "까지"라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세 문장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까지" 같은 한계 짓고 힘쓰는 느낌의 단어는 들어설 곳이 어디에도 없다.

설국 도입부에 나오는 터널의 모델인 시미즈 터널은 길이가 무려 10km라 한다. 우리는 KTX가 아니라 과거 통일호나 비둘기호의 속도로 철로를 규칙적인 흔들림과 함께 짚어가던 열차를 상상해야 한다. 오히려 이런 경험이 없는 오늘날의 아이들은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광경이겠다. 설국에서 터널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설국의 풍경은 결코 갑작스럽지 않다. 말하자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얗게 되어 걌다(白くなった)." 국경과 설국은 분명히 대비되지만, 둘이 이어지는 광경이 급작스럽거나 단절적인 느낌을 주는 번역은 모두 원작의 의도를 살리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새롭고 참신한 번역을 시도하면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전문번역가가 겪었을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설국>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한 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써놓고 나니, 国境과 雪国 두 단어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패기 있는 독자가 또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그의 글이 실린 링크를 아래에 첨부한다.

http://news.mk.co.kr/newsRead.php?no=849510&year=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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