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문 앞에 놓인 슬리퍼를 신고, 다용도실 빨래건조대에 걸린 점퍼를 걸쳐 입고 문간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현관 앞까지 나간 아들이 혹시 자기가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들의 대답이 설거지에 분주한 자신의 귀에 미치지 못했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번에는 현관까지 들릴 만큼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되도록이면 일찍 들어오너라. 저녁에 눈 온다니까 우산 챙겨가고."
역시 아들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현관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어머니는 현관문 소리만 크게 나지 않았으면 아들의 “예.”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어머니는 다시 설거지를 하며, 대체 얘는 매일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걸까 고민해보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연애도 포기하며 취업준비에 매달려온 아들은 결국 백수가 되어 26세를 맞이했으며, 1년 가까이 계속 취업에 실패하고서 이제 27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늦게 얻은 이 둘째 아들은 늙은 어머니에게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거리였다. 우선 낮에 한 번 집을 나서면, 아들은 연락도 없이 밤늦게나 되어 돌아왔다. 늙고 쇠약한 어머니는 이불도 펴지 않고, 맨바닥에다 팔을 괴고 누워 아들을 기다리다가 곧잘 잠이 든다. 하지만 편안하지 못한 잠을 두세 시간씩이나 계속 잘 수 없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깰 때마다 어머니는 고개를 들어 아들의 방을 바라보고, 다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자정 - 그리 늦지는 않았다. 지하철이 끊기려면 아직 멀었으니, 아들은 곧 돌아올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서 돌아와 자라고 빌며, 또 어느 틈엔가 꼬박 잠이 든다.
그녀가 두 번째 잠을 깨는 것은 새벽 1시 반이나 2시 정도이다. 귀가한 아들이 컴컴한 집안을 보고서 더욱 우울해질 것을 염려해, 어머니는 항상 아들의 방에 불을 켜 놓았다. 이 때문에, 아들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고 해서 그가 귀가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들은 잘 때면 반드시 불을 끈다. 그러나 아들이 귀가해서 침대에 누워 책이라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아들에게는 분명 그런 버릇이 있다. 어머니는 소리 안 나게 아들의 방 앞에까지 걸어가 가만히 안을 엿듣는다. 마침내 어머니는 방문을 열어 텅 빈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방문을 닫으려다 말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전공서적과 취업준비서가 어지럽게 쌓인 방이 나이 든 어머니에게는 더욱 삭막해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침대 시트 아래 손수 깔아 놓은 전기장판이 혹시 꺼지지나 않았는지 확인한 뒤,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본다. 26년을 길렀어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자식이었다. 그러나 26년에 26년을 다시 곱해 키우더라도, 어머니의 마음은 늘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리라.
한때 어머니는 작은 아들이 연애라도 하면, 취업에 실패한 아들의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편치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은 취업은 둘째치고 왜 연애조차 하지 않으려 들까?”하고 며칠 전 밥상에서 어머니가 연애 얘기를 꺼냈을 때, 아들은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요즘 세상에 돈 한 푼 없이 어떻게 연애를 해요?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도 없는 백수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아이고, 엄마와 아빠는 돈 한 푼 없이 연애하고 결혼했다. 내가 네 아빠 처음 만났을 때 아빠는 돈은커녕 할아버지 쌀가게가 망하는 바람에 집안의 빚까지 지고 있었어. 그래도 나는 아빠의 사람됨이 좋아서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았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중요하니.”
“어머니 때는 모두가 못 먹고살던 시절이니까, 그런 게 가능했죠. 게다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사회 전체에 낙관적 분위기가 넘치던 때였잖아요. 그때는 당장은 가난해도 금방 잘 먹고 잘 살리라는 희망이 있었으니 그렇게 결혼도 하고 했던 거잖아요. 지금 경제상황을 보세요.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어머니도 삼포 세대 들어보셨죠?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 요새는 거기다가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 세대란 용어가 유행 중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네. 아들 이름도 오포라 짓고.”
분노와 냉소를 간신히 억누르는 듯 차가운 아들의 대답에 어머니는 말문이 막혀서 그만 눈길을 돌려 국그릇만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이 여린 늦둥이 아들은 어머니에게 상처를 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밥상에서 조용히 일어나 제 방에 들어가 버렸다.
오포는 본디 효성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다. 유수의 사립대학을 다니는 오포는 과외지도를 여럿 하였으며, 제법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과외비를 받아서 집에 올 때면, 오포는 항상 집에 전화를 걸어 홀어머니가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 여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이 매우 자랑스러우면서도,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용돈조차 제대로 줘본 적이 없는 아들에게 뭔가를 얻어먹는다는 것이 불편해서 “네가 번 돈인데 네가 필요한 곳에 쓰렴. 엄마는 네가 돈을 벌어 등록금도 대고 하는 것만 보아도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포는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광장시장에 들러 홀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빈대떡을 사 오곤 했다. “어머니, 제가 돈 넉넉하게 버니까 걱정 말고 먹고 싶은 것 말씀하세요. 빈대떡도 못 사드릴 만큼 제가 궁하진 않아요.”
어머니는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느지막이 낳은 오포가 보물이자 자랑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오포보다 훨씬 공부를 못 했던 제 형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데에야.
오포의 형은 1988년에 대학을 입학한 소위 486 세대였다. 1988년 10.6%의 성장률을 끝으로, 대한민국은 더 이상 10%대 성장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80년대 내내 지속되었던 고성장으로 인한 낙관적 분위기는 1998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오포의 형은 매우 큰 혜택을 본 셈이었다. 오포의 형은 오포와는 달리, 소위 SKY라 불리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 여러 기업들은 취업 시즌이 되면 유명 대학교에 직접 찾아와 즉석 면접을 보고서 학생들을 그 자리에서 뽑아가곤 했다. 오포의 형은 2점대의 낮은 학점으로도 여러 기업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곳을 골라 갔고, 일찌감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SKY를 나오면 취직 따위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는 일흔두 살의 늙은 어머니는 오포의 형도 쉽게 취직이 되는데 오포가 취직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옛날 어머니들은 이런 순진한 상상도 가끔 했다. ‘아들이 지금은 놀고 있더라도, 일단 장가를 들면 마음이 달라지겠지. 제 아내가 귀여운 줄 알면, 자연히 돈 벌 궁리도 하겠지.’ 하지만 오포의 어머니는 결코 그와 같이 안일한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그래. 시대가 변했으니, 어쩌면 오포의 말이 옳을 지도 몰라. 오포가 일단 돈을 벌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주변의 귀여운 여자들도 눈에 들어오겠지. 우리 아들도 남자인데 어찌 연애를 하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취직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찼는데, 어찌 연애 생각이 끼어들 틈이 있겠어. 연애도 하지 않는데 결혼은 또 무슨 소용이람. 나는 손자 볼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아. 나는 우리 오포만 행복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지금 죽어도 좋은데.’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던 어머니의 생각들은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오포의 거친 발소리로 인해 고리가 끊어졌다. 오포는 약간 술에 취한 듯 기우뚱거리며 옷장으로 가서 잠옷을 꺼내 갈아입고는 책상 앞에 앉아 토익 교재를 펼쳤다. 이럴 때 어머니가 “술도 마시고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렴.”이라고 말이라도 했다가는 아들의 불쾌한 표정을 접하기 십상이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