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만의 허기>는 네덜란드 출신의 유태인 작가 레온 드 빈터의 1990년 작품이다. 스피노자의 <지성 개선론>(서광사, 2015)에 기초하여 네덜란드의 한 외교관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사실 내게는 이 책의 서두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폭식증에 걸려 온종일 먹어대는 프레디 맨시니에게 그를 출장 지도하는 여자 영양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에게는) 공복감이 순전히 정신적 문제라는 얘기죠."
프레디는 경제적으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사랑스러운 자녀와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하지만 그는 케이마켓의 주자창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다 웅얼댄다. "그래, 나는 행복하지 않아."
스피노자는 <에티카> 제5부 정리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우리들이 영혼의 격동이나 정서를 외적 원인의 사유에서 분리시켜서 다른 사유와 결합시킨다면, 외적 원인에 대한 사랑이나 미움은 이들 정서에서 생기는 영혼의 동요와 마찬가지로 없어질 것이다."
프레디는 영혼의 공허함을 물질로 채우려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가 그를 떠난 뒤에 더욱 폭식해서 완전히 건강을 망친다. 그는 자기 폭식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다시 말하면, 그는 아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는 그 공허함을 달래려 더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인과 관계가 바뀌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폭식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폭식을 막기 위해 부단히 도 애썼지만, 그는 폭식을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앓고 있는 공허함, 자기 소외는 외적 원인이 아닌 내적 원인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아내가 스피노자를 잘 알고 있었다면, 남편의 폭식을 막으려 하는 대신, 남편이 폭식을 하는 원인을 대화를 통해 파악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이 점에 있어 현명하지 못했다.
프레디는 체코 정보부에 아내를 살해해달라고 요청하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끌려나간다. 그는 자신의 불행이 아내라는 외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했다. 모든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면, 내 영혼은 영원히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프레디 자신이 정신적 공허함 및 자존감 결여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폭식을 보다 쉽게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했듯이, 그는 그는 육체적으로 허기가 졌던 것이 아니라, 영혼이 허기졌던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소설의 묘미는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호프만의 허기>는 이 점을 다루는 데 조금 소홀한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이 영 흐지부지하다. 소설의 서두와 문제제기가 너무도 좋았고 나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렇게 독후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