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와서 갈수록 각광을 받고 효험이 입증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부 교수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창시했다. 그는 '부정적 심리'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기존의 심리학에서 벗어나, '긍정적 심리'를 강화하는 방법을 주창했다. <긍정 심리학>(안양: 물푸레, 2006)은 긍정 심리학을 창안한 후 수십 년이 지난 2004년에 셀리그먼이 그간 긍정심리학의 발전 결과들을 보태서 긍정심리학을 정리한 책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 긍정심리학의 인성론적 기초는 마땅히 "성선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취임사(1861)에 나오는 "그것은 분명 우리의 본성에 깃들여 있는 선량한 천사들을 감동시킬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특정한 전제를 깔고 있음을 암시했는데, 이어서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해 보겠다.
"이런 전제들 모두 20세기 심리학계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나는 이 전제들이 나타났다 사라진 배경을 소개함으로써 긍정 심리학의 핵심인 '인간 본성은 선하다'는 이론을 되살리고자 한다. ...20세기가 열리면서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에서는 '사회과학' 강의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는데, 사회과학의 학문적 목적은 개인의 행동이나 비행이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약한 개인으로서는 극복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그리하여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은 자리를 잃게 되었고, 선하든 악하든 품성 그 자체는 오로지 환경의 산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긍정 심리학> 206-210쪽)
우리들은, 특히 지적인 호기심이 높고 심지어 지적인 타이틀(예컨대 특정 분야 박사 학위)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은 주류 사회과학의 전제에 자기도 모르게 이미 세뇌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히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나 자신이 모든 이론의 전제에서 자유롭다고 여기며 살지만, 실제로는 성악설의 프레임에 이미 세뇌되어 있고 그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틀을 두들겨보아야 한다.
많은 지식인들은 성선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코웃음을 치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선설이라는 이론을 정밀히 이해하고 있어서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특정 프레임을 지적으로 습득하는데 누구보다도 열심이었고, 그 결과 성악설이 하나의 전제에 불과하다는 점조차 까먹고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밥줄이나 다름없는 선입견들과 어긋나는 사상이 있으면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과격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성악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악설은 진리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들이 성악설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들은 자유로운 정신이 아니라, 성악설의 정신적 노예이다. 특히 사회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축소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적 세례자들이 그러하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내놓았을 때, 그가 사용한 수학은 그 수준이 당대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그는 '시공간의 절대성'이라는 전제를 두들겨 팼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인간은 돈을 밝힐 때 가장 합리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전제를 두들겨 팼다. 니체는 자신을 일컬어 "망치로 철학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니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망치를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만은 죽도록 싫어한다. 우리 다 함께, 단 한 번만 자기 자신의 기존 생각들을 의심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