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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졸리앙과 스피노자

나는 일찍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완전주의(Perfectism)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완벽주의(Perfectionism)과는 정반대 되는 개념이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며 자연법칙에는 오류가 없으므로 존재하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 인간과 나무, 사자와 토끼는 모두 완전한 자연의 서로 다른 모습이며 있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자연법칙에 오류가 없으며 이 대자연은 자연법칙에 오류가 있는 순간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스피노자가 말한 직관지 가운데 가장 직관적이고 분명한 내용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서신을 주고받던 철학자들에게 이 자명한 내용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존재에는 오류가 없으며 오직 인간은 인식에만 오류를 범한다는 내용을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렇다면 누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가장 절실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가? 신체적으로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이와 같은 내용을 쉽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남들과 비교해서 열등한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육신이 있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진리를 이해할 때에 그들은 진정 행복하고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닉 부이치치, 션 스티븐슨, 그리고 오늘 소개할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이에 해당한다. 이 유명한 세 명의 장애우 가운데 철학을 전공한 이는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는 스피노자 예찬가 이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 오늘날 시중에 나와 있는 스피노자 관련 도서 가운데 이만큼 스피노자의 핵심에 맞닿아 있는 저서가 없기에,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인용해보고자 한다.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감겨 있어서 뇌성마비를 안고 살아가는 철학자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서울 :책읽는 수요일, 2013), 87쪽


"괴로움을 키우고 결함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비교입니다.  스피노자가 아주 기막힌 말을 했는데, 제가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되뇌는 명언이죠. '실재성과 완전성을 나는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현실은 있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장애, 결핍 같은 것은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저 자신을 제 옆이나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비교할 때 그런 것들이 더 악화되고, 고통스럽게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인생 행로는 제 존재를 받아들이는, 아니 끌어안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아무것도 내치치 않고서 말이죠. 아름다움도, 즐거움도, 그냥 그것들이 드러난 만큼만 찾는 겁니다. 이 몸뚱어리, 이 존재, 이 삶 안에서 말이죠. 한껏 이상화하거나, 꿈꾼 삶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일대 전환점이라 하면, 더는 이런 식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할까?' 대신 이런 질문을 하지요.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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