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태국 여행기 (2)

2018.07.16 (월)

나는 몇 년 째 카오산로드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사와스디 스마일 인 호텔을 이용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는 비록 하루밖에 묵지 않았지만, 내가 수년째 꾸준히 이 곳에서 묵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 다양한 호텔에 묵지 않고 굳이 이 곳을 고집하는가?

나는 위치가 매우 좋은 이 호텔이 더블베드에 개인욕실이 딸린 에어컨룸을 제공하면서도 하룻밤 1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점을 좋아했다. 참고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싼 게 비지떡이다. 이 호텔은 매우 낡았으며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여기서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은 옆 방의 소음이 들린다는 뜻이 아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카오산로드의 광란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결을 중시하는 여성 여행자에게는 절대 권할 수 없는 곳이다. 비록 내가 베드버그나 바퀴벌레 등을 접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밖에 나가서 밤을 꼬박 지새워 노는 나같은 여행객들에게 이 객실은 참으로 편안한 개인 공간을 제공한다. 심지어 온수도 넉넉히 제공되니 말이다.

체크인을 한 뒤, 나는 겍코 바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람부뜨리 로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젠가는 한 번 자고픈 반 차트 호텔과 스타벅스, 그리고 버거킹을 지나서 아름다운 조명이 벌써부터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람부뜨리 로드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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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골목과 게스트하우스들을 지나서 겍코 바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다. 놀랍게도 겍코 바의 주인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고 손을 모아 합장하며 눈을 징끗했다. 전 세계의 별의별 사람들이 넘쳐나는 그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내 외모는 독특했나 보다.

나는 닭볶음밥과 맥주를 시키고 그것들이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입 속에 퍼부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한국의 태국 식당이 절대 낼 수 없는 지나친 기름과 설탕이 어우러진 길거리 불량식품의 맛. 건강염려증 환자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태국 '레스토랑'에서는 절대로 맛 볼 수 없는 바로 스트리트 푸드의 살아 있는 이 맛. 나는 태국음식을 사랑하면서도 한국에서는 태국 레스토랑을 절대 방문하지 않는다. 비싼 가격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이지만,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맛을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급스럽지 않아야 할 음식을 고급화해서 이도저도 아닌 맛을 지니게 된 그 어정쩡한 '코스모폴리탄 퓨전' 태국 음식을 나는 결코 즐기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콕 내의 비싼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한국의 태국 식당에서 내놓는 그런 맛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태국 식당은 태국의 날 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한국의 모든 식당을 다 방문해본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냥 방콕으로 날아와서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이 길거리 음식을 입에 털어넣는 편을 가장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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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인들은 얼음이 담긴 잔에 맥주를 부어 마시기를 즐긴다. 한국에서는 맥주 맛이 밍밍해져서 이와 같은 방식을 즐기지 않지만, 희한하게 태국에서는 이렇게 먹는 편이 낫다. 태국 맥주들이 대체로 쌉싸름한 맛이 강하고, 날씨가 워낙 덥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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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식사도 했겠다, 이제 오늘 저녁 내가 가고자 하는 더리빙룸 재즈바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속역 쉐라톤 호텔에 소재한 이 재즈바에 입장하려면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제 람부뜨리 로드와 카오산 로드의 지리를 제법 알기에, 내가 좋아하는 주변 주변을 샅샅이 훑어가며 세월아 네월아 휘청취청 나아간다. 몇 주 동안 약을 복용하느라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던지라, 맥주 한 병으로도 발걸음을 쉬이 가누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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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환복한 뒤, 카오산 로드 끝자락에 위치한 방콕 시티 라이브러리를 끼고 돌아 근처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섰다. 이제 카오산 로드에서 시내로 나아가는 시내 버스 노선을 대략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비싼 택시비를 들이지 않는다. 로컬 버스를 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더리빙룸 재즈바가 위치한 아속역에 가기 위해서는 2번과 511번 버스를 타야 한다. 511번 버스는 에어콘을 달고 있지만 자주 오지를 않는다. 선풍기조차 달려 있지 않는 2번 버스는 매우 자주 온다. 그래서 나는 그 놈을 잡아 타고 아속역으로 향했다.

아속역 쉐라톤 호텔 3층에 소재한 재즈바 더리빙룸은 9시부터 12시까지 공연을 한다. 나는 8시 50분 경에 그 곳에 도착했다. 너무나 좋은 시설에 공연장도 훌륭한데 사람이 없어서 매우 놀랐다. 평일이라 그런 것일까. 나는 공연 무대 바로 앞에 홀로 자리를 잡고 맥주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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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기본적으로 4가지 종류의 주전부리가 제공된다. 나는 싱하를 주문한 뒤(태국인들은 singha를 싱~이라고 발음했다), 의자에 편히 몸을 누인 채 3시간 동안 멋진 공연을 관람했다. 여성 보컬이 매우 뛰어났는데, 총 3부로 구성된 공연 가운데 상당수를 신청곡으로 소화했다. 인터미션 중에는 공연 밴드들이 직접 관객들 테이블로 가서 소감을 듣고 신청곡을 물었는데, 내가 신청한 곡들을 모두 연주해주어서 매우 고마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인 커플들이 꽤 있었다. 혼자 와도 좋지만, 커플이 오기에는 더더욱 좋은 곳임에 틀림없다. 원래 소문이 많이 난 곳은 오히려 피해다니는 편이지만, 이 곳은 방콕에 올때마다 몇번이고 와도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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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공연료로 300바트를 받는데, 내게는 그 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 아마 9시 이전에 입장해서일 것이다. 맥주 한 잔에 이렇게 좋은 공연을 보니 다소 황송했다. 앞으로는 공연료를 내는 시간에 맞춰서 입장하고자 한다. 쉐라톤 호텔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에 가니, 놀랍게도 12시가 가까운 시각에 여전히 버스들이 다니고 있었다. 나는 다시 2번 버스를 타고서 숙소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미처 정리되지 않은 짐들과 노트북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혼자 자는 사람이 한껏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내일 일기를 쓰려 했으나, 그래도 오늘 받은 여러 느낌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좋아서 노트북을 펴고 간락히 기록한 뒤 잠에 든다. 내일은 칸차나부리로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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