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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0. 2022

사소한데 안 맞네.

부부 사이에 경제적인 갈등은 얼마나 많은 비율을 차지할까?

 나의 경우에는 50% 이상이다. 우리가 갈등하는 많은 이유들은 비록 엄청난 경제적 부족 때문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부분이 조금만 더 풍요로웠더라면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갈등들이 많다. 오늘 같은 일이 그렇다.


 오늘은 신랑이 00시에 살 때(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오기 전) 무척 좋아했던 순두부 가게를 가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1시간 가량 걸리는 곳이라 이곳으로 이사를 온 이후로는 거의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 신랑은 화심순두부가 생각난다며 오늘 점심은 화심순두부를 먹으러 가자고 아침부터 말을 했었다. 출발은 별 문제가 없었다. 차를 타고 몇 십분이나 가고 있었을까. 신랑은 차에 기름이 별로 없으니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할 겸, 주유소에 가자고 했다. 100km를 갈 분량이나 남아있었나 모르겠다. 신랑은 주유소에 차를 대고는 “카드 줘”라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주말이니까 자기가 넣어.”라고 말하니 신랑은 “이거 자기 차잖아.”라며 어이없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더 어이없거든. 겨우 기름넣을 돈을 달라고 하다니 남자가 자존심도 없냐. 신랑은 주말에 아이들과 나들이를 가는데 드는 비용으로 나에게 40만원을 받아간다. 매달 월급에서 나에게 주는 돈이 90만원인데, 그 중 주말 나들이 비용으로 40만원을 가져가니 그걸 제외하면 나에게 벌어다주는 돈은 50만원인 셈이다. 세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 나는 가끔 속으로 ‘이혼을 하고 양육비를 받아도 이것 보다는 많이 받겠다.’생각한다. 하지만 이혼할 것도 아닌데 그걸 따져서 무얼하나 하는 생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삼키고 살았는데, 이렇게 자잘하게 돈 문제로 날이 설 때면 또 양육비와 벌어오는 돈 사이의 관계를 비교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신랑은 내 말에 떨떠름하게 반응하고는 그냥 내려서 자기 카드로 기름을 넣었다. 나는 아이들과 편의점에 가서 음료를 사왔다.



 그리고 출발하는 차 안은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기름을 넣기 전과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주 멀어진 것처럼 왠지 냉랭하고 차가운 기분이었다. 아이들만 신이 나서 전과 같이 떠들어댔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우리 사이의 냉랭함을 약간 유화시키는 것 같았지만 생각은 ‘쪼잔하게 기름값을 달라고 하는 신랑’에게 맞추어 져서 이제껏 그런 식으로 행동했던 전력들을 세고 있었다. ‘그래. 전에 애들이 아빠한테 과자사달라고 졸라서 집앞 마트에 갈 때도 나에게 카드를 달라고 했지. 정말 진절머리가 나게 짜증이 났었지. 겨우 7천원이 긇힌 카드 내역을 보면서 이렇게 모자란 놈이랑 결혼을 한 나 자신을 원망했었잖아. 겨우 7천원을 쓰려고 부인에게 카드를 달라고 하다니. 돈을 못 벌어오니 이런 것도 밉네. 아, 괜히 짜증이 나네.’, ‘전에도 화엄사에 갔다가 현금 몇 천원이 없어서 못 들어가고 돌아왔잖아. 카드밖에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순두부 가게에 도착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가게에 가서 밥을 먹고, 정신없이 분주하게 아이들을 먹였다.


 신랑은 순두부 찌게와 같이 막걸리를 마셨기에, 돌아가는 차는 내가 운전을 했다. 늘 외식은 술과 함께 하기에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내가 운전을 책임진다. 운전석에 앉아 계기판을 보니 기름이 143km를 갈 수 있는 분량이 남았다고 뜬다. “3만원 어치 넣었어?” 하고 신랑에게 물어보았다. 쪼잔한 놈이 카드 안 준다고 겨우 00시에 갔다 올 수 있을 만큼의 분량만큼만 기름을 넣었구나. 이 거지같은 새끼를 어떻게 하냐. 버리지도 못하고. 이런 생각을 하며 물어보니 “아니. 2만원어치 넣었어.”라고 대답을 한다. 그걸 들은 나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요? 밥만 먹고 가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나는 날도 덥고 짜증도 나고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신랑은 자기가 2만원을 넣고도 조금 민망하게 생각이 되었던지, 아니면 자기도 푼돈으로 기분 상한 것이 마음에 남는지 아이들에게 다그치며 집에 가서 낮잠을 자고 테니스장에 갈거라고 한다.   


 돈이 있었더라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갈등. 즐겁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하루. 돈이 조금만 더 풍요롭게 있었더라도 이런 갈등이 없었을텐데. 아쉽다.


 내가 어떤 부분을 고쳐서 말했어야 했을까? 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지만,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닌걸. 신랑은 주말에 쓰는 돈을 받아가고 있으니, 주말에 아이들과 외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신랑이 지불해야 맞다. 2만원어치 넣었다고 기분이 상한 나의 마음은 그냥 내 기분일 뿐, 정확하게 따지자면 신랑이 2만원을 넣어서 주말에 운전할 수 있을만큼만 넣은 것도 맞다. 그런데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이해타산적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감정이라는 녀석.   





ps. 그 일이 있고 난 후 금요일, 직장으로 꽃배달이 왔다. 장미와 카테이션이 풍성하게 잔뜩 꽂힌 묵직한 꽃바구니였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감사한다고 신랑이 보낸 것이었다. 같이 온 케이크는 우리 반 아이들에 나누어 주고, 퇴근길에 꽃다발을 들고 가려는데 복도에 있던 여선생님들이 그건 뭐냐고 물어본다. 내 대답보다 먼저 꽃다발에 있는 글씨를 읽은 선생님이 "오, 신랑이 보냈어요? 아우, 좋겠다. 부럽다."한다. 나는 주말에 푼돈으로 싸워서 화해한다고 보낸거라고 말을 하려다가 퇴근길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부끄러운 척 웃고는 나왔다.


 퇴근 후, 집으로 와서 멋쩍어 하는 신랑에게 말했다.

"아이참,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인데,  자기가 나한테 스승의 날이라고 감사해 하는거야. 꽃바구니 비싸 보이는데,   기름을 10만원어치 넣었으면 '다음 주에 내가 타고 다닐 기름까지 넣어주는구나.'하고 덩실덩실 춤을 췄지. 에이그,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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