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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0. 2022

아이 하나 낳고, 이혼하면 최고지!

남편은 애 낳을 때나 필요한거야. 낳고 나면 필요없지.

 10여년 전에, 나보다 족히 10살도 넘게 나이가 많은 지인이 이런 농담을 자주 했었다. "남편은 씨 받을 때나 필요한 거지. 애 낳을 때 빼고는 하나 필요 없어." 은근히 야한 농담을 잘 하던 괄괄한 여자분이었기에, 그 말도 재미있게 들었었다. 한편으로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이기에, 그 말이 왠지 불행한 부부 사이를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라 여겨져 그 분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구나.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아이들과 잘 놀아 주지도 않고 돈도 별로 못 벌어오는 건가?'


 결혼을 한 지 9년째가 되다 보니 결혼 생활 동안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이리도 많을 줄이야. 물론 남편이 있어서 좋은 상황도 많이 있지만, 그와 비슷한 빈도로 남편이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상황도 많다. 아이들에게는 늘 아빠가 있는 상황이 더 안정적이고 좋겠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아이들과 같이 마트에 가서 장난감도 사주고 000에 가서 어린이날 축제를 즐겨야겠다 하고 아침부터 챙겨서 외출을 했다. 마트에서 아이들은 이런 저런 장난감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신이 났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골라 들고 모여들었다. 신랑은 계산대에서 슬그머니 물러났다. 10만원이 넘는 금액을 나에게 계산하라고 물러서는 것이다. 내가 가계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니 당연히 내가 계산하는 것이 맞으나, 왠지 모르게 카드를 내야 할 때면 슬그머니 물러나는 것이 눈에 띄는 신랑이 처량하고 무능력해 보인다. 월 50만원의 돈을 벌어오는 사람의 무능함이 이런 곳에서 티가 난다. (300이 조금 모자라게 벌지만, 주말부부로 살면서 자신의 생활비, 보험료, 차량 유지비, 휴대폰 요금, 시부모님 용돈을 제외하고 나면 50만원을 나에게 생활비로 준다. 우리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내가 버는 340만원의 수입이 없다면 신랑의 돈으로는 숨만 쉬고 살아가기도 어렵다.) 외출을 하면 계산해야 할 일이 많기에 늘 계산대 앞에서 신랑의 그런 모습은 불쌍함과 무능함 그 자체로 보인다. 차라리 없었더라면, 내가 이런 사람과 결혼한 나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지는 않을텐데. 하지만 그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문제는 마트가 아니었다. 마트에서 나와 우리는 어린이날 축제를 하는 000로 이동했다. 이미 골목마다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님과 축제 분위기를 즐기려는 청소년들로 가득했다. 아이들과 축제 부스를 돌아보는데 신랑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직 체험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우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다니자는 말에 그러자고 하고는 주변의 식당을 둘러보았다. 이미 많은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서 해방이 된 기쁨과 몇 년 만에 축제다운 축제를 즐기겠다는 설레임으로 많이 나왔기에, 평소에는 인기가 없던 식당도 줄이 길었다. 우리는 그 중 가까운 중화요리 집의 줄 끝에 섰다. 가게 밖으로 10명 남짓 줄을 서 있었고, 가게 안으로 대기하는 사람들이 더 있을지도 몰랐고, 날이 더웠다. 아이들이 같이 기다리기에는 지루하고 더워보이기에 나는 "애들하고 체험 부스에 가서 체험 하나 하고 올게. 짜장면이랑 짬뽕 하나 시켜서 음식 나오며 전화 줘요."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10m 정도 앞쪽에 있는 체험 부스에 가서 미꾸라지 잡기 체험을 했다. 체험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신랑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벌써 가게에 입성한 건가 싶었는데, 날이 덥고 줄이 기니까 그 옆에 있는 가게로 왔다고 한다. 아마 줄이 없는 한산한 가게로 들어간 모양이다.



 미꾸라지 체험을 마치고 신랑이 말한 가게로 갔다. 허름한 가맥집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안주거리가 될만한 과자가 듬성듬성 성의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낮술을 하는 중년의 남자 손님 2명이 우리 테이블 옆에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은 모두 비어있었다. 어두운 실내에 대비되어 문 밖으로는 어린이날의 축제 분위기와 밝은 태양빛이 눈부셨다. 신랑은 막내 아이를 곁에 앉혀놓고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낮술을 하고 싶어서 여기로 들어왔구나.' 이런 추레한 식당에서 어린이날 점심을 먹게 하다니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곧 신랑의 술안주로 제육볶음이 나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아이들 음식이 나오지 않아 신랑에게 뭘 시켰냐고 물어보니 라면을 시켰단다. 신랑의 대답을 재촉하는 말이라고 들은 것처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면이 나왔다. 작은 양은 냄비에 담긴 새빨간 라면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라면 하나를, 어린이날 점심으로 사주는 부모라고? 자기 낮술하자고 이런 가맥집에서 애들 라면을 먹인다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메뉴판에는 아이들이 먹을 만한 돈가스도 적혀 있었지만, 오늘은 돈가스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도 자주 안 먹이는 라면을 어린이날 점심으로 먹이는데, 6살, 7살난 아이들은 매워서 잘 먹지도 못하고 물을 더 많이 먹었다. 속이 터지고 짜증이 계속 밀려와서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옆 테이블의 아저씨들은 아까 시킨 파전이 왜 안 나오냐고 환불해 주라고 실랑이를 벌이고, 팔과 다리에 꽃문신을 한 젊은 종업원은 주방으로 가까이 가서 요리를 재촉했다. 아이들은 맵다고 물 달라고 하는데 이런 구질구질한 식당을 들어와서 혼자 술을 따르면서 제육볶음을 먹는 신랑이 어찌나 미워보이던지. 문 밖으로 여름날의 햇살은 너무도 강렬하고 어린이날 축제를 즐기는 방송과 인파들의 움직임은 분주한데 그 가운데 우리 가족은 이런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어이가 없고 슬펐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한 신랑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신랑은 말은 없지만 미간을 찌뿌린 내 눈치를 보며 막내 아이에게 매운 라면을 자꾸만 들이밀어 먹이고, 아직 매운 걸 못 먹는 막내는 물만 찾는다. 누나가 가져간 물을 달라고 떼를 쓰고 서둘러 받아 먹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내가 왜 이런 놈이랑 결혼을 한 건가 싶다.

 

 작고 사소한 일. 신랑이 점심 식당을 잘못 선택한 일. 나는 내 기분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아이들과 신랑을 집으로 데려다주고(술을 마신 신랑은 이제 오늘은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조용한 카페에 와서 혼자 브런치를 쓰고 있다. "잠깐 쉬고 싶어서 카페 왔어. 이따 4시 30분에 맞춰서 갈게. 애들이랑 쉬고 있어."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 식당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이 더우니까 집에 가서 좀 쉬다가 이따 오후에 다시 나오자고 했다.  신랑은 아이들에게 "얘들아, 집에 가서 양치하고 좀 누워서 쉬다가 한 5시 쯤에나 다시 나가자.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덥다."했다. 아이들은 "자기 싫은데?", "난 놀이방에서 놀거야.", "아빠, 집에 가면 내 티라노 줄 끊어주세요.(어린이날 선물로 산 공룡 포장에 케이블 타이가 묶여 있었다.)" 한다. 엄마가 화가 난 이유를, 그리고 화가 나서 말을 안 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큰 애는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신랑도 알련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을 하고 몇 년 후부터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애를 하나만 낳고 이혼을 하는게 최선인 것 같아. 물론 부부가 아이를 키우면서 잘 살면 그게 최고지. 근데 그게 참 어렵거든.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제일 좋은 것은 애를 하나만 낳고 이혼을 하는 거야. 그럼 결혼도 해봤지. 애도 키워봤지. 남편이 없으니 속썩일 일도 없이 애랑 친구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애는 행복감과 안정감을 많이 주기는 하는데, 애를 많이 낳으면 혼자서 키우기 힘드니까 이혼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지. 애는 딱 하나만 낳아서 내가 모든 정성을 다 쏟아서 키울 수 있으면 애도 좋고 나도 좋은 거지. 다들 애 하나 낳고 이혼 하는 거 추천이야. 결혼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애 하나 낳고 이혼하는 게 알찬 삶인 것 같애.”라고.


 이걸 들은 사람들은 내가 결혼 생활에 불만이 많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겠지? 내가 전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정말 인생의 알찬 정보를 준건데? 10여년   지인의 말도 그러고보면 인생을 살아보고 깨달은 나름의 진리 같은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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