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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0. 2022

누가 좀 객관적으로 얘기해 줄 사람 없나요

오은영 박사님처럼 말이죠.

 부부 갈등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누가 옳고 그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당사자인 부부는 각자의 입장에 충분히 몰입해 있는 상황이므로 "니가 잘못했어."라고 생각한다. 그걸 주변인이 듣게 된다면, 부부싸움은 극히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둘만의 문제이고, 누구 하나가 바람을 피거나,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등의 극단적으로 잘못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애매모호한 갈등을 듣고는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지.", "에이, 둘 사이의 사정은 또 모르지."이런 식으로 갈등을 그들만의 세계로 밀어 넣어 버린다.


 누구에게도 해결책을 들을 수 없는 부부 갈등은, 결국 "네 잘못이야. 나보다 네 잘못이 커. 니가 이상한 거야. 너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한 거잖아."라고 서로를 향해 비난을 일삼게 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갈등은 부부 중 한쪽의 가스 라이팅으로 굳어가거나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파괴로 치닫아 가고, 결국 이혼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말이지 결혼 생활에 대해 객관적으로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가정의 일들은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어야 하는지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상담사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상담사는 왜 없는 걸까? 이렇게 없는 것이 없는 21세기 최첨단 세상인데 말이다.


 “(경제적인 부분) 남자가 얼마를 벌고 있습니다. 여자가 얼마를 벌고 있군요. 돈 관리는 누가 하지요? 돈 관리는 따로 하든, 같이 하든 서로가 정할 내용이지만 경제적으로 부모로서, 부부로서 부담해야 할 부분은 정확히 배분해서 책임져야겠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을 부담하지 못한다면 육아와 살림으로 충당하도록 합니다. 어느 정도의 육아와 살림이면 경제적인 자신의 몫을 충당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살림) 두 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경제적인 기여도 등을 따졌을 때, 집안일 분담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집안일은 아주 종류가 많아요. 설거지, 빨래, 요리, 방청소(쓸기와 닦기를 포함하죠), 냉장고 청소, 화장실 청소, 아이들 환절기 옷 바꿔 걸어두기, 아이들 옷 손빨래하기, 아이들 신발 빨래, 분리수거하기 등등 매일 해야 할 일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계절이 바뀌면서 해야 할 일들을 세세하게 나눠어보죠.

 (육아) 아이가 셋이군요. 아이들 돌보는 일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네요. 이것도 나눠야겠지요.

 (시댁, 처가 관계) 시댁과의 관계, 처가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용돈을 드리나요? 자주 가나요? 육아에 도움을 받나요? 그럼 관계는 방문 빈도와 금액 측면에서 이쯤에서 조율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을 말해 보세요.

 (취미 생활) 서로의 취미 생활이 이러하군요. 남자의 취미 생활은 어느 정도 선(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여자의 취미 생활은 어느 정도 선에서 적당하겠습니다. 취미생활이 따로 없다면, 일주일에 0시간씩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기타) 이외에 꼭 서로가 지켜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합시다. 담배나 술, 주식이나 코인, 게임, 동성이나 이성 친구 관계 등은 예민한 부분으로 서로의 취향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게 되면 큰 갈등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제 결정된 사항을 꼭 지키며 결혼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지키지 않을 시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으며, 이혼 시 재산 분할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합의된 내용에 서명하겠습니다.”


 이렇게 가름을 해주는 전문적인 상담사 말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말이다. 아니 어제저녁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주말부부이며, 애가 셋이다 보니, 주중에 내가 혼자서 애들을 모두 케어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 몇 년의 갈등 끝에, 주말이면 신랑이 육아와 살림을 모두 전담하기로 하면서 부부싸움이 끝나는 듯했다.)

  

 어제는 신랑이 금요일이라서 퇴근하고 일주일 만에 집에 왔다. 이제 아이들을 볼 차례다. 신랑은 "아빠랑 치킨 먹으러 가자." 하고는 큰 애와 막내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고 술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치킨을 시켜주고 자기는 실컷 술을 마시고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 돌아왔다. '아니 주말에 애들 본다고 하는 사람이 술집에 애들을 데리고 가서, 애들 피곤하고 졸린데 밤 12시까지  있다가 온다는 게 말이 돼?'라고 한소리 하려다가 꿀꺽 삼켰다. 정말 짜증이 났지만 참았다.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는 아이들 수영과 인라인 수업이 있었다. 나는 주말이면 자유 부인이기에 일찍이 운동을 나가면서 내 차 트렁크에 있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우리 집 문 앞에 놓아두고 나갔다. 점심때 즈음 돌아오니 문 앞에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내가 두고 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이들이 안방에서 티비를 보면서 놀고 있었다. "아빠는? 너네 인라인 수업 안 갔어?" 하고 물어보니 "어? 아빠 어디 가서 아직 안 왔는데?" 한다. 속 터진다. 전화를 해서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내 채근에 벌써 화가 난 목소리다. "아, 글쎄. 내가 애들 다 볼 테니까 지금 *층(시댁이 같은 동 *층에 산다.)으로 보내. 오후에 내가 애들 다 볼 테니까 *층으로 보내라고." 누가 방귀를 뀌고 성을 내는가.


 애들을 *층으로 올려 보내고, 화를 가라앉혔다. 그래. 오후에는 애들을 잘 보겠지. 자유부인인 나는 오후에 탁구장엘 갔다. 아니 거기서 우리 집 아이들 둘이 뛰어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는 한쪽에서 아빠의 휴대폰을 하고 있다. 부아가 치밀었다. '이놈이 애들 본다더니 탁구 치러 와서 애들을 저리 방치해 놓고 있네.' 이 사람에게 애들을 돌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싶다. 탁구장에서 애들을 데리고 나왔다. "어디 갈까?" 하고 애들에게 물어보니, 키즈카페를 가고 싶다고 해서 2시간 정도 키즈카페를 가서 놀게 하고,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이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구경하고 빌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이 다 되었다.


  신랑은 탁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저녁은 시아버님이 치킨 시켜서 보내주신다고 했으니까, 애들 치킨 먹여요."라는 말을 끝내자마자, "오늘 우리 팀이 이겨서 회식하기로 했는데, 자기도 같이 갈래?" 한다. 이런 병맛을 봤나. 애들이나 보라고. 주말부부면 주말 부부답게, 주중에 실컷 저녁마다 약속 잡고 술 마시고 돌아다녔으면 주말에는 애들을 돌봐야지 뭐 하는 거냐고.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육성으로 튀어나올 뻔하는 것을 한숨으로 겨우 막았다. 머리끝까지 뭔가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오늘 애들 안 봤잖아요. 주말밖에 애들 볼 시간 없는데, 그렇게 술 마시러 나가고 탁구 치러 가고 하면 애들은 언제 봐요."라고 겨우 참고 참으며 점잖게 말을 했다. 물론 그 냉랭한 분위기와 나의 한숨과 깊게 깔린 목소리와 말의 내용은 결코 점잖지 않았지만 나도 참느라고 애를 쓴 것이 그것이었다. 신랑은 나름대로 자기도 화나는 것이 있는지 "그러니까 탁구장에서 애들을 뭐하러 데려가. 그냥 두면 내가 본다고. 내가 볼 건데 왜 데리고 가서 그래. 어제부터 나 계속 애들 봤잖아. 내가 못 한 것이 뭐가 있는데." 한다. 이 말을 하면서, 저녁 약속에 나가려고 향수 냄새가 가득 나는 로션을 얼굴에 치덕치덕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바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역겨워서 얼굴을 마주하기가 싫었다.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방귀라고 하는 거야? 이 병맛. 니가 어제부터 애를 봤다고?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어 버릴까 하다가, 애들이 들을까 싶어서 겨우 겨우 참고는 "와... 진짜 답답하다.. 진짜 답답하다."하고 말았다.


 신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가서 다 맡겨 놓고는 저녁 약속 자리엘 갔다. 또 술을 먹고 싶었겠지. 술이 부르니까 나간 거지.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정말 모든 것을 다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겨우 한숨을 백번 정도 쉬면서 참았다. 신랑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7층 가자. 얘들아." 하는 소리를 듣고, 답답함에 울화가 치밀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이 떠 있는 모니터 화면을 볼뿐이었다. 신랑은 양심에 털이라도 있는지,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고 시댁에서 막내를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아이들을 재우러 안방에 들어갔다. 나는 아직도 답답하고, 신랑이 꼴도 보기 싫다.


 이건 어떻게 중재를 해야 할까? 00 씨, 이렇게 말하는 건 00 씨의 잘못이니 이렇게 고치세요. **씨도 이렇게 한 건 잘못이네요. 서로 고쳐야 할 부분은 바로 이겁니다. 오은영 박사님처럼 분명하게 말해줄 사람 없나. 서로 답답해서 못 사는 이 부부의 고민, 들어주실 분 없습니까.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연애프로그램이나 결혼생활 프로그램의 대화를 분석해주는 분의 영상을 보았다. 우리 부부 영상도 보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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