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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0. 2022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 결혼 전에는 왜 몰랐을까?

 알고도 눈감고 결혼한 것일까? 이토록 치열하게 싸우게 될 줄 몰랐었지.

 언젠가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결혼을 앞두고 조언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도 결혼을 하지 않았었기에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들었다며 얘기를 꺼냈었다.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연애 때 사소하게 싸우던 것이 결혼하고 나면 목숨 걸고 싸우는 일이 된대. 그러니까 혹시 지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결혼 후에는 어떨지 잘 생각해 봐.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상이 된다면 결혼을 고민해 봐야지. 우리 언니는 형부가 게임하는 걸로 종종 싸웠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완전 맨날 게임 때문에 싸운대. 완전 짜증 난대."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무슨 일로 싸우는지, 무엇이 제일 마음에 걸리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신랑의 직업이 제일 큰 고민이었다. 내가 주변에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을 전할 때면 "어떤 사람이야? 뭐하는 사람인데?"하고 물었고, "사립학교 행정실 직원이야."라고 답하면 그중 절반은 "응. 축하해. 잘 됐다."라고 했지만, 절반은 "행정실장 아니고? 직원이야?", "사립학교는 공무원도 아닌데... 좀 네가 아깝다..."는 반응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엄마가 "그래도 적어도 교사는 되어야지. 행정실 직원이 뭐냐. 아이고. 네가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구나." 였었다.


 사실 처음 소개팅을 받을 때에는 고등학교 행정실 직원이면 당연히 공무원인 줄 알았다. '공무원 둘이서 살아가면 초반에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부족하지는 않게 살 수 있겠지.' 싶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사립학교 행정실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지만 신랑은 당시에 "사립학교도 공무원이랑 똑같아. 준공무원이라서 공무원 보수체계 그대로 보수를 받으니까. 그리고 일반 회사처럼 잘릴 위험도 없어. 여기도 공무원이랑 똑같아."라고 나를 설득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우리 부모님을 설득할 때에 앵무새처럼 옮겨 이야기했다. "엄마, 사립학교 행정실 직원도 공무원이랑 똑같아. 공무원 보수 그대로 받고, 회사처럼 잘릴 위험도 없어.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 돼. 우리 먹고사는 건 걱정 없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 사립학교 교직원이라는 것이 제일 걱정이긴 했었다. 내가 '사립학교 교직원'이라는 직업의 연봉, 직급, 근무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로 검색을 해보기는 했으나 정확히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정확히 쓰여있다 해도, 그 정보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나를 아주 아끼던 교무 선생님은 방과 후에 나를 따로 불러내어 진지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다. "김 선생, 내가 진짜 김 선생을 딸같이 너무 아껴서 하는 말인데. 이건 정말 이번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봐. 내 딸 같으면 나는 이 결혼 안 시킬 것 같아. 김 선생이 너무 아까워. 사립학교 행정실 직원은 말이야. 공무원이 아니야. 업무도 정말 힘들어. 특히 그 고등학교는 힘들어서 여럿 그만두기로 유명해. 사립학교는 시험 봐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야. 면접으로 들어가는데 알음알음 다 인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는 건 그곳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라는 말이야. 그리고 교사가 행정실 쪽이랑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어. 좀 아깝네. 다시 잘 생각해 봐." 사실 이것보다 더 적나라한 말들을 많이 해주셨지만 직업에 대한 편견도 담겨있었던 터라 솔직하게 다 적지 못하겠다. 여하튼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충격이었으나,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결혼 준비를 이어갔다. 누군가는 "샘, 그 정도면 괜찮아요. 교사들 중에 그 정도도 안 되는 직업이랑 결혼하는 사람도 엄청 많아요. 그냥 그 정도면 만족하고 결혼해요. 여기는 시골이라 남자가 별로 없잖아요."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분이 나에게 해줬던 이 말을 기억하기는 할까? 나는 그 당시에 이 말이 제일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제일 걸리는 것은 신랑의 직업이었지만, 나는 신랑의 천사 같은 마음씨와 고운 심성으로 그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부부가 똑같은 조건과 상황에서 결혼할 수 없다면
내가 밀리지 않는 결혼을 하고 싶어.

 내가 갑이고 싶었다. 나보다 나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서 굽실굽실 거리며 집안일을 하고, 내 뜻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고, 나는 늘 내 삶을 개척해왔던 커리어가 있는 여자니까. 그리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억눌린 채로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았던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으니까.  



  정말 안타깝게도, 결혼 2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신랑은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가 돌이 되기도 전이었다. 잘릴 위험이 없다던  직장에서, 정확히는 스스로 걸어 나왔다. 직장이 너무 고되다고 했다. 신랑은 과로사로 죽을지도 몰라 보험을  넣어두었다고 했고, 전임자가 남기고  실수 때문에 재무감사를 받게 되면 교도소에 갈지도 모른다고 벌벌 떨며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그렇게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만두지 말라는 말을   있겠는가.


 결혼 후에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 그땐 몰랐던 걸까? 설마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던 거다. 운명의 장난처럼,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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