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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0. 2022

 신랑의 급여 명세서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날

나 사기결혼당한 거니?

 사실 처음으로 신랑의 직장 문제, 정확히는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이 터진 것은 결혼하고 첫 월급날이었다. 우리는 둘 다 교육계통에 있으니, 월급날은 매달 17일이다. 3월 24일 결혼식을 하고, 4월 17일 나는 신랑에게 급여명세서를 뽑아달라고 했다. 우린 서로의 급여 명세서를 보면서 미래를 계획해보자고 식탁에 앉았었다. 그날 따라 신랑은 뭔가 꾸물꾸물하며 자신이 없는 듯 급여 명세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세금이며, 기여금이며, 사학 연금까지 공제된 금액이 꽤 있으니 자기 월급은 여기 찍힌 금액보다 많다고 했다. 또 설 명절 보너스며 성과상여금도 있다고 했다. 그건 나도 떼거나 나오는 거고, 우선 기본적으로 매달 받는 금액을 확인해 보자고.



그 당시 급여명세표는 없네요. 그 후에 뽑아두었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180만 원.

 34살 남자의 4월 급여였다. 신랑은 대학 때부터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가 30살에 퇴직을 하고, 2년 간 공부를 하다가, 2년 전에 현재의 고등학교 행정실에 들어갔다고 했었다. 직업군인 시절에 근무한 호봉이 인정되었음에도 신랑의 급여는 너무 적었다. 나는 사실 200만 원은 넘을 줄 알았다. 나이가 34살인데 29살인 나보다 월급이 적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 초봉이 188만 원이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결혼 전에 미리 급여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공무원이니까 괜찮아(사실 공무원도 아니잖아.ㅜ)”라고 간과했던 나의 실수였다. 그저 공무원 정도의 월급이라면, 착한 마음씨를 높이 보고 맘 편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의외의 장벽인 걸? 신랑이 내 앞에서 비굴하게 자신감 없어 보이는 태도는 보이자, 내가 피해자가 된 느낌에 휩싸였다. 신랑은 자기 월급보다 50만 원은 많은 나의 급여를 보고 안도를 하는 듯하면서도, 처음에는 미안해하다가 점점 뻔뻔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곧 8급으로 승진하면…”, “아직은 내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 더 있으면 행정실 급여가 교사 급여보다 더 빨리 오르니까…”, “별 차이도 안 나잖아”, “호봉은 내가 더 높으니까 성과급이랑 수당까지 다 합하면 내가 더 연봉은 높지…”. (교사는 초임이 9호봉부터 시작인지라 신랑이 나보다 호봉이 높지 않았음에도 궁지에 몰리자 논리적이지 않은 변명을 했었다.) 마음씨는 착하고 순하나 자존심을 굽히기는 싫고 논리적이지 못한 신랑은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해서 나를 더욱 열받게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200도 안 되는 거잖아. 지금! 월급이!”


 나는 침대로 들어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었다. 결혼 1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처음으로 결혼을 후회했다. 걱정하던 부분이 벌써 이렇게 크게 닥치다니. 사실 이 월급 명세서를 결혼 전에 보았다고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결혼 후에 보니 속은 기분이 들어서 더 화가 난 것이다. 신랑이 속인 것 같고, 내가 속임을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차라리 결혼 전에 급여 명세서를 보고, 싸우거나 섭섭해하고, 어느 정도 대안이나 결혼 후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결혼을 했더라면 이렇게 울분이 쏟아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또 신랑이 이렇게 어쩔 거냐는 듯 뻔뻔하게 나오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눈물을 오랫동안 쏟아낸 나는 그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미 결혼을 해버린 것을 되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급여 명세서를 떼어 오면서, 마음 졸였을 신랑을 생각하면 조금 짠한 마음도 들었다.


 정해진 공무원 월급, 어쩌겠냐. 그냥 절약하면서 살아야지. 마음씨 좋다고 내가 결혼을 선택했을 때 경제적인 여유는 포기했었잖아. 물론 이렇게까지 궁핍할 줄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급여가 오르면서 괜찮아지겠지. 신랑을 닦달한다고 더 벌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 편하게 인정하고 아끼면서 살아야지.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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