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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1. 2022

사랑했지. 당연히. 근데 늘 좋지만은 않더라고.

사랑하는데 왜 짜증이 나는 걸까? 내가 속이 좁은가?

 신랑의 급여 명세서를 보고 많은 심리적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 신랑을 참 많이 사랑하고 연민했었다. 


 신랑은 키가 작고 아담한 나를 귀여워라 했었고, 늘 몸이 마주할 수 있는 좁은 곳에서는 내 팔뚝이나 볼을 살짝 꼬집는다던지, 소파에 누워있는 내 발가락을 조몰락거린다던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먼저 잠들어 있는 내 발 밑으로 와서 “나 사랑해 줘. 자기야. 나 사랑받고 싶어.”라고 말하며 사랑을 표현했었다. 한 침대에서 잘 때면, 꼭 나와 몸이 닿도록 내 발에 자기 발을 댄다던지, 내 팔에 자기 팔을 갖다 대었다. 내가 자는데 신경 쓰인다고 몸을 떼어 내면 어느새 잠결에 신랑의 몸이 나와 닿아있는 것이 느껴졌고, 신랑이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침에 먼저 출근을 하다가도 돌아와 차에 있던 우산을 현관 앞에 세워놓고 가기도 했고, 내가 임신을 해서 둘이 같이 침대를 쓰기 불편하다고 소파에 와서 잘 때면 새벽에 내가 침대에서 나간 것을 알고 소파 밑으로 와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강아지 같아서 신랑이 귀여웠다. 특별한 이벤트가 가득한 신혼 생활은 아니지만 신랑의 고운 마음씨와 부드러운 말, 나를 귀여워했던 행동들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꼈고, 꼭 그런 일이 하루에 한두 번은 있어서, 나는 매일 신랑과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남들도 그런 우리 사이를 다정하게 보았던지라 동료 중에 한 명은 “결혼하면 꼭 선생님 부부만큼만 잘 살고 싶네요.” 했었다. 한 달에 한 번쯤 카드값을 메우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시기가 아니면, 우리는 서로에게 참 다정했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다 종종 사소하게 내 마음에 불씨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신랑을 향해 짜증이 나는지 원인을 인지하지 못했다. 임신을 해서 예민한 건가? 임신이 무기인 것처럼 짜증을 내고 있잖아? 나는 여자치고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편인데, 이렇게 호르몬의 영향으로 신랑을 트집 잡고 짜증이 폭발하는 건 어쩔 수 없군. 내가 지금 왜 짜증을 내고 있는 거지? 마음씨가 못 됐네. 여자라는 약자 프레임으로 남자를 압박하는 건가? 스스로 짜증을 내면서도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감정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고, 정확히 왜 짜증이 나는 줄 몰랐다. 그냥 막연히 신랑 때문인 것 같았다.


 종종 사소하게 마음에 불씨가 일어난 사건들은 이러했다. 


 에피소드 1. 임신 6개월째, 어느새 나는 배가 임산부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많이 나왔다. 저녁밥으로 뭘 해 먹을까 생각을 하다가 신랑이 좋아하는 술안주로 순대볶음을 해주어야겠다 싶어 퇴근길에 집 앞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왔다. 신랑이 오려면 아직 30분이 남았구나. 순대볶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랑과 맛있게 먹을 생각에 분주하지만 행복하다. 아직 요리가 완성되기 전, 요리가 한창인 때에 신랑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랑은 나에게 무슨 요리를 하냐고 물어보고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본다. 불 앞에서 나는 땀이 나고, 쌓여있는 재료들이 많아 보이기 시작하며, 갑자기 짜증이 났다. 


 에피소드 2. 토요일이면 항상 쉬는 나와는 달리, 신랑은 주말에도 곧잘 출근을 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주말에도 행사 준비나 공사 감독, 이사장의 개인적인 행사를 위한 인력으로 착출 되어 출근을 해야 했다. "이번 주에는 이사장님이 오셔. 아마 오늘 퇴근은 늦을 거야. 학교에서 가든파티를 한대. 고기도 나르고 술도 날라야지.", "다음 주에 운영위원회 회의 있어서 준비 좀 하고 올게.", "공사가 있어. 00 샘이 바쁘다고 해서, 내가 가서 보기로 했어." 혼자 주말을 보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준공무원이라고 했지만, 공무원이 아닌 것을 이런 데서 알 수 있다. 집에 돌아온 신랑은 늘 푸념을 했다. "이사장이 아주 나를 개같이 알아. 내가 무슨 지 하인인 줄 아나. 아, 짜증 나.", "오늘 서울 갔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회의 끝나고 실장이랑 이사장이 자기들은 따로 뷔페를 가고, 나더러 혼자 나가서 짜장면이나 먹으라고 카드를 주는 거 있지. 어휴.", "오늘 교장이 나더러 뭐라고 한 줄 알아? 결혼하고 왜 그 모양으로 일을 하냐고. 그럼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해? 왜 결혼한 걸로 트집을 잡아." 그런 일은 끝도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퇴근 후면 학교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를 토로하자 나는 공무원이라면 있을 수도 없는 갑질이 아무렇지 않게 폭력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립학교에 대해 신물이 나고 있었다. 더불어 그런 곳에 다니고 있는 신랑에게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에피소드 3. 임신 9개월째, 이제 배가 많이 나와서 운전석에 앉으면 자동차 핸들에 배가 닿을 듯 말 듯했다. 일요일 저녁에 시댁에서 저녁을 먹으며 신랑이 반주를 했다. 그리하여, 1시간가량 떨어진 우리 집으로 갈 때는 내가 운전을 했었다. 시댁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에 높은 방지턱이 있었고, 신랑이 먼저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심해. 여기 방지턱 높아.", "응" 속도를 줄인다고 줄여서 10킬로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앞바퀴가 방지턱을 넘자 차 밑바닥에서 끄으으으윽 방지턱에 긁히는 소리가 난다. 신랑이 짜증이 난 듯, "아이씨"라고 짜증을 뱉었다. 뭐지? 이 반응은? "속도를 줄였는데 그렇네. 그렇다고 왜 그렇게 화를 내?" 나도 짜증이 났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1시간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에피소드 4. 둘이 같이 쉬는 주말에, 우리는 태교 여행 겸 구절초 축제에 가자고 했다. 간단히 외출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집을 나서려는데 신랑이 "우리 둘이 가기 심심하니까 00 이도 같이 가자고 할까?" 한다. 00 이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신랑의 조카인데,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라 내가 몇 번인가 예의 없음에 불편한 내색을 한 적이 있다. 신랑의 제안을 듣자마자, 나는 갑자기 태교여행이고 뭐고 짜증이 나서 외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 오늘 피곤한데, 00이랑 둘이 갔다 와.", "자기야. 왜 그래. 갑자기?", "그냥 피곤하네. 그냥. 그래."


 이것 말고도 댈 수 있는 에피소드는 매우 많다. 그만큼 우리는 사소한 부분에서 아주 난해하게, 그리고 미묘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그 중 몇 번은 혼자서 이불을 적시며 울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일 년에 한 번도 울까 말까한 나였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서 억울한 일 아니면 도통 울지 않았다. 6학년을 졸업시키며 옆 반 선생님이 엉엉 울어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고 웃음이 났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도 슬프다고 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울면서 생각했었다. '임신때문에 호르몬이 난리구만. 내가 왜 이리 짜증이 많아졌지? 배가 자꾸 나오는데 이건 언제까지 이렇게 불러오는거야. 벗어날 수도 없게 어쩜 이렇게 갑갑하게 붙어 있는 거지? 24시간을 몇 달씩이나 벗어낼 수도 없고, 편히 쉴 수도 없고, 누워도 불편하고 앉아도 불편해. 아무리 호르몬 때문이라지만, 나는 왜 마음이 곱지 않은거지? 이 거지같은 놈을 만나서 내가 이 고생이지. 돈이라도 잘 벌어오면 참겠는데 돈은 내가 더 많이 벌면서 왜 이러고 사냐.' 내 탓도 했다가, 신랑 탓도 했다가 뒤죽박죽 생각하며 울었다. 


 지금 되돌려 생각을 해보자면 조곤조곤 마음의 불편을 서로 이야기했어야 했다. 마음이 불편할 때, 그 이유가 뭔지 말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그저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침묵하거나 때로는 분노를 담은 말을 쏟아내는 것 밖에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갈등이 끝나고 나면 마음이 불편했던 원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서로에게 뱉었던 차가운 말만 불편한 감정으로 남아 상처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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