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돌이 되기도 전이었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잘 다니고 있던 신랑이 직장을 그만둔 것은 큰 아이가 돌잔치를 하기도 전이었다. 결혼한 지 2년이 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저녁이면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나고, 직장 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 늘어나더니,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대로 계속 이 직장에 다니다 보면 제 명에 죽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보험을 들어두었으니 혹시 자기가 스트레스로 죽거든 아이와 같이 그 돈으로 살라고도 했다.
신랑이 퇴직을 결심한 직접적인 원인은 장기수선충당금 때문이었다. 전임자가 기숙사의 장기수선충당금을 오용했고,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은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조만간 재무감사에 걸리면 최악의 경우 징역을 가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벌벌 떨었다. 아마 이건 본인의 생각이기보다 선임이 조언을 해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늘 이직을 꿈꾸어서 별명이 '이직 00'이던, 얼마 전에는 이직할 만한 곳을 찾다가 어느 학교의 버스운전기사 면접을 보고 왔다던 00 선배가 한 말인 것 같았다. 신랑은 늘 자기보다 몇 년 먼저 이곳 행정실에 들어온 00 선배에게 많이 의지했었고, 그 선배가 늘 이직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본인도 이직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 합리적인 의심으로, 나는 한동안 그 선배를 마음 속으로 미워했었다.
나는 그렇게 힘들어하는 신랑에게 계속 직장에 다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만둬. 내가 당분간 벌면 되지. 차라리 이번 기회에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 봐서 공무원이 되면 더 좋겠다. 갑질 당할 일도 없고. 토요일에 출근 안 해도 되고. 우리 학교 행정실만 봐도 얼마나 좋은데. 업무도 자기보다 훨씬 적어. 자기는 이미 실무를 했던 사람이라서 시험도 쉽게 볼 수 있을 거야." 진심으로 이 위기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혼을 한 후, 나도 신랑이 공무원이 아닌 것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으니까.
신랑이 직장을 그만둔 후, 시댁이며 친정에 이 사실을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댁에는 첫째 아이를 봐주셔서 매달 100만 원씩 드렸던 것을 더 이상드릴 수 없게 되면서 '휴직을 했다'라고 거짓으로 말을 했다. 며느리가 아닌 자기 아들이 육아휴직을 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아들을 굉장히 신뢰하는 시댁에서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친정에는 거의 2년이 넘게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의 주변인들 누구에게도 알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내가 어쩌다가 한 번 친구를 만나 신랑이 직장 그만두었다는 것을 얘기했다고 말을 했던 때에는 깜짝 놀랄 만큼 펄쩍 뛰며 '왜 그런 말을 하고 다니냐.'라고 화를 냈다. 그 뒤로 나는 답답한 마음에 가까운 두어 명에게 고민과 힘겨움을 털어놓고도, 혹시 우리 신랑을 만나더라도 직장을 그만둔 사실을 절대 아는 척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를 했었다. 머지않아 신랑이 직장을 그만둔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제 아들에게는 차마 왜 그만뒀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나더러 "며느리야. 왜 우리 00 이가 직장을 그만두게 그대로 뒀냐. 말렸어야지. 안 말리고 뭐 했냐."라고 말씀을 해서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신랑은 교육행정직 시험을 준비했다. 2년 반이 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주말이고 연휴고 혼자서 아이를 돌보아야 했고, 둘째를 가졌고, 낳았다. 돈을 벌 사람이 필요해서 육아휴직은 하지 못하고 출산휴가 3개월 후 바로 복직을 했다. 그리고 둘째가 돌이 될 즈음에 셋째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