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랑은 착하다? 나는 착하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생각한 것일까?
신혼 초기부터 있었던 자그마한 갈등과 미묘하게 마음이 상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 착한 사람을 내가 변덕스럽게 꼬투리 잡아 괴롭힌다.'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사실 나도 사회생활에서나 친구관계에서 그리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성인이 된 이후로는 큰 갈등 없이 지냈다. 또 내가 속한 교사 집단은 나이의 적고 많음을 따지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분위기인지라 동료 관계에서도 상처를 깊이 주거나 받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상대를 굉장히 미워하고, 때로는 증오에 가깝게 밀어내었다가 다시 용서를 하거나 감정을 누르고 마주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참 괴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고, 나는 그런 사람에게 '임신 호르몬을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소하게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변덕을 부리고 때로는 말을 전혀 하지 않다가 때로는 타박하는 말을 마구 쏟아냈었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신랑 탓을 해보다가, 결국 내가 참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불행해졌다.
한 번은 그리 가깝지 않았던 남자 지인과 지나가듯 신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오늘 여기 나오려고 애도 보고, 목욕도 다 시키고, 밥도 먹이고 겨우 나왔네. 00 씨 신랑은 집안일 많이 해요? "
"우리 신랑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은 아닌데 시키면 하기는 해요. 애들 보라고 하면 티비나 보여주고, 라면 끓여줘서 별로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그냥 착하기는 해요."
"그럼 별로 착한 거 아닌데? 뭐가 착하다는 거예요?"
나는 많이 당황했었다. 우리 신랑이 진짜 착하기는 한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냥. 말을 착하게 해요. 내가 싫은 소리를 해도 잘 참아주고, 말로 상처 주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집안일도 제대로 안 하는데? 애들도 제대로 안 보는데? 그게 착한 건가?"
나의 답변을 듣고 나서도 상대가 끝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지나갔기 때문에 대답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답변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다가, 나는 과연 신랑의 어떤 부분을 착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짚어보게 되었다.
착하다는 것의 의미.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나는 신랑이 나의 말에 순종적으로 호응하는 것과 언제나 말을 곱게 하는 것을 착하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착하다는 단어에 대한 인식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받은 결핍이 큰 영향을 주었다. 가부장적이고 난폭하며 경제적 능력도 부족했던 아버지는 순종적이고 희생적이며 책임감이 강했던 어머니를 몹시도 괴롭혔다. 어떻게든 네 자식들을 먹여 살려보려고 늦은 밤까지 남의 집 농사일을 하고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어디 가서 화냥년 짓을 하고 돈을 벌어왔느냐."라고 밤새 폭력을 일삼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티비나 전화기, 가스레인지에 밥통까지도 마당에 내동댕이 쳐지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아버지의 울분에 찬 고함 소리로 가득 찼지만 누구 하나 남의 집 가정사에 불을 끄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빚쟁이가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빈번했다. 아버지는 뻐끔뻐끔 담배만 피워대고, 빚쟁이들은 어떻게든 갚아야 하지 않느냐고 없는 돈을 만들어서라도 당장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다가 우리네 다 쓰러져 가는 흙집과 작고 마른 네 명의 아이들을 동정하기도 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빚쟁이들이 소란을 떨다가 떠나고 나면 하나뿐인 방 안은 온통 담배 연기로 가득 차서 마치 불이 난 집 같았다. 그 시간까지 나는 이불속에 숨어 자는 척을 했고, 어른들의 언성이 높아질 때면 살인 같은 일이라도 날까 봐, 아버지가 감옥에라도 가게 될까 봐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버지가 술이라도 전혀 마시지 못하기에 망정이지, 술까지 마셨더라면 내가 어떻게 자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어머니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개팅을 나가면 상대를 보고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인가"였다. 짧은 찰나의 표정도 놓치지 않고 살피며 이 사람이 불쾌함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예민하게 보았다. 화를 낼만한 상황이 생길 때, 크게 한숨을 지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나 "아이씨."라고 내뱉는 사람, 강제로 내 손을 잡는 사람 모두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화를 낼만한 상황인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신랑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었다. 물론 그 외의 모든 일상적인 대화에서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고 말을 참 예쁘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크게 마음이 간 부분이었다. 나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착한 사람'이었다.
착하다는 것이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하고, 눈치껏 서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상대를 배려하여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러한 뜻까지 포함하여 신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착한 신랑을 궁지로 몰고 가는 나 자신을 괴롭게 바라보았고, 그런 갈등이 반복될수록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한 지인이 우리 집에 한동안 머물며 우리 부부를 살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방청소를 하고 있는 동안에 티비만 보고 누워있는 신랑을 보고 "전혀 착하지 않아.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말을 했다. 자기가 편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잘 이용한다고 했다. 나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중에는 신랑을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시선을 제공해 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리하자면,
우리 신랑은 착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