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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3. 2022

36살 신랑의 공무원 시험 도전기

어렵지. 늦은 나이에 어릴 때도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고, 퇴사한 신랑의 공무원 시험을 응원했다. 2014년 12월. 신랑의 나이는 36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꽤 많은 나이였다.

 

 신랑은 퇴직 후, 1달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선포했다. 고단하고 지쳤던 직장 생활, 불안했던 끝맺음, 그리고 그보다 더 불확실한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몹시 무거웠던 것이다. 그 시기, 신랑이 퇴직을 했지만 아직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고 오히려 여유롭게 신랑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주변에서 들었던 공무원 합격 수기를 들려주며 희망을 얹어주기도 하고, 쉴 때는 기분 좋게 쉬어야 한다며 내 마음속의 불안함을 감추고 든든한 지원군인 척 신랑 기분에 맞춰 술을 따라주기도 했다.   




 2015년 초, 신랑은 본격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했으나 처음부터 공부 매진한 것은 아니었다. 신랑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 편이 아니었기에 공부를 하는 요령이 없었다. 어떻게 쉽게 암기할 수 있는지, 인강은 몇 번이나 봐야 적당한지, 하루를 어떻게 나누어서 공부할지, 또 하루 중 얼마큼 공부를 해야 열심히 하는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도 없었다.


 처음   정도는 곁에서 지켜보기 힘들게 답답했다. 8 30분에 출근하는 나보다 늦게 일어났으며, 9시나 10 정도에 도서관에 가서 4 30분에 퇴근하는 나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쉬는 날이 많았다. 공부를 하려면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수영 레슨을 끊어서 매일 오후에 수영을 갔고, 수영코치와 친해져서 호형호제를 하며 술자리를 갖고 새벽에 들어오기도 했다. 덕분에 수영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코치가 나랑 친해져서 특별히  가르쳐준다고,  녀석이  괜찮은 놈이라 이번 주말에 같이 등산을 가기로 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술을 먹고 들어왔다. 술을 마신 다음  오전은 숙취로 늦잠을 잤고, 낮이  되어서야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서는 저녁이 되기 전에 속이 아프다고 들어왔다. 겨울이 되니 친구와 스키를 타러 갔다.  친구가 스키를 좋아한다면서   겨울에  번이나 그와 스키를 타러 갔다. 정말 곁에서 보기에 너무도 답답한 날들이었다. 수능도, 임용고시도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공부했던 나에게 신랑의 모습은 너무도 나태해 보였다.   속이 터지고 울분이 나면, 아홉 번은 혼자 일기에 쓰며 삭히고   표현했다. 자존심이 상해할까  답답함을  내지 않고 말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자기야, 건강관리도 좋지만 짧은 시간에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수영 매일 가는 것은 좀 시간이 많이 낭비잖아.", "요즘도 맨날 인강 보고 있어? 이제 6개월도 넘어가니까 인강 그만 보고, 책을 보면서 암기하고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인강으로 몇 번을 보면, 그걸 내가 이미 외운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나도 임용고시하면서 인강 많이 들어봤는데..."

 말이 길어지기 전에 신랑은 이미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내 스타일이 있어.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공부하니까. 다 자기 공부 방법이 있는 거야."


  신랑에게는 빈번한 지적이고, 날카로운 표현이었던가보다. 내가 몇 달을 참고 참다가 한 번 말했는데도 신랑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말없이 집을 나가거나 그만두라고 알아서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36살의 늦은 나이임에도, 한 아이의 아버지인데도 합격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면 화장실에 사자성어를 붙여놓고, 밥을 먹으면서도 영어 단어장을 보고, 아침이면 6시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서 밤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수능과 임용고시 기간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래서 신랑의 그 태평한 수험생활에도 애달픈 마음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신랑의 이런 모습을 아는데도, 시부모님은 신랑에게 전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셔서 나를 더욱 속 터지게 했다. 가령, 주말에 가끔 시댁에 같이 갈 때면 신랑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난다며 술 약속을 잡아 새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새벽 3시나 4시에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와서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시어머니가 해주신 해장국을 먹고 다시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을 잤다. 나는 서먹서먹한 시부모님과 함께 신랑이 없는 시댁에서 아이를 보다가 그것도 불편하면 유모차를 끌고 동네 놀이터를 전전했고, 밤이 늦어도 오지 않는 신랑을 원망하고, 나의 신세를 탓하다가, 아이를 재우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신랑이 술에 깨어 일어날 때까지 불편한 시댁살이를 하며 아이를 봐야 했다. 그럼에도 시댁에서는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지 웬 술이냐."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정말 의아한 것은 가끔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너, 00 이가 뭐 하고 있는지 아냐? 서울에 있다가 내려왔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 만나니 택배 일 하고 있다더라. 그게 얼마 버는지 아냐. 한 200이나 버는가 보더라. 입에 풀칠이나 하는지."하고 말하면, 신랑은 "아이고. 어렵겠네요. 그거 벌어가지고." 했다. 한 푼도 못 버는 백수가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가장을 이렇게 비하하다니!


 시아버지가 "그 친구는 결혼은 했냐?"하고 물어서 신랑이 "아뇨. 아직 못했어요. 직장도 괜찮고 인물도 좋은데, 좀 애가 내성적이라서 연애를 못하나 봐요."라고 하면, "쯧쯧, 나이가 이제 곧 마흔이구만 결혼도 못하고."하고 흉을 본다. 아니, 애가 딸린 백수 아들 앞에서 잘 살고 있는 총각 친구 흉이라니! 답답할 노릇이구만.


 시아버지가 "이번에 우리 집안에 000 씨가 국회의원에 나가는데, 잘 되면 사돈네 승진도 말해볼 수도 있지." 하면 신랑은 "그럼요. 그런 것은 말만 하면 해주겠죠."라고 한다. 여기서 사돈네는 우리 친언니를 말하는데, 언니가 8급 공무원으로 있으니 말을 해서 7급으로 승진하도록 해주겠다는 말이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백수 아들 취직이나 시켜달라고 부탁해야지, 시간 지나면 알아서 승진하는 공무원 언니는 왜 들먹거리냐는 말이야.


 시어머니는 이런 망언도 했었다. "우리 00 이가 나이가 40에 가까운데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애쓰냐. 그게 쉽겠냐. 젊은이들이 몇 년씩을 매달려서 공부를 해도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지." 나이가 많고, 애가 딸렸으니 정신 차려서 더 열심히 해야지, 나이가 많아서 공부가 어렵다는 게 이게 할 말입니까!




 참고 참다가 견디지 못하고 울분이 터져 나와버린 것은 수험생활 1년째가 되던 때였다. 나는 이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이제껏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장문의 카톡으로 작성했다. 몇 시간 동안 작성을 하다가 지우고, 다시 읽어보고 표현을 바꾸다기를 반복하고, 보낼까 말까 말로 하는 것이 나을까를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전송을 했다. 그건 신랑에게 상당한 상처와 충격을 줄만한 내용이었지만 나는 나름 선의였다. 고통스러운 충격을 줌으로써 더 이상 태만하지 말고, 정신 차려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잘 살아보자는 의도였다. 대강의 내용은 이러했다.


 <약속했던 2년 중에 1년이 지나갔네요. 지난 1년 동안의 수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물론 나의 개인적인 판단일 수 있으나, 나태하고 성실하지 않은 수험 생활 모습에 실망이 컸어요. 당신의 늦은 나이와 어린 딸, 그리고 아내를 위해 남은 기간은 열심히 공부해 주세요. 앞으로 1년의 시간 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살 수 없어요. 지금의 모습으로는 당신에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어떤 신뢰도, 희망도 가질 수 없어요. 나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때예요.>


 나는 정말 마음속에 담은 온갖 분노와 체증을 살살 녹여 순화하여 표현했다고 했지만 신랑은 이 문자를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속내는 몇 년 후에야 얘기했다. 한 달이 넘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이 쏙쏙 빠졌었다. 충격요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어서, 과연 신랑은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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