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할머니의 시계가 점점 느려진다. 마치 탄력을 잃은 고무줄처럼 시간은 하염없이 길게 느껴지는 듯하다. 몸에 밴 습관은 그대로인데 부정하고 싶어도 몸의 움직임이나 감각은 예전 같지 않다. 짠 음식을 자제해야 하는 나이임을 알면서도 혀의 감각이 무뎌지니 공연히 소금을 더 넣게 된다거나 여름이라 맛이 금방 상해버리는 음식들을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집안에 먹을 입은 점점 줄어드는데 늘상 많은 양의 음식만 해오던 손 베어버린 감각을 바꾸는 일도 맘처럼 되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이 정리해도 놓치는 부분이 늘어만 가고 그 사이 자꾸만 초파리가 꼬여 핀잔을 듣는 일도 잦아진다.
할머니를 보며 다시금 할머니가 된 나를 투명해 본다. 주변에 아끼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줄어만 간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 마냥 즐겁진 않을 것이다. 아들과 손녀가 빠르게 나누는 대화도 따라가기 어렵고 갑작스레 날아오는 질문에 마음과는 다르게 아둔하게 돌아가는 머리. 답답하다. 어쩌다 내뱉은 동문서답에 찌푸려지는 눈살들, 이어지는 정적이 멋쩍어 말을 줄이게 된다. 몸은 맘처럼 기민하게 움직여지지 않으니 짜증이 늘고 도리어 고집만 세지는 듯하다. 말을 듣지 않는 무릎 때문에 점점 좁아지는 생활 반경,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을까, 오래 산다는게 과연 즐거워 해야 할 일인지, 가끔은 애석하기도 할 것이다. 나갈 일이 줄어드니 나를 가꾸는 일에 소홀해지고 어쩌면 그래서 더 나 자신이 볼품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서글프기만 한 일일까. 어떻게 보면 몸의 허울을 제외하곤 다시 아기일 때로 돌아가는 듯하다. 그렇지만 반면 아기는 환영받으며 세상에 태어난다. 아기를 신경 써주는 부모님, 주변 어른들이 있다. 앞으로 세상이라는 무대에 올라 아기가 펼칠 미래가 기대되고 성장하며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아기들과 비교해 보자면 무대를 끝내고 내려와 초라해진 내 자신을 마주하는 일.
사람은 늘 현재 하지 못하는 일을 미래에 그린다. 고등학생 시절엔 대학교에 들어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나를 그리며 버킷리스트를 적어 내렸고 대학교 땐 사회인이 된 나를 상상하며 커리어를 준비했다. 혼자일 땐 누군가와 함께하는 나 자신을 그려보기도 하고 미혼일 땐 결혼한 나를, 회사와 집을 반복하며 틀에 박힌 일상을 살 땐 어딘진 모르겠지만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해변을 보며 한가로이 누워있는 나를 떠올리며 퍽퍽한 현실을 환기한다.
내가 할머니가 되는 일을 싫다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무대에서 내려왔다면 이제 관중의 호응에 부응하는 무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대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다가올 일, 오히려 나이 듦을 기대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게 지금 해야 하는 일 일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되면 하지 못할 일도 많겠지만 할머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중'이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이런 할머니라면 어떨까? 줄어든 잠시간에 새벽 산책을 하고 한적한 시간에 좋아하는 카페를 가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남는 시간에 빵 반죽을 만들어 놓고 작은 텃밭에 물을 준다. 오늘 아침에 산책하는 길 보았던 예쁜 꽃들이나 좋았던 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일기에 하루를 남겨 놓는다. 종종 블로그도 쓰고(그때까지 있다면), 몇십 년 전 내가 쓴 글을 돌아보며 피식 웃어보기도 하고, 젊었을 땐 싫어했던 단체 모임도 나가보자. 꾸준히 배우지 못했던 악기도 배우러 다니고 소파에 누워 그날의 스토쿠도 풀며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좀 더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고 정성과 시간을 들여 준비한 음식과 선물로 종종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 반겨주고 싶다. 아, 반려동물도 하나 키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을 가꾸는 일에 소홀해지지 않고 느리게 흘러가는 삶 자체를 즐기는 할머니라면 어떨까? 꽤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되는 일을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