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보통 같았으면 명절 내내 친가, 외가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올해는 돌이킬 수 없어져버린 친가 관계 덕분에 기승전이 생략되고 (주변에도 물어보니 외가 쪽보단 친가가 사이가 틀어진 가족들이 많았다. 왜일까?) 외가도 특별히 올해는 어른들, (상대적으로) 애들은 올해 결혼 예정인 사촌언니네서 조카들끼리만 모이기로 했다. 이모만 여섯 명인 외가 스케일에 맞게 조카들 중 군인인 몇을 제외하고 모였는데도 둘러앉은 마루가 틈새 없이 가득 찰뿐더러 벽장 속의 캠핑의자까지 집안의 의자란 의자는 다 꺼내온 듯했다. 뽀짝 하던 우리들이 이렇게 장성해서 어른들 없이도 모이는 나이가 되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동갑이지만 관례적으론 아직 1살 많은 내 기억 속 사촌언니는 집들이라도 귀찮아 배달음식으로 장식할 줄 알았는데, 자그만 부엌에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의 요리를 준비해서 뜻밖이었다. 이전에 몇 번 집들이를 하면서 시행착오가 있었다며 쑥스러운 듯 얘기했지만 눈으로 보이기도, 입으로 느껴지는 맛도 기대 이상이었다. 거기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미트볼에 시간이 꽤나 걸리는 라자냐라니 다음 집들이 순서인 나는 높아질 조카들의 기대치에 살짝 긴장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뇌리에 박힌 것은 요리에서 언니의 '손맛'이 느껴진 부분이었다. 나 모르게 언제 이렇게 여러 가지 요리를 연습해 보며 자신의 손맛을 담은 요리들을 갈고닦았을 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신선한 자극을 받으면서도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웡카'의 원작자인 로얄드 달과 뗄 수 없는 일러스트레이터 퀀틴 블레이크 (일본으로 따지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 정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작가이다. 어딘가 엉성해 그리는데 5분 남짓도 걸리지 않았을 듯한 그림체는 어린아이도 충분히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여도 아무도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다. 이전에 투잡을 찾겠다며 동화 일러스트레이터강의를 수강했었던 적이 있다. 퀀틴 블레이크 작가님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나의 허무맹랑한 발언에 선생님께서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살짝 굳어진 얼굴로 '최소 20년은 족히 걸리실 걸요' 라며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왜 시작도 전부터 사기를 죽여 놓으시는 걸까 마음이 상했지만 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6개월을 배워도 내 그림체를 만들기는커녕 다른 작가들을 모방해서 그리는 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이 났기 때문이다. 작사, 작곡가는 본인만의 스타일이 가미된 노래, 가수들은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 그림 작가들은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그림체'로 독창성을 구분 짓는다. 요즘엔 계량화된 레시피가 나오고 있지만 요리 또한 만든 사람의 '손맛'은 그 손을 훔치지 않는 이상 따라가기 힘들 것이다.
문득 음식과 요리, 두 단어의 차이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음식은 포괄적으로 마시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이고, 요리는 여러 가지 재료를 알맞게 맞추어 적절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음식이 어떤 사람의 손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비율과 형태로 조합된 비로소 가지각색의 요리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할머니의 음식은 할머니 손으로만 계량이 가능하다. 투박하지만 계속 생각나는 음식, 레시피로 가둬놓을 수 없는, 할머니 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요리.
나이가 들수록 당연히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야 마다할 일은 없지만서도 그보단 요리를 먹고 난 후 그 요리에 담긴 추억을 음미하는 일이 좋아진다. 그 시간에 나누었던 대화들, 웃음들 주변을 감싼 온기들을 떠올리면 다음번에 가도 과연 그때 그 맛이 날지. 셰프가 바뀐 것일지는 몰라도 나의 경우 대부분 두 번째 방문에는 처음 그 느낌이 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더 생각나는 요리가 있다. 사촌언니의 요리도 그럴 것이고, 아플 때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남자친구가 인생 처음 만든 김치볶음밥, 대학교 때 요리를 잘하는지 몰랐던 동기가 집에 처음 나를 초대해 만들어줬던 삼겹살 쌈장 파스타, 고두밥을 짓고 쌀을 불려 며칠을 걸려 만든 할머니의 식혜, 시골 가마솥에 몇 번이고 국물을 우려 가며 푹 고아낸 엄마의 녹두 삼계탕. 일분일초의 효율성을 따지는 근래엔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빠르게 하는 일도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기 보단 익어가는 관계처럼 끓이면 끓일수록 우러나는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 누군가의 머릿 속에 계속 우러나는 그런 요리를 나도 언젠간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