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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Jan 28. 2024

21. 밖은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이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이렇게 따뜻한 겨울도 없었다지만 추위를 많이 타서인지 집안에서도 내복은 이미 한 겹의 피부가 된 지 오래, 외출할 때면 목도리, 모자까지 써줘야 집 문밖을 안심하고 한 걸음 나선다. 추울 땐 손도 꺼내기 싫어 주머니에 푹 꽂아 넣고 다니다 보면 무심결에 길에서 전단지를 돌리거나 달력을 나눠주시는 분들의 손길을 스치듯 지나가게 된다. 날씨는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이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손이 꺼내지지 않는다. 살짝 날씨가 따뜻해졌나 싶어 코트라도 걸치고 나가는 날엔 코트 안으로 찬 기운이 살얼음이 끼듯 얕게 온몸을 감싼다. 예전엔 아프면 학교 땡땡이라도 칠 수 있어 좋았지 어른이 되고 나선 아프면 서러움 밖엔 남지 않는다. 거기다 아플 때 원기옥을 모으려 아껴온 연차까지 쓰게 될 땐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 더 더 이 악물고 아프지 않으려는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직장인.


어렸을 때부터 장이 약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추운 날에도 유독 차가운 얼음을 좋아해 배탈이 많이 나던 나. 수족냉증이 있는 내 손으로 아무리 배를 붙잡아 봐도 장은 심사가 단단히 꼬인 듯 뒤틀려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마루에 깔린 카펫 위에 편히 발 뻗고 누워보라고 하신다. 어여쁜 손주를 어루만지듯 할머니의 손은 작은 배 구석구석을 혹여 놓친 곳은 없을지 세심히 둘러보며 무슨 일이 있었냐며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하나 둘 풀리는 듯 시작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 배에 머쓱해지지만 할머니는 다 나은 게 아니라며 내가 자는 동안 끓여 놓으신 무죽을 한 그릇 떠 주신다. 자작하게 참기름에 볶은 채 썬 무와 북어를 물로 푹 고아내 뽀얀 국물에 불려놓은 쌀을 넣고 수분을 가득 먹어 통통해질 때까지 눌어붙지 않게 중간중간 저어가며 끓여 낸다. 약간 심심하다면 스팸이나 장조림 한 조각을 얹어 간을 더해 먹는다. 한 그릇일 뿐인데도 몸 안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아 창문 밖 서린 김이 더 이상 매섭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할머니는 요즘 본인에게 불리할 게 없는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혹시 안 들렸다거나 이해도가 낮아진 걸까 걱정되어 소리를 크게 몇 번을 되묻기라도 하면 ‘나도 귓구멍 있어 다 들려!!’ 라거나 ‘다 알면서 왜 물어!’라는 반응을 들을 땐 머쓱해진다. 사실 그렇다. 할머니의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일상과 예측 가능한 행동들. 모두 사실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다. 매일 부대끼는 가족은 사실 잦은 근황 업데이트 보단 지나고 간 흔적이나 텔레파시로도 소통하는 게 가족의 평화 유지에 좋을 때가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오늘도 저녁약속이 끝나고 10시가 넘어 들어오는 나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시는 아이러니.


대학교 1학년 겨울, 1년 휴학기를 내고 드디어 이 바글바글한 집구석에서 벗어난다고 신이 나서 떠난 영국. 환상이 컸던 탓일지 그곳에서의 생활은 여행과 달랐다. 겨울이면 유독 긴 밤과 아침이면 으슥하게 내린 습기. 차가운 방바닥. 잡초처럼 버티며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썼는데도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독 영국에선 시시때때로 얕은 감기가 자주 걸렸다. 그럴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할머니의 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몸 보단 마음의 문제인 것 같아 약 보다 할머니의 죽 한 그릇 먹으면 씻은 듯 나을 것 같은데 돈이 아까워 1년 동안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편도행 티켓밖에 끊을 수 없었던 현실이 야속했다.


영국 한인 가정집에 하숙을 하면서 생활비 벌이로 돌보게 된 10살짜리 꼬마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만 보던 욕심쟁이처럼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돌보게 되기 전까지 삼대독자라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탓인지 혼자 몸을 씻는 법도, 신발끈을 묶는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이층 집 청소를 하러 낑낑 대며 청소기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여기저기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물건을 치우려고 할 때마다 이건 자기네 집 거라며 건들지 말라고 뺏어가거나, 저녁 늦게 엄마가 돌아오면 쪼르르 달려가 이런저런 일을 고자질했다. 하루종일 나보다 고작 10살 어린 꼬마 뒤치다꺼리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가도 나도 집에 든든한 가족이 있는데, 일순 고아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 행동이라고 이해해주려곤 했지만 왠지 먹먹해지는 마음을 매일 밤 눈물로 씻어 내렸다.


6개월쯤 지났을 무렵 하루는 그 꼬마가 독감에 걸려 무지 아팠다.  사실 처음에는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더니, 꼬시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한테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이불 안에서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 그래도 애는 애구나 웃음이 피식 나왔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꼬마가 아프니 조용한 집이 왠지 어색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라는 생각으로 죽을 끓여보기로 했다. 배탈 났을 땐 심심한 무죽이 좋다면 감기엔 김치 계란죽이 제격이다. 연결이 잘 되지도 않는 카카오톡 전화로 엄마한테 물어가며 멸치 국물을 우려 채로 걸러 내고, 맵지 않게 김치는 조금, 밥알이 통통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 마음을 담았다. 열로 앓은 탓에 기운이 한 꺼풀 꺾인 꼬마,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 군소리 없이 오물오물 움직이는 작은 입이 귀여웠다. 다 비운 그릇을 가져다주며 ‘고마워요’ 들릴 듯 말들 얘기하더니 어느샌가 방으로 가버리고 없었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꼬마가 저녁에 엄마한테 고자질하러 가는 시간도, 내가 꼬마에게 화가 나는 일도 사라졌다. 그곳에서 나는 2번의 스무 살을 보내고 돌아왔다.


빨리 봄이 오길 바래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겉바람은 차가워도 마주하는 얼굴에 조금씩 따뜻함이 느껴진다. 봄바람에 어떤 기운이 실려올지 마음이 들뜬다. 아무리 따뜻한 행동이라도 마음이 담겨있지 않을 때 행동의 주변에 공허한 한기만 가득 찰 뿐이다. 삶이 각박하고 힘들더라도 마음의 온기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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