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KTX요금을 보며 손을 덜덜 떨던 대학생의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턴 돈보단 시간의 부족을 느끼며 1분이라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선호하게 되었다. 정말 KTX 이외의 기차 시간표를 본적이 언제였던지 이젠 까마득한다. 근래엔 통 나이를 부지런히 세지 않아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내 나이를 되짚어 보다 문득 곧 내일로 young을 이용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추억의 내일로, 아직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청춘‘을 대표한다는 브랜딩에 세뇌된 것인지(요즘은 전 연령이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내일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지역을 정하고 막상 이동 비용을 계산해 보니 내일로 요금도 청춘을 대표한 다기엔 꽤나 값이 올라 그냥 좌석 기차표를 사는 게 더 저렴해 이번 여행은 내일로를 이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KTX 이외의 열차만 타는, 이른바 '초심 찾기'여행을 테마로 잡았다. 어느 순간부턴가 열차는 들뜨는 마음보단 이동수단에 가까워 타기만 하면 잠에 들곤 했다. 멍하니 지나가는 풍경을 내다보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최근엔 이렇게 오래 멍 때리고 있던 적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무궁화호가 확실히 천천히 달려서인지 가로로 긴 파노라마를 보는 것처럼 지나가는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논밭이라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점만 원하는 세상을 살다 보면 자주 여유를 갖고 해야 하는 일이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조바심이 나게 된다. 슬로 모션인 듯 내리는 눈이 오버랩된 창 사이로 저 멀리 느리지만 조금씩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차를 끓이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렇게 이번 글은 할머니의 TEA 시리즈를 쓰기로 결심했다.
한주 전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할머니와 아빠는 또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얼핏 들어보니 대략 예상이 가는 내용이다. (대부분 아빠 나이가 환갑이 넘었는데 아직도 할머니가 사사건건 다 챙긴다는 불만) 이런 반복되는 언쟁에 이젠 조금 거리를 두려 하는 편이다. 보통 곪을 대로 곪아버린 과거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 시간이기 때문에 제삼자가 듣고 있자기엔 진이 빠지고 말하는 사람도 그다지 해결책을 원하는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말들을 무심하게 가로질러 묵묵히 저녁 밥상을 차려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유유히 방에 들어와 이불속에서 귀는 언제 끝날지 상황을 파악하고 눈으론 핸드폰 화면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을 무렵 어느새 엄마가 들어와 중재를 시작한다. 여기서도 비슷한 레퍼토리다. 이제 나이가 드신 만큼 욕심이나 고집도 내려놓으셔야 한다, 3대가 같이 사는 일은 쉽지 않고 애들도 이제 컸으니 자기들 알아서 하게끔 두라고. 익숙한 듯 잠자코 듣고 있던 중 엄마의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우리도 나중에 치우려면 힘들고 삶이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이제 물건 쌓아 놓는 일 보단 하나씩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래층 할아버지도 아직 정정해 보이셨는데 근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는 중이라나 보다. 그 한마디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지만 정말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겐 어떤 느낌일지,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차마 물어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홀로 이불속에서 펑펑 울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또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커다란 양철 주전자를 꺼내 물을 가득 채우고 할머니만의 개량으로 보리, 옥수수 알을 촤르륵 쏟아 넣으신다. 가스 불을 끄는걸 자주 깜빡해 달아 놓은 안전장치를 끼익 틀어놓고 몸에 익은 할머니의 모닝루틴을 따라 껌껌한 마루의 소파에 앉아 아침 뉴스를 트신다. 엄마나 아빠는 요즘 물을 끓여 먹는 집이 어딨냐고 주전자도 무겁고 힘드니 그냥 정수기 물을 마시자고 하지만 보리차는 엄연히 우리 집의 시그니처이자 웰컴티이다. 가끔 할머니 욕심에 몸에 좋은 거라며 결명자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가 들어가 본연의 보리맛을 없애버리는 날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론 고소하고 삼삼한 맛의 보리차는 어느 간식에도 어울리는 매력이 있다.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켜는 맛이 있는 보리차. 어려서부터 보리차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지 정수기물은 이 '물'마시는 맛을 따라올 수 없다.
늦은 봄이 되면 엄마가 농수산물시장에서 오미자랑 매실을 잔뜩 사 온다. 깨끗이 씻어 20L 정도 되는 커다란 유리병에 한 겹 적당히 부어 넣고 그 위에 설탕을 한 겹 쌓기를 반복한다. 여기까지 하고 나서 이 유리병은 쥐도 새도 모르는 곳에 갇혀 몇 달을 지내고 나면 병에 꽉 찼던 오미자와 매실이 설탕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나이를 먹은 듯 쭈글쭈글 해져 부피가 반정도로 줄어든다. 그래도 이 정도 양이면 일 년 내내 먹고도 남는다. 진액을 국자로 퍼 몇 손가락으로 몇 번 찍어먹어 보면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달지만 계속 먹게 되는 맛. 단맛, 신맛, 떫은맛, 짠맛, 매운맛(?) 이렇게 다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오미자. 인생을 살면서 입맛이 떨어져 본 적은 없지만 무더운 여름날 내가 아끼는 컵에 얼음 두 개를 동동 띄워 마실 때면 정말 집나 갔던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상큼한 감칠맛이 혀를 톡 건드린다. 매실청은 사실 매실차보단 음식에 많이 쓰이지만 특히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엔 뜨끈한 매실차를 마시기도 한다.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쟁여놓는 다람쥐처럼 언제든 마음껏 타먹을 수 있는 청을 두 개나 쟁여놓고 것만큼 든든한 일도 없다.
점점 할머니께 어떤 말이든 최소 두 번은 설명해야 하는 일들이 더 잦아진다. 또 버퍼링이 걸린 할머니께 정말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 나서도 그새 까먹으시고 물어볼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미 할머니가 몇 번을 물어봐 지쳐있는 와중에 엄마, 아빠까지 또 물어볼 땐 엄한 짜증이 나는 일이 늘어 이번달부턴 스케줄표 칠판을 만들어 매주 각자의 일과를 적어두기로 했다. 처음에 보지 않던 할머니도 이제 차차 적응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변화가 슬프게 느껴지고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만의 방법으로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져 일을 하다가도 문득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같이 사는 동안은 한 사람, 한 사람 심기일전 작은 배려를 견고하게 쌓아나가는 것 만이 가족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두 절감하고 있는 것이리라. 가족의 평화. 이외에 별다른 행복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