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나, 할 수 있는 나

아무튼 다이어트

by 담백

운동을 하기 전엔 몰랐다. 이렇게 많은 욕구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또 내 삶에 이렇게 많은 ‘짬’이 숨어 있었는지. 5분, 10분의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모으기만 해도,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주 4~5일 정도, 땀이 날 만큼 몸을 움직이려 한다. 어떤 운동이든 괜찮다. 중요한 건 ‘했다’는 사실, 그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둔다. 여행 중엔 짧은 산책이나 러닝, 가벼운 스트레칭이 될 수도 있지만, 일상에선 되도록 헬스장을 찾아 한 시간쯤 집중해서 몸이 조금은 힘들다고 느낄 만큼 움직이려 한다.


출퇴근 시간도 나름의 운동시간으로 활용한다.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며 서 있거나, 손잡이를 잡은 팔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기도 한다. 지옥 같은 서울의 출퇴근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환기시키는 방법이다.

반면 회사에선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은 내 몸보다는 온전히 일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적당한 운동과 ‘조금 힘든’ 운동은 얼핏 보면 한 끗 차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걸 시작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천지차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다시 마음도 움직인다. 단순한 순환처럼 보이지만, 그 흐름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견디는 나를 만드는 일


나는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시작은 언제나 쉬운 편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상상은 화려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잠깐의 성과를 위해 오래 견디고 인내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터가 있는 상황에서,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짬을 내 무언가를 더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부족했고, 수많은 이유를 핑계 삼아 포기하기는 늘 쉬웠다. 이루고 싶은 건 많았지만, 나 역시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꿈만 꾸고 말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정체된 욕구는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가며, 때때로 나를 조용히 갉아먹곤 했다.


닿지 않을 것 같은 것들과 친해지는 법


농구공에 코를 세게 맞은 이후로는 자주 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잠시 농구를 배운 적이 있다. 농구공은 성인 기준으로 한 손으로 잡힐 듯 말 듯한 크기다. 물론 손이 크면 다루기 유리하겠지만, 손이 크지 않아도 농구공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손으로 100번, 1000번, 10000번—그저 수없이 튀겨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1년, 2년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튀어 오르는 농구공이 자석처럼 손에 감기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농구공과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혼연일체의 순간 말이다. 상대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멋진 경기를 할 수 있기까지—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우리는 수면 아래에서 묵묵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테니스는 좀 더 섬세한 운동이지만, 그 원리는 같다. 구력이 있거나 운동신경이 좋다면 더 빠르게 익힐 수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날아오는 공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는 것이다. 가장 적은 힘으로, 가장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을 때까지, 수백 번, 수천 번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과 마주해야 한다.



내일도 같은 양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만큼만 운동한다. 어떤 날은 하체, 어떤 날은 상체로 나누기보다는, 몸 전체를 고루 움직일 수 있는 운동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3년을 꾸준히 반복해왔다. 처음엔 단순히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했고, 그다음엔 최소한 ‘운동하는 삶’을 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 지금은 '내가 주도하는 하루'를 만들기 위한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몸 안에서 뭔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졌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살 빠졌네’, ‘건강해 보인다’는 피드백도 종종 들었다. 그런 긍정적인 말들이 이 생활을 계속하게 만드는 또 다른 동력이 되었다.


점점 남들의 시선보다 내게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가 진짜 원했던 것들, 내 안에 오래도록 자리했던 욕구들이 하나둘 모여 더 크고 명확한 형태로 떠올랐다. 내 안의 어떤 욕구들을, 어떻게 해소해 왔는지, 그 과정을 기록해두고 싶다.


1. 내 몸을 잘 관리하고 싶다는 욕구 – ‘얼굴에 살아온 흔적이 남듯이, 몸에도 생활이 깃든다.’


운동을 하면 알게 된다. 내 몸은 지금까지 내가 어떤 마인드로 생활하는지 숨기지 않는다는 것.

운동을 시작하기 전엔 늘 '피곤'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주 피곤하고 무기력했으며, 이유 없이 짜증도 났다. 그땐 그냥 내가 예민한 성격이거나, 일시적인 기분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사실 생활에 이끌려 가는 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흘러가는 저녁시간이 아까워 늦게까지 드라마를 보거나, 어떤 하루 대부분을 움직이지 않고 보냈다.
당연히 몸이 버티기 어려웠던 건데, 나는 그걸 기분 문제라고만 여겼던 거다. 운동을 하면서부터는 생활의 리듬을 조금씩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규칙을 만들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바로 눕지 않기, 자기전에 핸드폰은 멀리하기, 일어나자마자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기 전에 스트레칭하기 등, 아주 작은 시작이였다. 주 1회 정도는 땀이 날 정도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렇게 내가 정한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차 몸이 가벼워지니 감정도 덜 흔들렸다. 컨디션이 안정되니까 일상이 조금 꼬여도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몸을 관리한다는 건 단지 건강해진다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걸.
그건 내가 내 하루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하루들이 결국 어떤 나를 만들고 있는지를 조금 더 분명하게 느끼는 일이기도 했다.


2. 내 시간을 가치 있게 쓰고 싶다는 욕구 – ‘시간을 쓰는 방식이 곧 나의 삶이다’

운동을 하며 알게 됐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흩어져 있었던 거라는 걸. 하루 1시간의 운동을 위해 일정을 조정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걸 기준으로 하루 전체의 리듬을 설계하게 된다. 다음날 운동을 해야하니 과음하지 않고, 늦게 자지 않게된다. 그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냈던 시간들을 의식적으로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침 10분, 잠들기 전 15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쓴다. 단순히 SNS를 끄고 독서를 하거나, 그날의 생각을 짧게 메모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훨씬 덜 허무해진다. 무의미한 불안을 줄이고, 기록으로 내 시간을 복원하는 작업. 그것이야말로 시간을 ‘산다’는 감각을 되찾는 방법이었다.


3. 좋아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구 – ‘관계는 돌봄이다’

몸과 마음이 안정되면서, 관계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부담이었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연락을 미루기 일쑤였다. 몸을 관리하면서 관계도 돌아보게 됐다. 왜 그 만남이 부담이고 피곤했는지, 관계를 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스스로를 잘 돌보는 날이 늘어날수록, 타인과 나 사이에 적당한 여백을 늘려갔다. 예전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갔지만 생각보다 주변 관계는 더 건강해졌다.


4.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욕구 – ‘반복은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운동은 결과가 늦게 오는 일이었다. 처음엔 너무 미미해서 효과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덜 찼고, 아침이 좀 더 개운했다. 그 조그마한 체감이,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후로는 운동 외의 일에도 이 원리를 적용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결과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먼저 만든다. 루틴을 만들고, 작게라도 매일 한다. 그 반복을 통해 나는 내가 뭘 원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입증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는 걸 알게된다.


5. 머리를 계속 쓰고 싶다는 욕구 – ‘생각도 근육처럼 단련된다’

몸을 쓰는 날이 늘어날수록, 생각과 직관도 더 또렷해졌다. 반복하는 루틴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붙잡고 싶어졌다. 운동 후 짧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그게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되었다. 그 습관은 머리를 ‘사용’하게 했다. 요즘은 책을 읽을 때도, 유튜브를 볼 때도 ‘이걸 통해 내가 뭘 느꼈지?’를 한 줄로 써본다. 머리를 쓰겠다고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그런 작고 반복적인 질문이 사고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몸이 깨어나니 생각도 같이 깨어났다.


6. 새로운 재능을 찾고 싶은 욕구 – ‘호기심은 삶의 에너지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몸이 무너지는 게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내가 몰랐던 나’를 계속 찾아갔다. ‘이런 동작은 금방 익히네?’, ‘지구력은 부족하지만 유연성은 괜찮은데?’ 나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운동이라는 거울에 비춰지며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을 자연스레 다른 영역에도 가져가게됐다. 새로운 분야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볍게 시도해보기. 잘하지 않아도, 그걸 해보는 자신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연습. 그렇게 내 안의 가능성을 천천히, 조용히 꺼내보려고 한다. 이제는 안다. 내가 무언가를 계속하고 싶다는 이 마음은 사실은 멈추지 않고 ‘살고’ 싶다는 본능이라는 걸. 내 욕구를 선명하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지금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내가 나를 이끄는 삶을 사는 방법


나를 닦아내고 단련하는 일, 지금 내가 매일 하고 있는 루틴은 그런 의미에서 수련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수련이 헬스가 될 수도 있고, 명상이 될 수도 있고, 아무도 없는 아침에 혼자 오르는 천국의 계단일 수도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봐주거나 칭찬해주는 일도 아니다.


오직 나를 위해, 오직 내가 움직여야만 시작되는,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그게 20분이든 1시간이든, 시간의 길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가장 어려운 건 시작이고, 시작이라는 문턱을 넘기까지는 꽤나 많은 생각과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 처음엔 뭘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 하는 기분으로 반복한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감이 오고, 감이 오기 시작하면 나만의 리듬이 생긴다.


예전엔 이런 과정에 좋은 트레이너가 있었으면 좀 더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나를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자기 주도였다. 운동이든 공부든 시간이 좀 더 들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결국은 내가 나를 이끄는 수밖에 없고, 그게 익숙해질수록 조금씩 삶의 중심이 내 쪽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스스로 정한 목표량을 조정해가며 그 안에서 기꺼이 움직이고, 부딪치고, 달성하길 반복하고 있다.


작은 성취라도 쌓이면 기분이 다르고, 그 누적이 결국 나를 바꾸고, 내 하루를 바꾸고, 조금씩 삶의 방향까지 달라지게 한다. 나는 오늘도 수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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