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마음

마음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그런 날들

by 담백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쉴 새 없이 머릿속에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쌓여 "언젠가 치워야 하는데.." 생각하며 은근히 마음을 쓰이게 하는 것들도 생긴다. 그전에는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던 일들도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이젠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주변엔 그 전날에 뭘 했는지 기억을 못 하는 친구들도 많아지고, 급기야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 까맣게 잊는 친구들도, 며칠이 지나도 카톡 답을 하지 않는 이들이 쌓여가지만, 그들을 일일이 챙기기엔 나도 삶이 너무 바빠졌다. 연락이 없는 친구가 슬쩍 걱정되고 별일 없는 거냐고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가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마음 저편에 보내버리고 나면 어느새 "이제 봤네"라는 실없는 답변에 한숨이 놓이기도 한다. 각자 자기 인생 살기도 바쁜 세상이다.


바쁜 건 좋은 일이가. 내가 그리던 30대의 모습 그대로를 나는 만들어왔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 사이 아끼는 사람들의 안부는 놓치지 않으려 애써서 인지 크고 작은 행사에 적지 않은 인원이 시간을 내어 나를 축하해 주러 온 것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꼭 이렇게 마음 한가운데가 벙 뚫린 것 같은 공허함은 그리던 목표를 이루고 지금껏 달려오던 열정이 한 김 식을 때 찾아온다. 계속 미루는 편이 어찌 보면 식지 않는 마음가짐을 유지하기엔 좋을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그들과 모두 얼굴이나 이름을 모른 채 소통한다. 부업으로 스토어 오픈을 도와주면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사장들과 만나게 됐고 다행히도 그들 모두 대부분 상식 선의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몇몇 지인들로 시작해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까지 영어과외를 하며 온라인이지만 그들이 도움을 원하는 부분을 귀 기울여주기도 하고 때론 능력에 비해 과한 감사를 받아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점점 더 오프라인 만남의 마음장벽이 높아지기만 한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늘 먹는 바나나와 남편이 그 전날 타온 빵 반쪽을 먹는다. 약간의 저작운동으로 몸을 우선 깨우고 반쯤 뜬 눈으로 몇 번이고 몸에 익은 길을 따라 곧장 헬스장으로 향한다. 4-50분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매일 운동을 한다. 몇 년 해온 해와서인지 이젠 지겹지도 않고 머리에 전원을 켜기 위해 돈을 벌러 출근하듯 그저 할 뿐이다. 지옥철을 뚫고 출근을 해내면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견과류 1봉과 이렇게 먹으면 죽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던 내가 그렇게 됐다니 여전히 새삼스러울 뿐이다. 잠을 깨우기 위한 마지막 루틴으로 진한 커피 한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내내 같은 자세로 앉아 그날의 일을 처리하고 다시 회사를 나선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던 하루였지만 철저하게 나는 혼자였다. 좋은일에 너무 기뻐하지도, 아쉬운 일에 너무 힘빠져 하지도 않으며 내 감정을 아끼는 하루를 보낸다.


약간은 적적하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느낄 수 있는 온기보단 핑퐁을 하기 위한 미묘한 눈치 전 속에서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시간을 죽이기가 그렇게도 아깝게 느껴진다. 더욱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가 상처받은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더더욱 끔찍하다. 그런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풀어나가느니 차라리 얼굴 모를 사람들과 간결한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요구사항을 채워주는 시간이 더 알차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때론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태어난 지 시간이 꽤나 흘러서인지 사람냄새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 부작용이라고 할지, 그 어디도 기댈 곳을 찾지 않는 내가 유독 기대는 우리 가족과 남편. 남편이나 할머니와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유일한 내 안식처라고 여겨서인지 그 시간을 뺏는 회식이나 약속들이 생기면 약속을 한 날부터 약속이 우연찮게 취소되길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게 나라고, 두 다리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외계인이라 평생 적응하지 못할 문제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할까.


마음이 바빠질 땐 주변사람에 대한 생각부터 줄어들고 점점 내 마음을 살피지 못할 때쯤 서서히 고갈을 느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멜랑꼴리 한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이 들 때 나는 글을 써 얼굴을 모르는 이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바란다. 이 지구 위 나와 같은 이들도 무사히 오늘을 헤쳐 나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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