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매번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다면

by 담백

끝내지 못하는 사람


30년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무엇 하나 '끝'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시작하는 마음을 먹기까지 오래 걸리더라도 막상 한번 맡게 되는 일엔 군소리 없이 유종의미를 거둬내는 사람이 있노라면 나처럼 생각과 동시에 추진력을 발휘해 순식간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일을 키워버려 감당하기 버거워지는 시점부턴 점점 그 의지력이 어느 순간 흐물텅 해지는 사람이 있다. 처음과 다르게 많은 일들이 결국 있었는데 없었던 것처럼 수면 아래로 사라져 버린다. 아무도 끝까지 해내라고 윽박지른 적도 없고, 끝까지 하라 강요한 적도 없지만 20대 내내 왠지 내가 한 일이라며 내세울 사진 한 장 없는 내가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기 전에 그만둬 버렸기 때문)


대학생 시절, 학과 동기였던 남편의 행보는 나와 정반대를 그렸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종적은 누구나 '믿을만한 사람'의 초석을 다지는 듯 보여 내심 샘이 났다. '어떻게 너는 매번 하는 것마다 포기한 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거야?'라는 질문에 '끝낸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냥 하다 보니 끝이 난거지'.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여유에 왠지 나는 더 조바심이 났다.


끝내지 못한 일들


20대 중반까지 춤동아리, 자원봉사, 공모전 등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여했음에도 누구나 한 번쯤은 찍는 단체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꼭 '술'로 마무리되며 관계가 부지기수로 얽히고설키는 모임문화에 진절머리가 났고, 술까지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고, 중도에 그만두길 반복했다.

4명 이상 있는 자리에선 얼어버리는 성향에 이런저런 단체행사에 무조건 참여해야 했던 대학교 1학년이 가장 곤욕이었다. 선배들이 강압적으로 술을 먹인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MT가 무서워 생전 걸려보지도 않았던 장염 연기까지 해가며 동기들 중 유일하게 MT를 가지 않았던 나다. 그 이후로도 대학교의 모든 단체 생활이 가시 돋친 듯 불편하게 느껴졌고 학과공부를 포함한 학교생활이 버거워 몇 번이고 자퇴 고민을 반복하던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대학시절, 고등학생 때 막연히 그려왔던 힙합댄스동아리를 어렵사리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단기 기억력이 강한 친구들은 선배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춤을 한, 두 번만 몸에 익히고 나면 머릿속에 복사라도 한 듯 똑같이 따라 했다. 그에 반해 나는 남들보다 안무가 몸에 익혀지지 않아 수십 번이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다. 그렇게 몇 달 지나지 않아 평소에 운동의 '운'자도 떠올리지 않는 몸뚱이로 무리를 해서인지 바로 무릎이 탈이 났다. 주변 언니, 오빠들은 그 정돈 약과라며 춤을 추다 보면 직업병처럼 달고 살게 될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 머릿속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매일 이 통증을 달고 살면서 춤을 춰야 한다고..?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은 아닌걸..' 그렇게 점점 커져만 가는 머릿속의 먹구름을 걷지 못하고 한 번의 작은 공연을 뒤로 동아리를 나왔다.


회사에 입사하고선 성실하고 일머리가 있는 편이라 대부분의 상사들에게 예쁨을 받곤 했다. 그런데 왠지 1년쯤 지나고 일이 몸에 익어갈 때쯤 보이는 커리어의 한계성과 역피라미드 구조에 순풍이 불지 않는 업무흐름에 숨이 막혀왔다. 매번 몇 번이고 리마인드를 해야 움직이는 부장님들을 보며 10년 뒤에 내 모습이라고 꿈꾸고 싶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넘쳐나는 이직사유를 들며 남들은 귀찮아서라도 주저하던 이직을 5년 사이 5번이나 하게 됐다. 주변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이직을 자주 할 수 있냐며 신기해하면서도 옮긴 회사에서는 그래도 잘 적응해서 오래 다녀보라며 다독였다. 남들은 잘만 참고 다니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나만 끝내지 못했다는 허탈감에 '왜 나는 견뎌내지 못할까'라며 자책을 반복했다.


끝내지 않는 사람, 멀티 포텐셜 라이트(multipotentialite)


그런데 과연 '끝'이란 뭘까, 마라톤이라면 풀 코스를 완주한다면 그걸 끝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도 녹록지 않은데 10년 뒤, 하물며 5년 뒤는 생각해서 무얼 하나. 연애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한다면 그것이 관계의 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했다면, 인생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는 걸까?


아니다. 결혼을 하고도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 이걸 끝냈다고 한숨 쉬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고, 그것의 반복이다. 그전에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한들, 끝냈다고 한 들 우리는 새로운 상황들을 마주한다. 얼마 전 본 영화 F1에서 소니 헤이즈는 이전 경기 사고로 새 타이어를 비축한 덕분에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레드플래그로 타이어 교체를 해야 할 타이밍에 에이펙스 GP 팀만 새 소프트 타이어로 교체하고 나머지 팀들은 모두 중고 소프트 타이어를 쓰게 된다. 그전 경기를 실패했다고 '끝'내지 않았기에 있을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래도 매번 이게 내 최선이었는걸요'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다. 끝 마무리가 '해피 엔딩' 또는 '새드 엔딩'으로 깔끔하게 '완결'을 지어주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고 나면 깔끔한 결론이라고 생각에 개운하다. 그에 반해 '열린 결말'로 끝나는 영화들은 무언가 잔재가 남아 썩 개운치는 않다고 느껴지면서도 여운이 남아 그 끝은 어떘을까 계속 곱씹으며 상상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애매한 일들도 모두 그렇다. 작은 일을 해본 계기로 그 방면으론 쳐다도 보지 않게 될 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 지나 되돌아보니 색다른 매력을 찾아 '다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선택이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내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그마저도 선택의 여하에 달려있다. 끝내지 않는다고 생각보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렇다 하게 해낸 일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만 늘어놓으며 높아만지는 열등감에 아등바등 대던 20대를 지나 30대에 들어오자 어느새 내 가시들의 모서리가 뭉툭해져서 인지 크고 작은 자극에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했나 싶다. 이런저런 자극에도 예전처럼 뾰족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비로소 나 자신과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바라보는 능력을 얻게 됐다. 어떻게 보면 둔해졌다고 볼 수 있겠고, 수용력이 커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내 일'도 '남 일'처럼 조금은 시니컬하게 보는 능력은 내 삶의 불안과 걱정을 생각 이상으로 '별 것' 아니게 만들었다.


한 번에 한 개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다. 금방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내재돼있다. 다음 책을 읽한 권의 책 읽기를 끝내지 못한 사람이 다음 책을 어떻게 끝까지 읽냐는 생각이 함축돼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그 선입견이 독서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일 뿐이다. 나는 한 번에 4~5권의 책을 빌려 한 권이 질릴 때쯤 읽기를 그만두고 다시 다른 책을 읽는다. 그렇게 4권을 돌려가며 어떤 책은 끝까지 읽기도, 어떤 책은 읽다 말길 반복한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위해 일 년을 소비하느니 끝까지 읽지 않고 100권을 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읽었다고 그 책에서 얻어가는 것이 드라마틱하게 많아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한 가지 영감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그 책의 쓸모는 유의미하다.


20살에 들어서야 처음 자발적으로 '영어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누군가 보기엔 너무 늦은 시작이라고 핀잔을 줄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내가 영어로 논문을 쓸 것도 아니고, 늦은 시작이란 핑계일 뿐이다. 중학교 2학년 즈음, 중국어보다는 쉽다는 이유로 제2외국어 과목을 일본어를 선택했지만 몇 개 되지 않는 히라가나를 외우지 못해 손바닥에 써서 커닝을 하던 내가, 이제는 3개 국어를 넘어 4개 국어를 공부하게 됐다. 게다가 시작이 늦다고 생각했던 영어를 이제는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4개 국어나 하게 됐냐고 묻는 다면 '끝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디자인이 좋아 일러스트 과정을 배웠지만 또 써먹지 않으니 흐지부지 되는 듯했지만 웹디자이너 과정을 배우게 되며 디자인과 코딩이 접목된 웹디자이너가 내 흥미를 돋웠고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 삶의 패턴이 갉아먹힌다고 느껴질 즈음 그만뒀다. 그 이후 웹 쪽으로 전향하지 않았지만 그때 익힌 코딩 지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니던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다른 부서와 협업할 기회를 얻고, 크몽에서 상세페이지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의지가 생길 때, 모든 것은 그때 시작하면 된다. 의지가 식는다면 잠시 쉬면서 다른 것을 하다가 또 새로운 재미를 찾아 의지가 불타오른다고 느껴질 때 부스터로 활용해해 나가면 된다.


여전히 나는 모든 일들을 끝내지 않는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한 게 없지만 많은 게 달라졌다. 나 자신을 '끝까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그 안에서 우울해하기보단 이왕 틀에 갇힐 거라면 '멀티포텐셜라이트(multipotentialite)'라는 긍정적인 단어가 주는 에너지로 그날 하루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나비효과를 만들었다.


이 글도 몇 번을 쓰고 말길 반복했는지 모른다. 시작이야 힘이 날 때 다시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재시작에 드는 부팅 에너지를 낮추고 또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되는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설레는 만남이라니, 두근두근하지 않은가? 이 글을 끝으로 또 기운이 날 때쯤, 또 다른 글을 쓰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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