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밖을 상상하는 일

많이 보고 적게 판단하기

by 청년실격

경우에 따라선 침묵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사진이 그것을 잘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영속하는 시간에서 부분을 포착한다. 프레임 밖은 독자 몫이다. 독자는 찍힌 사진의 앞뒤 시공간 상상한다. 꼭 사진이 아니라도 좋은 예술 작품은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됐을 때 아쉬움을 갖는 사람들은 그래서이지 않을까. 대게는 책을 선호한다. 실제로 책이 미학적으로 더 잘 쓰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보단 불일치에서 비롯된 아쉬움이라 짐작한다. 스크린에 재현된 이미지가, 내가 상상한 인물, 풍경, 색감만 못해서.


아무리 기술적으로 훌륭히 시각화돼도 독자가 상상한 범주를 넘을 순 없다. 독자들이 가진 이미지는 온전히 스스로 창조한 세계다. 그건 마치 "내 손주"와 같아서 다른 이미지와 우월을 가릴 수가 없다. "당신 손주가 내 손주보다 더 나은 것 같아"라는 할아버지가 없듯이. 어쩌면 책과 영화라는 매체의 태생적 차이일 수도 있겠다.


관람자가 이야기에서 상상할 수 있고, 개입할 수 있는 룸이 많을수록 이야기는 활기를 갖는다. 저마다 새로운 감상을 제공한다. 같은 이야기를 보고도 많은 결론을 만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결론이 선명한 영화보단 논쟁이 되는 영화가 좋다.


일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란 "많이 보고, 적게 판단하는 사람"이랬다. 예술에서 창작자가 너무 많은 판단을 하면 강요가 될 수 있다며 주의했다.

좋은 영화 반대의 모습이 꼭 그렇다. 작가가 "이 사람은 악역".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면 영화는 왜소해진다. 신파를 품는다. 논리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인간관계에서도 너무 많은 판단, 혹은 선입견을 가진 사람과는 거리가 생긴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 대화에서 교집합을 찾기 힘들다. 티키타카가 어렵다.

그럴 때 보면 판단은 벽돌 같다. 하나 둘 쌓으면서 세계가 공고해지지만 돌이켜보면 그 벽돌 성에 갇히게 되니까.


스무 살 초반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재단했고, 매번 틀렸다.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 그 시절만큼 자기 확신이 강했던 적이 없다. 판단을 잘 내리고 확신에 가득 찰수록.. 밥맛 없는 사람이 됐다.


그때의 실패로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는 교훈을 얻었다. 가능한 판단을 유보한다. 어떤 사람의 실언도, 실수도 기회를 더 준다. "혹시 내가 모르는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철저히 경험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KakaoTalk_20220627_225620125.jpg 201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좋은 사진은 프레임 밖을 상상하게 만든다. 사진 너머의 이야기를 궁금하게끔 만든다. 나 역시 그런 사진을 찍고 싶다. 가능한 많이 보고, 적게 판단하고 싶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면 더 좋겠다. 가능한 많이 경험하고 적게 판단하는 사람으로 늙어 간다면.

더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jooho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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