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히는 법에 관해서

fake it until make it

by 청년실격

나는 양자역학 같은 어려운 건 모른다. 그럼에도 용기를 갖고 적는다. 무식할수록 용감하니까.


원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위다. 더 이상 쪼개지거나 나눠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원자 위치를 정확히 관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추정할 뿐이다. 원자는 정말이지 너무 작아서 누가 지켜본다는 사실에도 반응한다. 문과식으로 말하자면 원자는 시선에도 진동하는 존재다.


우주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사람 또한 원자의 총합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원자로 이뤄진 우리도 시선에 진동한다. 부르르르. 특히 나는 카메라 앞에 있을 땐 더욱 그렇다.


나는 카메라 앞이 어렵다. 몸이 고장 난다. 입은 웃지만 눈은 처연하다. 호흡을 인식하는 순간 들숨과 날숨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이 카메라 앞에 서면 모든 동작이 로봇화 된다.


어쩔 땐 카메라 렌즈가 총구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렌즈로 조준하는 것 같다. 마치 내 몸 어딘가에 빨간색 레이저 점이 찍힌 기분. 그런 내가 잘 찍히는 법을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글쓰기란 참 좋은 취미다. 잘 모르면서도 용기를 갖는 건, 다시 한번 무식할수록 용감해서다.

2022-07-20 22_28_36-Jooho(@jooho201)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 Chrome.jpg 그래서 뒷모습만 찍는다

찍히는 건 어렵지만, 찍는 일은 자신 있다. 나는 사진 잘 찍는다는 칭찬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자 무지 열심히 찍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카메라 앞에서 얼어버린다는 점이다. 마치 내가 총구를 들이민 것처럼 모두 표정과 행동이 "꼼짝 마" 자세가 된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에 들게 찍어야 한다. 그것이 DSLR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책임이니까.


여러 번 로봇 사람을 찍고 난 뒤 깨닫게 된 방법은 "편한 척 연기해"라는 주문이다. 이 방식을 배우고 난 뒤에는 카메라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많이 줄였다.


모델에게 "편하게 해"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다시 한번, 우리는 원자로 이뤄진 존재들이다. 카메라 앞이라면 편할리 만무하다. 관측을 당하는 일은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편하게 하라는 말은 부장님이 "술자리만큼은 편하게 해"라는 말처럼 불편한 말이다.


그렇다고 연기를 요청할 수도 없다. 프로가 아니고서야 어설픈 연기는 서로가 민망하다. 발연기가 즉각 기록된다는 사실은 부자연스러움을 배로 만든다. 사진에 정답은 없다만 아마추어가 연기할수록 오답에 가까워진다.


내가 애용하는 "편한 척 연기해봐"는 합의점을 제시하는 요청이다. 그 요구는 화자에게 연기할 수 있는 당위를 제공한다. 말 그대로, 편한 "척"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해도 좋고,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마음대로 걸어도 좋고, 무표정하게 다른 곳을 응시해도 좋다. 편한 걸 연기하기로 작심한 아마추어 모델은 처음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점점 더 상황에, 자연스러움에, 몰입한다.


그리고 끝끝내 촬영을 마칠 때쯤엔 정말로 편해진다.


연기가 꼭 카메라 앞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다. 나는 실제로 삶의 많은 부분에서 다양한 역할로 연기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도 받는다.


회사에서 나는 자주 친절한 척 연기한다. 물론 회사라는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친절한 척은 카메라 앞 편한 척보다도 쉬운 일이다.

가령 이런 매뉴얼이 있다. 동료에게 일이 몰렸을 때 도와줄 게 있는지 묻는 일. 약속 시간 지키기. 팀장에게 탈탈 털린 동료와 커피 마시며 하소연 들어주는 일이다. 이 외에도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상식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친절한 척 연기가 있다. 나는 그런 쪽으론 눈치가 빨라서 자주 그런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불현듯 친절한 사람이, 동료가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편안한 척 연기하다가 마침내 편해져 버리듯이.


나는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냥한 사람도 아니다. 평균 정도의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질투심도 많고 인정 욕구도 강하다.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크고, 분노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친절한 척을 연기하고 싶다. 좋은 사람인척 속이고 싶다. 그런 종류의 연기는 쉽다. 이왕이면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면 된다. 잘 된 일을 축하해 주고, 배려해주면 된다. 경솔하게 발언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 법도 있다. 그 외에 책, 영화, 세상에 "좋은 사람 되는 법"이란 훌륭한 족보가 있다. 그대로만 따라 하면 된다.


메쏘드 연기처럼, 언젠가 오랫동안 연기하면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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