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창작 권하기
아버지가 은퇴를 앞뒀다. 정년까지 2년뿐이다. 아버지는 은퇴 후 특별한 계획이 없다. 자연인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귀농을 꿈꾼다. 요즘은 주말농장도 운영한다. 그런데 옆집 친구 기준이 아버지도 자연인을 꿈꾸신다. 앞집 재일이네 아버지도 자연인을 동경한다. 대한민국 많은 은퇴자들이 귀농의 삶을 동경하는 건 무언가 왜곡된 욕망 같다. 오랜 기간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에서 그 “어디든”이 농촌으로 대표되는 걸까
정년을 앞둔 분들은 오랫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일했다. 은퇴하면 근로 계약을 이유로 아침마다 집 밖을 나설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주어진 많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어쩌면 단지 "은퇴 후" 삶에 대한 걱정은 아닐 지 모른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꼭 우리가 쓴 시간만큼 사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이 실존주의적인 질문과 닮았다고 본다.
불현듯 언제라도 계획 없이 찾아와서 괴롭히는 질문, “삶이란 무엇인가” 혹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사진 에세이에서 다루긴 주제넘는 담론이다. 굳이 내가 아니라도 훌륭한 철학자들이 이 주제로 멋진 책을 썼다. 어쩌면 귀농하고 싶은 욕망이 순수하고 진실된 걸지도 모른다. 고작 서른 살 근처인 내가 지레짐작하는 실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갖고 이 주제를 적는 건 지난 몇 년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배운 게 있어서다. 나는 누구든 창작할 때, 그리고 그 창작의 결과로 인정받을 때 행복하다 믿는다.
인간은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자기표현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표현을 통한 남들의 인정은 달다. 언어를 통해, 도구를 통해 만들어 낸 본인의 작은 세계가 타인과 교감하는 일은 나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일보다도 더 큰 행복이다. 여기서 표현은 넓은 개념을 말한다. 말하자면 자녀도 포함한다. 부모들이 “자식 잘 키웠네요”라는 말에 행복한 건 자식이 객관적으로 바르게 자라서 행복함과 동시에 (또 한 번 주제넘는 발언 일 수도 있겠지만) 주관적으로 본인의 훈육, 교육,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진이 자기표현을 위한 도구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접근성이 좋다. 스마트폰이 늘 함께다. DSLR까지도 필요 없다.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면 충분하다. 들이는 시간도 적다. 글이나 물리적인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해선 많은 수고스러움이 필요하지만 사진은 셔터만 누르면 된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필름을 구매하거나 인화하는 시대도 아니다. 여러 이유를 봤을 때 사진은 아주 가성비가 높다.
사진은 진입장벽이 낮다. 만약 당장 사진 찍어야지 싶은데 무엇을 찍어야 될지 몰라 고민된다면 주변을 살피자. 찍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풍경은 알아서 찾아온다. 자기 주변을 비틀어서 생각해보고, 마음대로 구도를 잘라보자. 빛이 들어오는 각을 보고, 크게 확대하거나, 작게 봐보자. 그런 식으로 학교를, 회사를, 집안을 찍다 보면 모든 풍경이 영감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한 칭찬은 더 나은 창작을 위한 연료가 돼서 끊임없이 발전하게 만든다. 창작의 선순환 구조다.
이렇게 말해 놓고 막상 은퇴하는 아버지에게 사진을 권하기는 민망하다. 나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미학적 센스엔 관심이 적다는 걸 인정한다. 나는 아버지께 사진 찍기 비슷한 종류의 창작 행위를 권한다. 아마 손재주가 좋으니 가구 만드는 일 비슷한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가 아니더라도. 나는 사진을, 혹은 사진을 넘어 어떤 것이든 창작을 권한다. 창작 과정에서 불행은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들지 못해서 느끼는 좌절뿐이다. 동기부여에 가깝다. 창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다. 누구보다 본인 행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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