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잘 찍는다는 말

역지사지로 생각하기

by 청년실격
2022-03-23 21_14_05-Jooho(@jooho201)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 Chrome.jpg

사진 잘 찍는다는 칭찬을 듣는 법은 간단하다. 그건, 그 말을 해주는 사람 마음에 들면 된다.


미학 보수주의자로부터 반발이 두렵다. 부연하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첫 회사에서 만난 이 대리님을 얘기해야 한다.


누구든 살면서 몇 명의 롤모델을 만난다. 내겐 대리님이 그랬다. 텅 빈 탕비실에서 혼자 쓰레기를 정리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날부터 마음을 뺏겼다. 대리님은 잔반을 남기지 않고, 위아래 모두에게 존대하며, 모든 동료에게 진심이었다. 그분의 사소하지만 신뢰감 있게 쌓여 온 하루하루를 존경했다.


본인 롤모델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일은 적은 확률이다. 내가 그 행운아였다. 회사와는 차로 10분 거리였다. 퇴근 시간이 맞는 날엔 대리님 차로 함께 퇴근했다. 언제라도 그 소소하고 확실한 10분을 좋아했다. 4층인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거쳐 차로 갈 때까지 오늘은 무슨 얘기를 나눌지 생각했다. 동네 맛집 같은 시시한 얘기부터 첫 월급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한 얘기로 질문은 다양했고 답변은 현명했다.


입사한 지 6개월 차쯤 되던 날, 대리님께서 같이 퇴근하자고 메신저를 보냈다. 그날은 어떤 걸 얘기 나눌지 고민할 필요 없었다. 며칠 전부터 대리님께 계속 궁금한 게 있었다.


며칠 전 다른 회사와 미팅에 대리님과 함께 참석한 날이었다. 상대방 회사에서 애초에 5명이 오기로 했는데 4명만 참석했다. 이 대리님과 자주 커뮤니케이션하던 A대리였다. 그러자 대리님께서, “A대리님 못 오시게 돼서 아쉽네요 그분 일 참 잘하시는데”라고 했다.


대리님이 칭찬하는 일은 많았지만 “일 잘한다”와 같은 종류는 드물다. 그때부터 궁금했다. 과연 대리님께서 생각하는 “일을 잘한다”라는 건 무엇인지. 도대체 A대리는 어떻게 일했길래 내가 존경하는 이 대리님께 “일 잘한다”라는 말을 들었는지. A대리님이 일을 꼼꼼하게 하는 건지, 의사소통을 잘하는지, 영어를 잘하는지 궁금했다.


차에 탑승하고, 안전벨트를 맸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킨 뒤에 대리님께 수줍게 고백하듯이 물었다.


“그런데 대리님, 일 잘한다는 게 무엇인가요?”

한참 생각하던 대리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


“저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요”


황당했다.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것보단 조금 더 엘레강스한 대답을 기대했다. 어쩐지 프로페셔널지 못하고 너무 개인적인 이유였다. 대리님이 덧붙였다.

"A대리님은 약속을 잘 지킨다.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하면 정정해 준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부족했다. 피아노 거장에게 훌륭한 연주자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듣기 좋은 음악”과 같은 너무 주관적인 답변 같았다.


그 대답을 들은 지 1년이 더 지났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그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수가 대리님이 말했던 특징과 꼭 닮았다.

사수는 인수인계를 꼼꼼하게 기록했고, 잘 못 보낸 메일을 정정해서 전체 회신했으며, 일의 앞 단에서 기한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니 일 잘한다는 인상은 채점표의 총합처럼 객관적으로 몇 점 이상터 생기는 타이틀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살면서 "일 잘한다"는 것과 같이, 객관적으로 절대적 선이 있다고 오해했던 적이 많았다.


25살에, 내가 꿈꿨던 대학을 반 학기만에 자퇴한 친구를 만났다. 의아했다. 나는 당시 재학 중이던 학교를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그 학교라면 절하고 다녔을 거 같았다. 하지만 자퇴한 친구가 당시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영상 크리에이터로 일하는 걸 보면 친구에겐 대학보단, 대학 밖에서 배울 게 더 많았을 수 있다.

"왜 자퇴했지?"싶었던 건 객관이라는 렌즈로 내렸던 나의 오판이다.


비슷하게, 취준생 땐 좋다는 대기업을 제 발로 나오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요즘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그들에겐 더 큰 꿈이 있거나, 혹은 회사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사진 좀 찍는다, 일을 잘한다, 라는 얘기하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 시 수미상관 형식으로 돌아가겠다. 내 생각에 "좋다"는 건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어떤 것의 좋음은 좋은 대상과, 좋다고 인식하는 존재로 완성된다.


사진작가가 아무리 예쁜 사진이라고 담아도, 찍힌 당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좋은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 거꾸로 사진작가가 보기엔 어색해도, 당사자가 마음에 들면 좋은 사진일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건, 나의 좋음과 상대의 좋음이 합치하는 경우겠지만.


좋다는 게 객관성이 없고, 독립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좋기"위해 부지런히 상대방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그들이 좋아하게끔 찍으면 된다는 말은 오히려 사진 촬영을 쉽게 만든다. 일을 잘한다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편하게끔 일을 해준다"라는 공식이 있으니, 오히려 일 잘하는 법에 대한 고민이 명쾌해졌다.

2022-03-23 21_19_02-Jooho(@jooho201)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 Chrome.jpg 2017년 아일랜드 위클로 성에서

역지사지 마음은 일 잘하는 사람, 사진 잘 찍는 사람이 두루 가진 공통점 같다.

근데 사실 이 말은 만사에 통용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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